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키고 꼬여있는 스파게티
골프존 역사처럼 굴곡 담겨
하나씩 풀다 보면 해답 찾아
경영도 인생도 다 똑같더라

김영찬 골프존그룹 회장은 한국을 스크린골프 종주국으로 만들고, ‘시티골프’라는 새로운 개념의 도심형 골프장 시스템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주인공이다. 삼성전자에서 퇴사한 뒤 지난 2000년 54세의 나이로 창업해 골프존그룹을 해외법인을 포함해 매출액이 1조원을 넘어선 거대 기업으로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청춘이다. 지난 2004년부터 20년 넘게 골프존을 취재해온 기자의 “밥 한끼 하며 편안하게 골프존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요청에 김 회장으로부터 응답이 왔다.
1946년생인 김 회장의 ‘소울 푸드’는 당연히 한식이나 어릴적 먹었던 추억의 음식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김 회장을 만나러 간 곳은 골프존의 상징인 대전의 골프존 조이마루. 그가 정한 약속장소는 조이마루 2층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타볼라타였다. 김 회장이 꼽은 소울 푸드는 스파게티. 김 회장은 “스파게티는 내가 54세에 회사원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을 준 음식”이라며 “복잡한 일들로 고민하던 어느 날 스파게티를 먹으며 무언가 뇌리를 스쳤고 경영에 답을 찾았다. 얘기 들어보면 안다”며 웃어 보였다.
먼저 달콤한 단호박 스프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김 회장은 “먼저 나오는 스프도 좋아한다. 겉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편안함을 주는 음식이다. 경영도 똑같더라. 요란한 구호보다 기본과 본질에 충실한 배려와 소통이 조직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언제나 ‘디테일이 승부를 가른다’고 강조하는 김 회장.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스프 하나에서도 스토리를 찾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가 나왔다. 김 회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사업을 하면 복잡한 일이 많이 생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을 할때 스파게티를 먹게 됐고 ‘이거다’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스파게티를 잘 보면 수많은 면이 얽히고 꼬여있다. 하지만 먹을 때 포크로 면을 잡고 부드럽게 돌리면 의외로 쉽게 풀어진다. 아무리 복잡해도 하나하나 풀어나가다 보면 해결할 수 있다는 영감을 얻었고 힘을 냈다.”
스파게티 경영론은 이게 끝이 아니다. 김 회장은 “테이블에 올려진 스파게티는 완성된 맛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면이 섞이고 엉켜있다. 골프존그룹도 마찬가지다. 순탄한 적은 없었다. 업주들과 갈등, 특허 소송 등 수 많은 굴곡이 있고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모여 지금의 골프존그룹이 됐다. 마치 이 스파게티 처럼”이라며 미소지었다.
본격적인 대화는 어떻게 늦은 나이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김 회장은 “시작했을 때는 그저 전국 3000개쯤 되는 골프연습장에 몇 대씩만 팔아도 노후 걱정 없겠다는 생각 뿐이었다”며 “그때는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고, 평생 질리지 않는 일’이라는 원칙을 세워 아이팀을 찾았다. 결국 골프였고 ‘세상에 없던 골프’를 구상했다”라고 설명했다.
먼저 자신의 장점을 찾아봤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삼성전자에서 시스템사업 부장으로 있으면서 기술개발부터 팀 운영, 마케팅 등 모든 부분을 알게 됐다. 최초·최고를 지향하는 ‘삼성 DNA’가 심어진 것은 보너스였다.
김 회장은 스크린골프 시스템의 근간은 ‘상상 라운드’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자주 가던 대전의 9홀 골프장 코스를 너무 잘 알기에 연습장에서도 마치 실제 라운드를 하듯 드라이버부터 아이언샷, 트러블샷 등을 상상하며 연습했다. 그때 생각했다. 상상만 하지 말고 눈앞에 이미지가 보이면 훨씬 좋겠다. 그리고 바로 상품 계획, 기획에서 개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김 회장은 생각의 방향이 다르다. 그에게 장애물은 넘어야 할 목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골프로 비유하자면 러프고 벙커고 트러블샷일 뿐이다.
“사업은 늘 도전의 연속이고, 그 도전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더라. 실패가 나오면 멈추는 대신 다시 스윙해야 한다. 골프에서 한 샷이 빗나가도 다음 샷에서 만회할 수 있듯, 골프도 인생도 사업도 다 똑같았다.”

“멈추지 않고 계속 스윙하는 게 중요”
그의 예상대로 2001년 첫 제품이 나온 이후 첫 해 10억원 매출을 올렸고 이후 20억원, 30억원으로 늘어났다.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를 유지하며 적당히 벌고 소일거리로 운영하기에는 적절했다. 하지만 업주의 한마디가 그를 자영업자에서 기업가로 변신하게 했다.
“2006년쯤 강원도 강릉에 시스템 설치를 하러 갔는데 스크린골프 사업을 시작하시는 사장님이 ‘내 전 재산을 투자했다. 잘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이 일을 계속 해야할지에 대해 1년이나 고민했다. 그리고 기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곧바로 경영 철학, 조직문화 등 제대로 된 회사를 위해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만든 골프존의 미션은 ‘누구나 골프를 쉽게 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새로운 즐거움과 유익함을 창출한다’는 정의도 세웠다.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명쾌하게 세워놓으니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마침내 2011년 골프존은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며 1조 원 규모의 상장기업, 코스닥 ‘빅10’에 이름을 올렸다. 첫 골프존 시제품이 세상에 나온 이후 11년만에 다시 느낀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내인 전병인 여사와 직원들, 투자자들에게 내 노력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났다는 게 김 회장 얘기다.
꼬여 있는 스파게티 면 처럼 고비도 있었다. 2015년이다. 외부 회사와 총판계약을 맺고 판매 권한을 준 것이 화근이었다. 우후죽순처럼 매장이 생기기 시작했고 부작용으로 점주들이 회사에 찾아와 시위하기도 했다. 상권 보호 지침을 만들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위기는 기회. 김 회장은 오히려 회사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할 기회로 삼았다.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1년간 시스템 판매를 중단했다. 점주들과 상생의 기반을 만들었다.
최근 골프존은 다시 한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전 골프존 시스템이 연습장과 필드의 중간이라면, 이제는 필드골프와 스크린골프가 합쳐진 ‘하이브리드 골프’인 시티골프다.
드라이버샷, 아이언샷을 스크린에서 한 뒤, 눈앞 스크린이 올라가며 진짜 그린이 펼쳐지는 시티골프. 김 회장은 “2024년 중국 톈진에 1호점이 오픈했다. 시티골프가 구현된 모습을 본 순간 정말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감동이 벅차올랐다. 시티골프는 된다는 확신이 생겼다”라고 떠올렸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펼치는 골프존의 중국 진출 전략은 ‘역발상’의 정수다.
“중국은 골프에 대해부정적 인식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는 골프를 강조하지 않았다. ‘디지털 스마트 스포츠’로 접근했다. 환경파괴 없고, 많은 사람이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 그리고 골프를 통해 규칙을 지키고 스스로 판단하며 ‘선진 시민의식’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통했다.”
2024년 톈진 1호점에 이어, 올해 8월에는 옌지에 2호점이 생겼다. 반향은 컸다.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등 주요 거점 도시 10여곳에서 시티골프를 운영하겠다고 적극 나서고 있다. 골프장 건설이 힘들어진 한국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 회장은 “내년엔 업그레이드된 ‘글로벌 시티골프 대회’가 열린다. 총상금은 두배로 올린 40억원. 그리고 전 세계를 한국, 아시아, 미주, 유럽 등 4개 권역으로 나눠 예선전을 열고, 최종 선발된 인원을 모아 총 160명이 출전하는 시티골프 대회를 열 계획이다. 결승전은 내년 12월 말에 열린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의 최종목표는 ‘글로벌 토탈 골프플랫폼 기업’이다. “스크린골프로 대중화를 시키고, 전 세계를 네트워크로 함께 즐기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전 세계가 골프에 입문해 레슨, 용품, 필드까지 골프 산업의 전반에 걸친 글로벌 플랫폼이 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가 골프존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나 골프를 즐기는 ‘골프존문화제국’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김영찬 회장은
△1946년 8월 출생 △성동공업고등학교-홍익대학교 기계공학과 △ GM코리아, 삼성전자(시스템사업부장) 근무 △2000년 골프존 창업 △2009년 벤츠기업대상 석탑산업훈장 △골프존문화재단 이사장(2010년- 현재)△2011년 코스닥 상장 △유원골프재단 이사장(2015년- 현재) △2016년 대표이사직 사퇴,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2023-2025년 골프Inc 선정 ‘아시아 골프 산업 영향력 있는 인물’ 3년 연속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