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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지금 필요한 건…공약보다 ‘섀도 캐비닛’ [신율의 정치 읽기]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 
2025-04-27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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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4월 20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영남권 합동연설회’에서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4월 20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영남권 합동연설회’에서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은 내각제 국가에서 제1야당이 즉각적인 집권을 준비하기 위해 구성하는 대체 내각을 의미한다. 섀도 캐비닛은 실질적인 권한은 없지만, 집권하기 전이라도 정부 각 부처 장관과 1 대 1로 대응해 정책을 점검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즉각적인 집권 준비’의 일환으로 섀도 캐비닛이 활용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8년 동안 두 번이나 대통령을 탄핵시킨 대통령제 국가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렇듯 자주 탄핵을 하려면 정권 교체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내각제로 권력 구조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대통령제는 구조적으로 제왕적 성향을 띠기 쉽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벌어진 일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우리는 내각제 국가는 아니지만,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에서 섀도 캐비닛 도입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 대선은 탄핵 때문에 치러지는 만큼,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새로운 대통령이 곧바로 집무를 시작해야 한다. 인수위원회 활동 기간이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집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내각은 윤석열 정권 내각이다. 이재명 전 대표가 당선되어 즉각 집무를 시작할 경우, 짧은 시간이라도 윤석열 정권 인사들과 국정을 함께 운영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인사 상당수를 ‘내란 동조자’로 규정한 바 있다. 이런 주장을 하고 나서 이들과 함께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주장을 부정하는 셈이 될 수 있다.

장관을 전면 해임하고, 차관이 새로운 장관이 임명되기 전까지 대행 체제로 부처를 운영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때 하루빨리 국정이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국민 기대와는 사뭇 거리가 있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따라서 섀도 캐비닛을 미리 공개하고, 집권하자마자 이들이 각 부처에서 업무보고를 받는 등 실질적 권한 행사를 하게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은 탄핵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라는 오명을 아직 벗지 못했다. 유력한 대선 후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섀도 캐비닛을 구성해 발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역시 섀도 캐비닛 또는 최소한 총리 후보자를 일종의 ‘러닝메이트’ 개념으로 미리 발표해볼 만하다.

단, 총리를 러닝메이트 개념으로 발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총리에게 경제와 내치 분야의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과거 정권이 말로만 주장해온 ‘책임총리제’와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집권 후 곧바로 개헌을 추진하고 총리에게 내치와 관련된 전권을 부여하겠다는 약속도 포함해야 한다. 이래야만 국민이 대통령과 총리의 조합을 통해 나름대로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러닝메이트 전략은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단기간 내에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오세훈 시장을 찾아가 식사를 함께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이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오 시장 공약을 자신이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오세훈 시장에게 달려간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오 시장 지지층을 끌어오려는 의도일 테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1~2% 지지율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단지 오 시장과 밥 한 끼 먹었다고 그의 지지층이 해당 후보 지지로 이동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더욱이 오 시장 지지층에는 중도층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이 오 시장과 특정 후보가 친해 보인다고 해서 해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중도층 유권자가 어떤 후보를 지지할지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후보가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는가 아니면 반대했는가다. 탄핵에 반대한 후보가 오세훈 시장을 만나 식사를 함께하고 사진을 찍은 뒤 오 시장 공약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한다고 해도, 중도층 지지자들이 해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이들이 오세훈 시장을 만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 시장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전략적 판단에 있다. 만약 이것이 목적이었다면, 나름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다. 즉, 자신이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거나 혹은 강성 우파 이미지를 가졌다는 약점을, 오세훈 시장 이미지로 단기간에 상쇄하려는 시도였다는 의미다.

이런 분석이 나름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오세훈 시장을 만난 인사 대부분이 실제로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거나, 강성 우파 이미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탄핵에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한 한동훈 후보는 오세훈 시장을 만나지 않았다. 이 또한 해당 후보들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오세훈 시장과의 만남을 전략적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 개선 효과를 노린다면, 오세훈 시장과의 만남보다 총리 혹은 다수의 ‘그림자 내각’ 명단을 발표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총리나 내각을 미리 지명함으로써 자신이 갖고 있는 부족함을 보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거 전략이다. 과거에는 공약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려 했지만, 이제는 전략을 바꿔야 한다. 실제 유권자들이 공약을 보고 특정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또한 선거 전략상 정치적 슬로건을 공약처럼 포장하는 경우도 많아, 공약을 통한 약점 보완은 쉽지 않다. 국민이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공약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려면 정치적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신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정치를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는, ‘정치의 인격화’ 현상이 정치를 지배한다. 지금처럼 정치적 신뢰가 낮고 정치를 인물 중심으로 바라보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이미지를 보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러닝메이트 개념 도입과 섀도 캐비닛을 공개하는 것이다.

조기 대선이 끝나자마자 집무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 이후의 국정 운영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국민적 걱정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준비된 대선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대통령만이 접할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사전에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인수위원회 과정 없이 곧바로 집무를 시작한다면 처음부터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하지만 미리 섀도 캐비닛을 발표하고, 각 대선 후보 캠프 ‘그림자 각료’들이 현재 내각 각료들과 교류하도록 하여 차기 정권을 사전에 준비한다면 국정 운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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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7호 (2025.04.30~2025.05.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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