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504/13/news-p.v1.20250413.b8388d349aa74b848d3c5fc6bdf003b2_P1.jpeg)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선에 나올 것인지 전망이 엇갈린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는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에 나와 “출마가 거의 확실하다”고 전망했다. 한 총리와 같은 중·고등학교를 다닌 유인태 전 의원은 “전형적인 공무원상으로 안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 총리가 나오면 대선 후보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할수도 있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우 훌륭한 분”이라면서도 “출마를 위해 그만둔다 할 경우 상당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왠지 내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안 나온다는 쪽에 점심 정도 걸 생각이 있는데 그 이상 걸고 싶지는 않다. 한 총리가 내일 당장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와도 그렇게 이상할 것이 없다. 이미 국민의힘의 모든 희망회로는 그쪽으로 가지를 뻗는 중이다.
대한민국 출범 이후 가장 관운 좋은 공무원 소리를 듣는 한 총리는 프로필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벌써 되고도 남았다. 스마트하고, 국정에 대한 이해가 깊고, 몸가짐이 진중하고, 정서가 안정돼 있다. 한 총리가 최고봉이지만 이런 장점은 관료의 기본 덕목이다. 한 총리가 대통령에 적합하다면 다음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나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어떤가. 대한민국이 크게 실패할 일이 없을 것같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 선출이 그렇다. 엘리트 관료를 추리고 추려 최종 후보에게 대권을 이양한다.
한국은 국민이 직접 지도자를 뽑는 나라다. 이 제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정치인과 관료는 다른 종으로 간주된다. 출세한 관료가 정치로 넘어오기도 하지만 한명의 정치인으로 인정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지역구에서 3선 정도는 해야 관료물 빠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막스 베버는 관료의 특성을 ‘분노도 편견도 없이 자기 직무를 처리한다’고 규정했다(‘직업으로서의 정치’). 관료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 하나 있는데 ‘투쟁’이 그것이다. 관료는 상급자가 잘못된 명령을 지시하더라도 마치 그 명령이 자신의 확신과 일치하는듯 정확히 수행하는 능력으로 평가된다.
이와 달리 당파성, 투쟁, 격정, 분노와 편견이 핵심 요소인 직업이 있다. 정치인, 특히 정치 지도자다. 정치인은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본인이 책임을 지는 존재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에게 덮어씌우는 정치인은 자격이 없다. 베버는 관료적 성격을 지닌 정치가를 나쁜 정치가로 정의하고 ‘무책임하고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평가했다. 베버가 살았던 19세기말과 20세기 초 독일에는 관료형 지도자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이를 ‘관료지배’로 지칭하며 한탄했다.
한국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지만 그가 하는 것은 행정이 아니고 통치다. 통치는 최고도의 정치행위로 관료가 수행하는 과업과는 질적으로 다르고 따라서 요구되는 자질도 다르다. 정치 지도자는 권력의지와 선동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권력의지는 욕심이 아니라 실패와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쟁심이다. 선동은 대중의 가슴에 꿈을 주입하고 가끔씩 불을 지르는 기술이다. 이런 능력의 지도자를 앞세워 국가는 주기적으로 쇠퇴한 기력을 보충하고, 낡은 시스템을 개혁하며, 새로운 산업을 건설하고, 필요하면 전쟁도 한다. 그래서 제대로된 지도자를 뽑으면 나라는 흥하고 사악하고 무능한 선동꾼에 속으면 망한다.
나는 한덕수 총리가 대통령이 되면 그 과업을 무난하게 수행할 것이라 확신한다. 적어도 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않을 것같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될 가망은 없다고 본다. 한총리가 대선후보로 나서는 것은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400m 챔피언이 100m로 바꿔 출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400m와 100m는 쓰는 근육 자체가 다르다. 400m 선수가 100m에서 우승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국가대표가 고등학교 대회에 나가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른다. 정치초보 윤석열이 뛴 지난 대선이 그랬다. 문재인 정부 심판론이 거세게 이는 바람에 절반은 거저 먹고 가는 선거였다. 그런데도 거의 질 뻔했다.
일국의 대통령을 등 떠밀어서 만든 사례를 알지 못한다. 한 총리는 한번도 무언가를 걸어본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았다. 차분한 그는 선동적 자질과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가 뒤늦게 뛰어들어 저만치 앞서가는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역전극을 펼친다는 상상은 정치적 상상력이라기 보다는 잘못 계산된 정치공학으로 보인다. 계산을 어떻게 하면 그런 전망이 나오는지... 100m 경기 당일 400m 선수를 출전시키는 것은 동네 운동회에서나 하는 일이다. 대회를 준비해온 선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공상이 길어질수록 국민의힘 경선은 힘이 빠지고 역전의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노원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