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하락하는데... ‘안전자산’ 엔화 연일 상승

엔화는 강세인 반면 원화 약세 흐름이 지속되면서 2년 만에 100엔당 1천 원 선을 앞두고 있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환율(하나은행 고시 기준)은 주간 거래 마감 무렵 989.85원을 기록했다. 전날 기준가보다 5.81원 올랐다. 장중 995.09원까지 오르기도 했는데, 이는 오후 3시 30분 고시 가격 기준 2023년 4월 27일(1,000.26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작년 7월엔 100엔당 852원까지 원화값이 올라가는 ‘슈퍼엔저’로 일본 여행 열풍이 불기도 했다. 당시 한국을 포함해 세계 주요국이 통화 긴축 정책을 펼치는데 반해 일본은행(BOJ)은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며 엔화는 줄곧 약세를 보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미국 경제 둔화 우려가 제기되면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엔화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행이 지난 1월 기준금리를 17년만 최고 수준인 연 0.5%로 인상하며 본격적으로 긴축 사이클에 돌입한 것 또한 엔화 강세를 견인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이달 18~19일로 예정된 금융정책회의에서 또다시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기대감도 엔화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미 수출 흑자의 원인으로 ‘엔저’를 지목한 것도 엔화 가치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일본 엔화를 지목하며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면 미국에 매우 불공정하고 불리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 말했다.
엔화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 국채금리가 오르면 그동안 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투자하던 투자자들이 이를 청산하고 일본 내 자산으로 자금을 옮길 수 있다. 이 같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현상이 나타나면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엔화는 상대적으로 잘 버티는 반면, 원화는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선 일본은 무역 의존도가 낮고 미국이 직접 겨냥하는 주요국이 아니어서 미국 발 관세 위협에서 다소 벗어나있으나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아 관세 위협에 더 취약하다는 인식이 통화 가치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원화는 달러와 비교했을 때도 약세다. 11일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1458.2원을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던 지난해 11월 6일보다 60원 넘게 높다. 반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던 지난해 11월 수준인 103대로 내려간 상황이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데도 원/달러 환율은 그만큼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