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로 섣불리 쓴 기사가 누군가를 곤란하게 하거나, 잘나가던 일을 그르치게 만들기도 한다. '따뜻함'과 '무관심'이란 조합이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꽤나 절묘한 표현인 이유다.
그런데 꼭 기자 일이 아니더라도 과도한 관심이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부모와 자식, 연인, 연예인과 대중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그렇다. 관심은 애정의 표현이라지만 선을 넘게 되면 때론 물리적 폭력보다 더 큰 고통을 주곤 한다. 사사건건 간섭하기보다는 잠자코 믿고 지켜봐주는 태도가 서로에게 더 다정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별히 관심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도 많은데, 이런 서비스는 이제는 연락도 안 하는 지인이 지금 어디서 무얼 먹고, 어디를 놀러 갔고, 무얼 샀는지 등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사실 이처럼 모두에게 전시되는 모습은 그들의 일상에서 최고로 빛나는 '하이라이트'에 불과하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그토록 찬란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단편적인 순간들을 스스로의 삶에서 늘상 펼쳐지는 '백스테이지'와 비교하곤 한다. 타인과 달리 자기 자신의 일상만큼은 가장 내밀하고 어두운 단면까지 여과 없이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을 향한 어쩔 수 없는 과도한 관심이 스스로를 피로하게, 나아가 좌절하게 만든다.
불행하게도 만인이 의도치 않게 지나친 관심을 쏟게 돼 해가 되는 듯한 상황은 최근 정치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일 헌정 사상 초유의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살면서 한 번도 보기 힘든 대통령 파면을 우리는 불과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두 번이나 겪었다.
이 기간 여의도와 광화문, 한남동까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주말마다 무수한 시위와 집회가 열렸다. 때로는 정치인들이 직접 주도해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내기도 했다.
이상적 정치는 시민을 대표하는 이들이 공론장에서 숙의를 거쳐 공공의 이익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굳이 모든 구성원이 애써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국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가장 바람직한 셈이다.
반면 거리에 모이는 행위는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정치적 의사 표출이다. 이 장외 투쟁이 반복되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오랜 기간 시민들의 시선이 정치에 쏠려야만 했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먹고사는 일도 빠듯한 요즘이다. 고금리·고물가에 관세 충격까지 겹치며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생존 위기다.
끝 모를 분열의 파고를 넘어 새로운 국가 지도자 선출을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갈등과 불확실성에 지친 국민들은 이제 일일이 참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할 참된 일꾼을 염원하고 있다. 모두가 '따뜻한 무관심'과 함께 각자의 일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우수민 증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