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차인표(58)가 장편소설 ‘인어사냥’으로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신진상을 수상했다. 연기 인생 30년, 첫 소설 출간한지 16년 만에 얻은 결실이었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하는 스타 배우지만, 지금은 ‘인생 후반전’을 문학이라는 낯선 무대에서 조용히 시작한 중년의 신인 작가다.
지난 4일 황순원기념사업회는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자로 작가상에 소설가 주수자, 시인상에 시인 김구슬, 신진상에 배우 겸 소설가 차인표를 각각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상작은 주수자의 소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 김구슬의 시집 ‘그림자의 섬’, 차인표의 소설 ‘인어사냥’ 등이 선정됐다.
차인표의 수상작 ‘인어사냥’은 판타지 설정 속 인간의 욕망과 생존, 도덕적 딜레마를 그렸다. 심사위원단은 “유명세나 외적 조건보다 문학적 진정성과 완성도에 주목했다”고 평가했다.
차인표는 황순원기념사업회를 통해 벅찬 감회와 함께 신인 작가로서의 무게를 전했다. “수상 소식은 제가 앞으로 계속 소설을 써도 된다는 조용한 허락처럼 느껴진다”며 “앞으로 정말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남기는 소설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더 겸손히, 깊이 쓰겠다”고 했다.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서도 “소설을 읽어준 분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과분한데, 상까지 받게 되니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많은 분께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42세에 첫 소설을 출간했는데 58세에 신진작가상을 받는다. 인생은 끝까지 읽어봐야 결말을 아는 장편소설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덧붙였다.

화려한 조명을 뒤로 하고 ‘초심자’의 자리에 선 그의 도전은 개인적 성취를 넘어 우리 사회 중년들에게 던지는 조용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차인표는 1990년대 중반,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늘 예상을 깼다. 상업적 성공보다 자신만의 길을 찾는데 집중했다.
인기 최정점에서 자진 입대와 결혼을 했고, 두 딸을 공개 입양하며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했다. 또한 연기 활동을 잠시 내려놓고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사회적 책임과 나눔을 실천해왔다. 이후 소설을 썼고, 감독으로도 변신했다.그는 ‘롸잇나우’(right now·지금 이 순간)가 인생 목표라고 밝히며 하루하루를 귀하게 살았고, 늘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래도, 그 어려운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땐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차인표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소설 외에 내가 생각하는 내용을 발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영화나 드라마는 거대한 자본과 많은 사람들의 결정이 필요하지만 소설은 나 혼자서 할 수 있죠. 영화나 드라마는 한 번 방송되고 나면 잊혀지지만 책은 누구가의 서재에 꽂히면 앞으로도 계속 읽힐 수 있습니다.”

42세에 첫 소설 ‘오늘예보’를 출간한 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2021), ‘인어사냥’(2022) 등 세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영국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필독서로 선정되며 베스트 셀러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의 문학적 출발점은 1997년 8월 4일에 만난 한 위안부 피해자 훈 할머니였다. 지난해 8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위안부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슬픔과 분노, 그리고 여성들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이었다. 그 감정이 몇 달간 진정이 안 되다가 ‘내가 이걸 소설로 한 번 써 보자’ 해서 시작했다”며 “그리고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고구마 농사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한 해 수확한 고구마 중 가장 좋은 것만 골라 보관해 이듬해 종자로 쓰셨다. 나머지는 나눠 드시면서 ‘왜 그건 안 먹느냐’는 물음에 ‘내년에 다시 심을 거다’라고 하셨다. 종자는 그렇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다.”
차인표는 “인간도 종자와 같다”며 비유를 이었다. “매년 땀 흘려 얻은 결실을 다음 세대에 심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그 아이가 자라 사랑하고 배우고 나누는 과정이 수천 년 이어져 온 사랑의 결정체가 우리”라고 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적”이라며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세상에서, 그 가치를 일깨우는 것이 바로 문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차인표의 문학적 도전은 단순히 중년 이후 새로운 꿈을 꾸고 도전했다는 의미 이상이다. 그가 선택한 길은 편안함보다 불확실성, 과거의 영광보다 다시 시작하는 불안정한 자리였다. 그는 성공을 내려놓고 다시 무명의 자리로 돌아갔다.
중년 이후의 삶이 ‘완성’이 아니라 또 다른 탐색과 질문의 시간임을 몸소 보여줬다. ‘진짜 성공’은 변신할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그래서 차인표의 도전은 사회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게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 우리의 인생은 해봤느냐 안 해봤느냐로 결국 나뉜다. 해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던 차인표.
이번 수상에 대해 그는 “이제부터 잘 써보라는 격려로 받겠다”고 했다. 그 격려는,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해도 좋다. 중요한 건 진심이다”고 전하는 따뜻한 응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