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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친중·친일 프레임 싸움이라니”…탄핵이 한국 외교 재도약 기회라는 이 남자

김성훈 기자
입력 : 
2025-01-28 07: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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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정국은 한국 외교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으며, 외교의 방향성과 주체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조현 전 외교부 차관은 한국 외교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탄핵 국면이 조속히 종료되어야 하며, 후배 외교관들에게 현재 상황을 민주주의의 회복력으로 설명할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또한 미국과의 관계에서 국익을 기반으로 한 실용 외교가 필요하며, 외교를 국내 정치의 틀에 맞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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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前외교부 1차관의 탄핵 외교공백 극복전략
조현 전 외교부 1차관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내 연구실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조현 전 외교부 1차관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내 연구실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다. 국내 정치 상황이 편안하고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외교에서도 힘이 나오는 것인데, 지금 우리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정국은 갈 길 바쁜 한국 외교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의 정권교체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갈등 등 엄중한 국면에서 외교·통상으로 먹고사는 한국만 ‘선장 없는 배’로 표류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가운데 조현 전 외교부 1차관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외교가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태의 ‘원인’인 탄핵 국면이 하루빨리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전 차관은 지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주인도대사로 활동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외교부 차관과 주유엔대표부 대사로 외교 현장을 누볐다. 그는 후배 외교관들이 이번 사태를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세계에 부각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래는 인터뷰 주요 내용.

■2016년 탄핵 경험에서 배울 외교적 교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촛불혁명’ 등 한국 관련 내용을 보강한 개정 인도 표준 교과서들. [매경DB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촛불혁명’ 등 한국 관련 내용을 보강한 개정 인도 표준 교과서들. [매경DB 자료사진]

2016년 촛불시위 때 주인도대사로 일했다. 당시 인도에서는 학생용 교과서가 개정되는 시기였다. 기존 인도 교과서에는 6·25전쟁 때 자국의 의료부대 파병과 일제 식민통치, 경제발전 정도의 내용만 들어 있었다.

그래서 당시 교과서 개정 연구진들에게 한국의 질서 있는 촛불시위와 같은 내용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한국은 일부 부침이 있긴 하지만 역동적이고 활기찬 민주주의의 나라라고 말이다.

이후 인도 교과서에 한국의 촛불시위 사진까지 실렸고,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이 1억 권이 넘는 인도 교과서에 담기는 등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 것이다.

■계엄·탄핵이 외교에 미칠 가장 큰 어려움은?

외교의 공백이다. 2025년은 외교의 해가 될 것이다. 전 세계에서 다층적, 동시다발적 외교가 일어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끝내야 하고, 미·중 간 관세 문제도 격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외교는 주체와 방향성이 없다. 신속하게 탄핵 절차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초당적 외교가 중요한데, 이것이 어렵다면 당분간 ‘큰 외교’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또 하나, 당분간 외교에서는 모든 대외적인 입장이나 접촉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미국 등 주요국들과 고위급 대면 외교를 해 봤자 잘 되기 어렵고, 의심만 살 수도 있다. 과도정부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외교 일선의 후배들에 대해 조언한다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한 것처럼, 우리 민주주의의 기본도 단단하다.

후배 외교관들에게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라, 어떻게 보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보면, 정원 가꾸기와 같다. 끊임없이 물도 주고 가지도 쳐주고, 잡초도 뽑아줘야 한다. 소홀하면 엉뚱한 곳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후배들에게 현재 상황을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과 위기 극복 역량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소재로 삼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난 연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를 요구하는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매경DB 자료사진]
지난 연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를 요구하는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매경DB 자료사진]

■트럼프 2.0 대미 외교 어떻게?

당분간은 어렵다. 미국 새 행정부도 한국의 과도정부를 상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조바심을 갖기보다는 탄핵 정국을 빨리 끝내고 질서를 회복한 이후에 본격적인 한미관계를 추진해도 된다. 자유민주주의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국의 중요성과 역할을 미국에 주지시키는 가운데 한미관계도 약간의 공백기를 극복하고 정상궤도로 빠르게 재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동맹의 가치를 서로 확인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비상계엄 국면에서 보인 미국의 움직임과 반응 등을 봤을 때 우리 국민이 미국의 중요성을 더 잘 깨달았을 것이다.

미국도 한국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미국도 한국 정부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자세하게 눈여겨봐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을 것이다.

■당분간 한미 정상외교 어려운데…

앞서서도 말했지만 고위급 외교를 서두르기보다는 내부 단속을 먼저 하고 탄핵정국을 극복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과도정부가 보여주기식으로 한미관계에 접근한다면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에 약점을 잡히고 역이용당할 수도 있다. 지금으로써는 G7(주요 7개국) 플러스 가입에 대한 집착이 보여주기식 외교가 될 수 있다.

G7은 이미 유용성이 많이 떨어진 체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한국의 G7플러스 가입을 지지해 줄지도 모른다. 다만 대신 한국으로부터 뭔가 받아내려 할 것이다.

■외교기조에서 수정·보완해야할 부분은?

현 정부의 ‘가치외교’ 기조는 어떻게 보면 캐치프레이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철저히 실용외교를 한다. 당연히 한국은 미국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가치’를 앞세운 외교를 할 필요가 없다. 미·중 갈등 역시 실용과 국익을 중심에 두고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일 기념식 장면. [매경DB 자료사진]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일 기념식 장면. [매경DB 자료사진]

미국에도 필요하다면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에게 ‘너희 중국 편이냐?’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하지 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단한 한미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우리가 이러이러한 실리를 얻어야 너희 미국도 좋고, 우리도 좋다’는 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외교를 국내 정치적인 프레임에 집어넣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 정부는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는 반미·친중 정부’라고 규정하며 한미관계를 ‘복원’하겠다고 했는데, 그릇된 접근이다. 반대로 향후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한중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식의 프레임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한일관계도 ‘애니씽 벗(전임 정부 정책만 아니면 된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안 된다. 바꾸고 싶더라도 그간의 외교 궤적을 인정하고 점진적으로 바꿔 나가야 국내적으로 지지받고 프레임의 굴레를 쓰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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