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장 바이오가 탈출 해법
우리가 지닌 역량과 잠재력
쏟아낼 자세가 되어 있는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바이오 패권경쟁’을 주제로 열린 매일경제 창간 59주년 기념, 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에서 각계 오피니언 리더들이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의 환영사를 경청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5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한주형 기자]](https://pimg.mk.co.kr/news/cms/202503/26/news-p.v1.20250319.f19142506e774876873f385dc2d7bada_P1.jpg)
‘블랙스완’을 쓴 나심 탈레브는 “역경에 과잉 반응할 때 분출되는 엄청난 에너지가 혁신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했다. 고통의 순간에 신속한 변화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소련이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자 미국이 대오각성해 나사(NASA)를 세우고 달에 인간을 보낸 게 대표적인 예다. 베스트셀러 저자 모건 하우절도 탈레브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한국이 제조강국의 위상을 얻는 과정도 그랬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1970년대 당시, 삼성은 전자업계의 후발주자였다. 국제 무대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했고 가전제품의 수익성은 한계가 명확했다. 생존을 위한 변신이 절실했다. 그리고 삼성의 ‘사즉생’ 집념은 세계를 경탄케 한 반도체 신화를 탄생시켰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톱3 달성도 숱한 역경을 극복한 결과물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다. 경제는 1%대 저성장 늪에 빠져들었고 정치는 대혼란의 리더십 공백기다. 한국의 자랑이던 제조경쟁력은 중국의 대대적 공세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도 이미 선수를 빼앗겼다. 탈레브의 말처럼 위기 속에서 대반전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매일경제 창간 59주년 기념, 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발표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https://pimg.mk.co.kr/news/cms/202503/26/news-p.v1.20250319.353435b9a0d44e5fb756c44b7aac61a8_P1.jpg)
지난 19일 매일경제는 ‘바이오 패권경쟁’을 주제로 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했다. 반도체 산업을 능가할 바이오를 집중 육성해 한국의 신성장동력을 살리자는 취지에서다. 고성장을 거듭하는 바이오 산업에서 진검승부를 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쟁 환경은 녹록치 않다.
저만치 앞서 있는 바이오강국 미국과 유럽은 둘째치고 중국과 일본의 공세가 매섭다. 한국 바이오 인력의 자질과 임상 인프라는 우수하지만 협력 생태계나 자금력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신약(연 매출 10억달러 이상의 대박 의약품)을 한개도 배출하지 못한 성적표가 우리의 초라한 현실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좌절하기에는 이르다.
K바이오의 알토란 같은 자산은 ‘의료 데이터’다. 전 국민 건강보험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동네병원까지 의무 기록이 전산화되어 있는 한국은 의료 데이터 선진국이다. 이런 금맥을 제대로 캐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 때문에 막혀 있는 의료 데이터 상업화의 물꼬를 정부가 과감히 터줘야 한다.
항노화 기술도 국가 차원의 과제로 키워야 한다. 한국은 한 때 줄기세포 강국이었지만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사태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규제가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 정부가 뒤늦게 첨단재생의료법을 개정해 숨통을 틔웠지만 아직 부족하다.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에서 K바이오 필승전략에 대한 발표가 진행되고 있다. [김호영 기자]](https://pimg.mk.co.kr/news/cms/202503/26/news-p.v1.20250319.2a89a0b117234528aad576977523be2f_P1.jpg)
반면 일본은 대범하게 규제를 풀어 일약 항노화 메카로 떠올랐다. 매년 수만명의 한국인들이 줄기세포 원정 치료를 받으러 일본으로 향한다.
생명공학과 화학의 융합으로 친환경 신소재를 만드는 화이트바이오 분야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지구를 뒤덮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생분해 플라스틱이다. 독일 바스프가 20년 전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에선 SK, LG, CJ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중국의 선제공격이 위협적이다.
중국 정부는 생분해 플라스틱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어 최근 시행에 들어갔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 보다 몇배 비싸다. 시장 논리로는 수요를 창출하기 힘든데, 중국 정부가 발빠르게 자국 내수시장을 열어 중국 기업들의 성장 발판을 깔아준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자율주행 등 중국이 이룩한 첨단기술 약진의 성공 공식(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유사하다.
전략 컨설팅업체 PWC·스트래티지앤은 한국 바이오 투자의 골든타임이 향후 3년이라고 진단했다. 절박한 시기에 기업만 용쓴다고 되는게 아니다. 정부도 규제 철폐와 생산 보조금 등 총력전으로 같이 뛰어야 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혁신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패자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