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영향을 준 중요한 항목들을 간추려 보면 산업 혁명과 경제 성장의 명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쟁, 전통적 혈연사회의 흥망과 환경적 지연사회의 성쇠, 전제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대립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명제들은 서로 또는 각각 분화하거나 얽혀있다.
예를 들면 산업 혁명은 자본주의를 심화시키고 그것은 자본가와 노동자, 지주와 소작인 같은 계층의 분화를 발생시키며 결국 사회의 불평등과 잉여가치의 재분배 과정에서 갈등을 심화시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의 등장까지 이어지게 된다. 정치체제에서도 전제주의와 자유주의 국가들은 이합집산이나 편 가르기를 하여 세계대전을 두 번씩이나 치르고도 냉전과 열전을 계속 확대하거나 재생산하여 끊임없이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렇듯 인류의 정치 문화사가 이룩해 온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 보면 그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앞에서 서술한 대립 주제들에 이미 그 답이 있기 때문이다.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한 기대보다 지혜와 지식을 갖춘 인물을 찾거나 천거해야 한다. 지도자는 그냥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신뢰, 실천이성을 가진 지도자와 대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차세대 의회 대표들을 우리 손으로 직접 찾아내고 길러내야 한다.
둘째, 그렇게 하려면 우선 좌우로 갈라진 기성세대부터 화해와 타협의 계기를 만들고 서로 적개심과 증오의 에너지를 덜어내서 함께 태워버려야 한다. 절대 국민의 이름과 민주주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않도록 한다는 약속과, 욕설과 비방 허위사실 유포 등 정치인 품위를 훼손했을 때 국민소환제를 쉽게 하는 오스트라시즘의 절차와 충족 요건과 기준도 낮춰보자.
셋째, 대의 민주주의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려면 전체 국회의원 수를 축소 시켜야 한다. 점진적으로 줄이되 3번의 선거를 거처 150인 정도를 목표로 잡아야 효율적 국회가 될 것이다. 시군구 지역 대표제를 폐지하고 반드시 중선거구제로 나아가야 한다. 중선거구제와 전국 총투표자수 정당 추천 비례대표제를 병행하면 양당제의 폐해를 보완하는 어느 정도 느슨한 대립 관계가 기대되는 다당제가 진행될 것이다.
넷째, 차기 정부는 무엇보다도 부의 집중 현상을 완화하고 중산계층의 확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소득 격차가 심화하면 포퓰리즘과 독재의 그림자가 다가오기 쉽다. 모든 인간이 노동시간을 제한 없이 택할 수 있어야 하고 소득과 취업의 기회를 스스로 늘려나가는 데 어떤 제약도 두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는 노동환경과 재해 예방, 노동 근로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집중해야지 지갑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얼마를 벌던 자유 시민은 합법적 범위에서 수입을 늘릴 권리가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풀뿌리 가족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중산층의 소득이 늘어나야 가정경제 Economia Pura가 튼튼해지는 것이다.
다섯째,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는 인구 절벽 시대에 맞춰 나가야 한다. 인구 3천만 내지 4천만의 축소 지향형 국가 정책을 검토해야 할 시기가 이미 도래했다. 정년 연장과 정기적 연금 수정제도 도입 등의 일을 대통령이 혼자 결정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미래는 올리가르히, 즉 직능별 과두제로 가야 한다. 예를 들면 물 통령은 공급자 관점이 아닌 소비자 관점에서 깨끗한 물을 저장 담수 배송 위생처리 해서 공급하고 우수와 하수를 순환 처리하는 일을, 쓰레기 통령은 쓰레기 분류체계와 재활용 체계와 자원 회수 체계를 총괄하는 등 지식지도 체계(Landkarte des Wissens/Knowledge Map System)를 통한 새로운 기능을 유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것이 더불어 (바르게) 잘 사는 세상, 즉 웰빙 Well Being 공화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다.
[김영섭(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