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국회 연설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을 얘기했을 때 필자는 내심 환영했다. 1년 전 쓴 온라인 칼럼에서 탄핵·특검을 남발하는 야당 전횡을 막기 위해 국민소환제라도 해서 형편없는 의원들을 솎아내야 한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지연된 재판 덕분에 4년 임기가 더 확실히 보장된 국회의원들은 어느 국가기관도 견제하지 못할 권력을 휘두른다. 다수당만 되면 주요 공무원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통해 대통령과 정부, 사법부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을 윤석열 정부 들어 자주 봐왔다. 또 국가 미래보다는 지지층 입맛에 맞는 입법과 특검 추진, 정부 예산안 삭감, 고함과 망신주기 등 의원 권력과 위상은 장관 열 명에 부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국민소환제라도 해서 막 나가는 의원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 대표가 아니라도 많은 국민이 바랬던 일이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한동훈도 “(의원들의) 탄핵 남발과 그 탄핵이 기각돼도 어떤 정치적 책임을 안 지고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소환제를 말하는 사람이 많다”며 “진지하게 검토해볼 때”라고 했다.

문제는 이 대표 입에서 국민소환제가 나왔다는 점이다. 최근 진정성을 알 수 없는 ‘우클릭’에 매진중인 이 대표가 국민소환제를 꺼내드니 무슨 저의가 있는지 의심부터 든다. 여당에서 진지한 검토 대신 ‘정적 제거용’이라는 비판부터 나오는 이유다. 이 대표가 과거에도 국민소환제를 중요한 정치 일정 때마다 거론한 적이 있어 더욱 그렇다. 그는 2017년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토론과 2022년 당대표 출마 선언 때도 국민소환제를 언급했다. 이번에도 윤 대통령 탄핵 시 조기 대선 이벤트를 염두에 두고 국민소환제가 다시 ‘소환’됐다.
국민소환제 법안은 20대와 21대 국회에서 각각 6건, 7건 발의됐고, 이번 22대에서도 이미 5건이나 된다. 5건 모두 12·3 비상계엄 이후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했는데, 그 이유는 있었다. 이들은 지난 18일 국민소환제 관련 좌담회에서 12·3 비상계엄에 동조하는 의원들을 예시로 들며 제도 필요성을 역설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2일 정진욱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지역선거구 국민소환투표청구권자(유권자) 총수의 100분의 30 이상 서명으로 소환 청구가 이뤄진다. 이후 유권자 3분의 1 이상 투표와 과반 찬성으로 의원직이 박탈된다. 소환 대상은 헌법 46조에 규정된 국회의원 의무를 위반했거나 직권 남용과 직무 유기 등 위헌·위법·부당 행위를 한 경우로 돼있어 광범위하다. 소환 대상 여부를 판정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상대 후보를 해하려는 의도를 갖고 자기 편 유권자들을 동원해 의원직 박탈을 위한 소환 투표가 곳곳에서 수시로 치러질지 모른다. 국민은 당리당략에 찌든 의원들을 제어하려는 순수한 의도를 갖고 국민소환제를 지지했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혼란을 부추기는 수단을 하나 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탄핵과 특검도 원래는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을 위한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선의의 제도라도 빈 틈을 파고들어 남발하는 것이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윤 대통령 탄핵심판 7차 헌재 변론에서 “탄핵과 예산, 특검은 헌법과 법률적으로 보장된 국회 권한”이라고 했는데, 문제는 권한 유무가 아니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남용했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도 마찬가지다. 정치 체제를 강력한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꾸면 해결되는듯한 논리를 찬성하기 어렵다. 의원내각제에서는 특정 다수당이 정부와 의회 권력을 다 쥐고 있고, 의원들이 돌아가며 다수당 대표를 맡아 총리를 번갈아 할 수 있다. 정부와 의회 간 협력이 안되면 내각 불신임과 국회 해산이 반복돼 혼란이 더 커진다. 요체는 정치인들의 의식 개선이 없다면 정치 혁신이나 새로운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탄핵소추를 남발했을 정도라면 어떤 제도하에서도 상대를 괴롭힐 창의적인(?) 대안을 찾아낼지 모른다.
통치 체제 변경이나 제도 보강만으로 우리 정치가 개선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상대 당을 밟고 올라서려는 제로섬적 게임에서는 무엇을 바꿔놔도 정치 개선이 어렵다. 차라리 의원들 소양 교육부터 강화하는 게 낫다. 지금처럼 국회 권한이 크면 너도나도 정치판에 나가 한몫 뽑으려는 유혹이 커진다. 국민소환제도 좋지만 의원 특권과 국회 권한을 줄여놔야 이판사판 하며 싸우는 꼴을 덜 보게 될 것이다.
김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