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베테랑’ 김건 국민의힘 의원 인터뷰

지난 4일 탄핵으로 막을 내린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은 ‘가치외교’라는 말로 요약된다. 윤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외교정책의 중심에 두고 내 편과 네 편을 보다 분명하게 나눴다.
이로 인해 미국·일본과는 더욱 가까워졌지만 중국·러시아와는 소원해졌고, 남북관계는 철저히 단절됐다. 가치외교는 야당이 쓴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도 포함됐을 정도로 격렬한 논쟁을 불렀다.
이러한 가운데, 국민의힘 내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문가인 김건 의원은 지난달 말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가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89년 제23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지난해까지 외교 현장을 지킨 베테랑이다. 외교부에서 35년 동안 △북미국 심의관 △차관보 △주영국대사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북핵수석대표) 등을 거쳤다. 윤석열 정부 초반에는 대북정책 개념인 ‘담대한 구상’ 성안을 주도했다.
![2023년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와 난해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 당시 장면.(왼쪽부터) [매경DB 자료사진]](https://pimg.mk.co.kr/news/cms/202504/13/news-p.v1.20250411.6fe1ed60c955431b9a756799a120916b_P2.jpg)
김 의원은 인터뷰에서 가치외교에 대해 “방향성을 두고 논쟁도 있었지만 지난 3년 간 한미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한중관계도 우리가 원하는 상호존중으로 가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가치외교가 우리 국익에 그렇게 나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 기조가 이후로도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성패와는 별개로 가치외교가 이룬 성과는 그 나름대로 받아들여 후임 정부도 계승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는 미중 전략경쟁 격화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봤다. 한국 대외정책의 중심축인 한미관계인 만큼, 미중관계 변화와 진영 간 대립이 커지는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 전략도 변화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과거 문재인 정부가 갈라지는 세계 속에서 한미·한중 관계를 모두 회복하려다가 미국으로부터는 의구심을 사고, 중국으로부터는 ‘미국 동맹국 중 약한 고리’로 인식됐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중국은 처음에는 한국에 여러 압박을 가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 기조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뒤 압박 수위를 조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리창 중국 총리가 서울을 방문해 4년여 만에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 복귀한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이 중국과 상호존중하는 가운데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한·중·일 협력구도가 좋은 도구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일본과의 공조가 중국을 상대할 수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시라’호가 정비를 마치고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을 떠나고 있다. 월리 시라호는 지난해 9월부터 유지·보수·정비(MRO) 작업에 들어갔고 약 6개월 만에 종료됐다. 오른쪽 아래는 MRO 이전 모습. [매경DB 자료사진]](https://pimg.mk.co.kr/news/cms/202504/13/news-p.v1.20250411.fb74719f717d411f8160ff2315a208f9_P2.jpg)
이날 김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 공세에 대응해 한미 관계와 동맹을 유지·강화하기 위해서는 차분하고 실용적인 기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사실이 알려진 이후 벌어진 논란과 같은 일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차분하게 미국과 협의해 대응할 일을 정치 쟁점화해서 크게 키워버리면 되레 정부가 (미국에) 매달려야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에서 (한미 간 현안이) 큰 문제가 됐다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알게 된다면 이를 자신의 카드로 활용할 여지만 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한국이 본능적인 거래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관계에 기반한 맞춤형 협상카드를 만들어 철저한 주고받기식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적시에 제시하고, 한국도 이익을 취하는 윈윈 카드를 늘려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 의원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무장보다는 ‘핵잠수함’ 보유를 지향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도미노처럼 무너뜨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워싱턴DC 조야에서 “한국이 핵잠수함을 도입하는 것은 비확산체제와 무관하다는 이야기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이 명시적으로 핵잠수함 확보 의지를 밝힌 상황에서, 한국도 미국·영국·호주 간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를 참고해 핵잠수함 도입 숙원을 이룰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미연합 공중훈련 장면. [매경DB 자료사진]](https://pimg.mk.co.kr/news/cms/202504/13/news-p.v1.20250411.237049e3241e46c3a510d016644e01f5_P2.jpg)
김 의원은 향후 대북정책 역시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에 기반한 제재·압박 기조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30년 이상 지속된 대북제재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속도를 늦추고 체제 부담을 더하는 효과가 있는 이상,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위해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동맹과 더불어 자체적인 대북 억제력을 키우는 자강도 끊임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핵전력과 더불어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의 또다른 한 축인 한국군의 첨단 재래식 전력을 키워야 한다고 김 의원은 밝혔다.
그는 한국군이 기존 북한 핵·미사일 대응 전략인 3축체계(킬체인·한국형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에 사이버·전자전 역량을 더한 ‘4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사용하기 전에 악성코드나 전자기파로 무력화하는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 전략이 절실하다고 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