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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특권의 포기’가 제국을 이룩한다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 
2025-04-0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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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로마 내전과 강대국의 고뇌
로마 시민의 특권을 식민지에도 주려 했던 카이사르는 내부 반발로 인해 암살당했다. 그러나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아우구스투스가 시민 특권을 식민지에 주면서, 제국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구글 제공)
로마 시민의 특권을 식민지에도 주려 했던 카이사르는 내부 반발로 인해 암살당했다. 그러나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아우구스투스가 시민 특권을 식민지에 주면서, 제국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구글 제공)

드디어 로마를 공포에 떨게 했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사망했다. 기원전 183년의 일이다.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중해 패권을 놓고 세 번에 걸쳐 싸웠던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 장군의 뛰어난 전략으로 패배를 거듭했던 로마는 멸망 직전까지 갔지만, 귀족과 평민 그리고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과 일치단결해 끝까지 버틴 끝에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포에니 전쟁 승리로 로마는 이제 주변 어디에도 적수가 없는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로마는 곧 로마인들이 로마인을 죽이는 내전에 휩싸였고, 이런 로마의 내전 상태는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암살되는 이유가 된다.

어째서 로마인들은 서로를 죽이는 내전을 하게 되었을까?

지중해를 모두 장악한 로마는 이제 이집트와 시리아 같은 넓은 농토에서 전쟁 포로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대규모 농업을 하게 된다. 당연히 모든 식량과 생필품 가격은 내려간다. 문제는 로마 권력층과 부유층을 제외하면 대부분 로마 시민은 소규모 자작농이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작은 농토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니발과 목숨 걸고 싸웠던 로마 자작농들은 해외에서 수입되는 값싼 농산물 때문에 농토도 빼앗기고 어린 자녀들이 굶어 죽는 지경에 이른다. 마치 자유무역협정 FTA로 전 세계 상품이 수입되면서 미국 블루컬러 계층의 삶이 어려워진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런 로마 평민의 문제를 가장 먼저 간파한 사람이 최고 귀족 가문 자손인 그라쿠스 형제(Gracchi)였다.

형인 티베리우스는 생계가 어려워진 로마 평민들을 위해 복지 정책을 펼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티베리우스의 정책에 반감을 가졌던 로마 기득권층에 의해서 암살되고 만다. 하지만 티베리우스의 노력으로 로마 기득권층인 원로원도 자작농이던 평민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평민의 생계를 돕는 복지 정책이 도입된다.

그러나 로마의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당시 로마는 이탈리아의 한 도시에 불과했다. 한니발과 포에니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모든 도시들이 동맹을 맺어 같이 전투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포에니 전쟁에서 이기고 나서 상황이 달라졌다. 분명히 전투에서는 똑같이 싸웠는데 승리한 이후에는 이집트와 시리아 등 식민지 지배권을 로마가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는 모든 권력과 부를 갖게 되었지만 이탈리아 다른 도시들은 승리의 전리품을 전혀 챙기지 못했다.

그라쿠스 형제 중 동생 가이우스는 이런 동맹시의 입장에서 정책을 펼 것을 주장했다. 로마인만이 특권을 누리지 말고 목숨을 걸고 같이 싸운 동맹시에도 특권을 나누어 주자는 주장이었다. 이런 가이우스의 주장에 심지어 로마의 가난한 평민들도 분노했다. 동생인 가이우스 역시 분노한 로마인들 손에 죽임을 당한다.

이후 발발한 것이 바로 기원전 91년의 동맹시 전쟁(war of the allies)이다. 로마군과 동등한 전력을 가지고 있던 동맹시들의 전투력은 워낙 대단해서 로마 최고 사령관인 집정관이 전투 중에 사망했을 정도다. 다행히도 동맹시 전쟁은 파멸로 치닫지는 않고 불과 2년 만에 종결된다. 로마가 이탈리아 모든 도시에 로마 시민권을 주기로 바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가이우스 그라쿠스를 죽이면서까지 이탈리아 동맹시들에 로마 시민권을 주는 것을 거부했던 로마인들이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 위기감이 고조되자 바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대한민국 같은 약소국의 역사를 가진 나라의 국민은 강대국이 너무나 부럽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강대국은 강대국 나름의 말 못 할 고민이 있다. 적군과의 전투에서 힘을 합해 같이 싸웠던 동맹국들은 물론이고 한때 적이었지만 이제는 항복을 한 다른 나라들에 대한 배려를 해줘야 하는 것이 강대국의 책무다. 단순히 책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의 지배자가 된 상황에서는 전 세계 우수한 인재들을 모두 등용해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의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다면 수십 년 안에 경제력과 군사력이 쇠퇴하면서 초강대국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자리한다.

2017년 미국 하버드대 신입생 중 백인 학생 비율은 49.2%였다. 400년 가까운 하버드대 역사에서 처음 발생한 일이다. 미국의 아시아인 비율이 6%에 불과하지만 하버드 신입생의 22%가 아시아계 학생이다. 그리고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IBM의 CEO가 모두 인도계이고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도체 쪽 CEO 중에는 대만계가 많으며, 일론 머스크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이런 전 세계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에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고 강대국인 것이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미국인이었고 자신의 할아버지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 걸고 싸워 자유 진영을 지켜낸 미국 백인 입장에서는 미국의 최고 대학인 하버드에 자신들의 자녀가 들어갈 기회가 줄어들고 한때 자신들이 점령하고 도와준 국가 출신들이 회사에서 상관이 되어서 명령을 내리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로마 시민권 확대를 지지하는 카이사르 집안에서 태어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지금의 프랑스인 갈리아 지방을 정복하면서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독일에 해당하는 지역의 우수 인재들에게도 로마 시민권을 주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로마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원로원과의 대립이 필연적이었다. 로마 원로원들은 자신의 조상이 한니발과 목숨을 걸고 싸워서 획득한 로마의 특권을 갈리아 같은 야만인과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카이사르를 암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카이사르는 죽었지만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황제 지위에 오르면서 로마는 전 세계의 능력 있는 인재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정립한다. 한니발을 이기고 거의 150년 동안 로마 시민끼리 서로 죽이는 전쟁을 통해 간신히 내린 결론이었다. 로마는 이런 제도를 바탕으로 카이사르 암살 이후 500년 이상 번영을 누린다.

물론 로마의 번영 뒤에는 전통적인 로마인들이 한때 자신들이 점령했던 프랑스인과 시리아인 밑에서 지시를 받고 근무하는, 괴이하다면 괴이한 상황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199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먼델(Robert Mundell) 교수의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 이론이 있다. 통화를 같이 사용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환율 변동의 불안이나 관세 변동에 의한 손해를 걱정하지 않고 경제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델 교수는 그렇다고 해서 통화 범위를 무작정 늘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같은 통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리는 남이 아니다’라는 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미국인이 캐나다와 멕시코와 중국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는 한 같은 통화를 쓰면서 같은 경제공동체가 될 수 없다. 같은 통화뿐 아니라 FTA 같은 경제 협력도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갈등과 부작용만 높이게 된다.

로마는 그라쿠스 형제의 죽음, 동맹시 전쟁, 카이사르 암살 등을 겪으면서 타국에 로마의 특권을 허용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오랜 고민을 했다. 현재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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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4호 (2025.04.09~2025.04.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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