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저성장에 빠진 한국
고성장 바이오가 탈출 해법
우리가 지닌 역량과 잠재력
쏟아낼 자세가 되어 있는가
고성장 바이오가 탈출 해법
우리가 지닌 역량과 잠재력
쏟아낼 자세가 되어 있는가

한국이 제조 강국의 위상을 얻는 과정도 그랬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1970년대 당시 삼성은 전자업계의 후발 주자였다.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이 미미했고 가전제품의 수익성은 한계가 명확했다. 생존을 위한 변신이 절실했다. 삼성의 '사즉생' 집념은 세계를 경탄케 한 반도체 신화를 탄생시켰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 톱3 달성도 숱한 역경을 극복한 결과물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다. 경제는 1%대 저성장 늪에 빠져들었고 정치는 대혼란의 리더십 공백기다. 탈레브의 말처럼 위기 속에서 반전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지난 19일 매일경제는 '바이오 패권경쟁'을 주제로 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했다. 반도체 산업을 능가할 바이오를 집중 육성해 신성장 동력을 살리자는 취지에서다. 고성장을 거듭하는 바이오 산업에서 진검승부를 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쟁 환경은 녹록지 않다.
저만치 앞서 있는 바이오 강국 미국과 유럽은 둘째 치고 중국과 일본의 공세가 매섭다. 한국은 바이오 인력의 자질과 임상 인프라가 우수하지만 협력 생태계나 자금력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신약(연 매출 10억달러 이상의 대박 의약품)을 한 개도 배출하지 못한 성적표가 우리의 초라한 현실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좌절하기에는 이르다.
K바이오의 알토란 같은 자산은 '의료 데이터'다.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동네 병원까지 의무 기록이 전산화돼 있는 한국은 의료 데이터 선진국이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 때문에 막혀 있는 의료 데이터 상업화의 물꼬를 정부가 과감히 터줘야 한다.
항노화 기술도 국가 차원의 과제로 키워야 한다. 한국은 한때 줄기세포 강국이었지만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태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규제가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 정부가 뒤늦게 첨단재생의료법을 개정해 숨통을 틔웠지만 아직 부족하다. 반면 일본은 대범하게 규제를 풀어 일약 항노화 메카로 떠올랐다. 매년 한국인 수만 명이 줄기세포 치료를 받으러 일본으로 향한다.
생명공학과 화학의 융합으로 친환경 신소재를 만드는 화이트바이오 분야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구를 뒤덮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생분해 플라스틱이다. 한국에선 SK, LG, CJ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중국의 선제공격이 위협적이다.
중국 정부는 생분해 플라스틱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어 최근 시행에 들어갔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보다 몇 배 비싸다. 시장 논리로는 수요를 창출하기 힘든데, 중국 정부가 발 빠르게 자국 내수시장을 열어 중국 기업들의 성장 발판을 깔아준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자율주행 등 중국이 이룩한 첨단 기술 약진의 성공 공식(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유사하다.
컨설팅 업체 PwC·Strategy&는 한국 바이오 투자의 골든타임이 향후 3년이라고 진단했다. 절박한 시기에 기업만 용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부도 규제 철폐와 생산 보조금 등 총력전으로 같이 뛰어야 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혁신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패자가 될 것인가.
[황인혁 지식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