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외교정책은 국내정책의 연장선
주미대사관 싱크탱크 인력은 단 3명
의회외교 인력도 일본의 70% 수준
韓공공외교 예산, 日 대비 36배 적은데도
美 활용 예산은 최근 3년 내내 감소
“싱크탱크 연구 지원 규모 늘리고
주미대사관에 의회 담당 공사 필요”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 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501/26/rcv.YNA.20250126.PAP20250126085601009_P1.jpg)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전 세계 외교전선에 초비상이 걸렸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집권 10년 만에 사임하기로 한 데는 트럼프와의 껄끄러운 관계가 큰 원인이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22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한 뒤 트럼프 시대를 맞아 유럽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기존 외교 방식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우방국이 당황할 만한 수준의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하고, 손해 보는 느낌이 들면 약속을 철회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탄핵소추 국면에서 외교 공백을 맞고 있는 한국으로선 국내 정치가 정상화된 직후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할 상황이다.
대미 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주미 한국대사관이 민첩하고 영민하게 트럼프 시대의 정책 변화에 대응하는 ‘돌고래 외교’의 전초기지가 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에 외교적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면 일선 외교 조직을 정책 중심 네트워크로 재편해 충격의 진폭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미 외교와 관련한 예산을 늘리고, 담당 인력의 전문성과 역동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는 의견이 나온다.
먼저 주미대사관부터 형식적 정보 보고나 의전에 집중하지 말고 미국 백악관과 의회 그리고 싱크탱크와 네트워크를 재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이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미국에는 ‘외교 정책은 국내 정책에서 시작된다’는 금언이 있다”며 “미국의 외교 정책이 점점 국내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 전 장관은 “앞으로는 전통적 방식의 외교뿐 아니라 비전통의 ‘파격’에도 쉽게 적응하고,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창의력, 친화력, 침투력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보강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처럼 비전통적인 방식의 외교 스타일과 협상 방식을 구사하는 리더십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내 정책에 한국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선 의회외교도 매우 중요하다. 주미대사관은 주요국에 비해 의회외교에서도 열세라는 평가다. 외교가에 따르면 주미 한국대사관의 의회 담당 인력은 주미 일본대사관의 3분의 2 수준이고 순환보직 등으로 인해 전문성도 취약하다. 일본은 의회 담당 공사도 별도로 둔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은 의회에 대한 로비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영리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정책을 예측하고 한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서는 미국 싱크탱크 공략도 필수적이다. 유수의 싱크탱크는 미국 정부의 외교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다 이른바 ‘회전문 인사’를 통해 싱크탱크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진입하는 일도 빈번하다. 헤리티지재단, 브루킹스연구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우드로윌슨센터 등 저명한 싱크탱크의 정책 보고서들을 모두 종합하면 이것이 곧 미국 외교부의 정책 백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주미대사관의 경우 현지 싱크탱크 관리 역량이 부족하다. 외교가에 따르면 주미대사관에서 미국 싱크탱크 업무에 관여하는 인력은 3명 수준에 불과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주미대사관은 현재 주요 싱크탱크들과 기본적인 네트워크를 소화하기에도 벅찬 인력 수준”이라며 “이대로라면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미대사관이 싱크탱크나 의회를 상대로 한 외교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근원적 이유는 예산 부족이라는 분석도 있다. 싱크탱크 관리와 의회외교는 공공외교 영역에 속하는데, 지난해 외교부의 공공외교 관련 예산은 161억3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일본의 2022년 공공외교 예산은 638억엔(약 5858억3700만원)으로 한국의 36배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 공공외교 등에 추가로 활용되는 관련 예산은 최근 3년 동안 삭감됐다. 지난해 외교부의 ‘북미지역 국가와 전략적 특별협력 관계 강화’를 위한 예산은 52억9800만원으로 전년 대비 5.1% 감소했다. 해당 예산은 2023년 4.5%, 2022년 2.9% 등 전년 대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미국 싱크탱크를 이용하려고 해도 한국 이슈를 다루는 인물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친한파’ 육성을 목표로 정부가 한국국제교류재단(kf) 등을 통해 미국 싱크탱크에 더 큰 규모로 연구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한국은 일본 등 주요국과 비교해 의회 로비 관련 예산이 매우 부족하다”며 “일본 정부가 로비를 위해 사용하는 예산과 비교하면 좌절감이 느껴질 정도로 차이가 난다.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대미외교의 첨병인 주미대사관의 인력 구성도 문제다. 주미대사관에는 총 130여 명이 근무하는데, 현지 채용하는 행정직원과 수많은 정부부처가 각각 파견하는 주재관을 제외하면 정무적 업무를 담당하는 순수 외교관은 30여 명에 불과하다.
외교인력의 전문성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의회나 싱크탱크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담당 전문가 육성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다. 이들과 깊게 교류하려면 정책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미국 사회에 대한 식견이 있어야 한다. 유 전 장관은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했거나 앞으로 근무할 직원들을 일정 기간 중요한 연구소에 파견해 미국 정책 전문가로 훈련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지 외부 전문가 활용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조현 전 외교부 제1차관은 “미국에는 외국인대리인등록법(FARA)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다 하려고 하면 안 된다”며 “현지 로펌이나 컨설팅 회사 등을 그때그때 이슈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FARA는 외국 정부를 대리하는 개인은 미국 정부에 등록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법으로, 로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법이다.
의회외교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의회 담당 공사를 따로 두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우리도 일본처럼 의회을 전담하는 공사급 외교관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며 “의회 공사가 생기면 상·하원 주요 상임위원회나 친한파 의원들에 대한 보다 집중적인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의회 간 교류 확대도 절실하다. 국회는 현재 여야가 합심해 ‘한미의원연맹’ 창립을 추진하고 있다. 창립추진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통화에서 “미국 의회 의원들과 단독으로 교류하는 국가는 6개뿐”이라며 “미국 의원들 사이에 ‘코리아 코커스’ 등 한국 관련 모임들이 있는데 이런 모임을 모아서 하나의 연합체 형식으로, 공식적인 한미 간 교류 조직으로 만들자는 생각”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