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 4%대 그칠 것”...中 전망치 5%보다 내려 잡아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18년 만에 중국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코로나19 이후 소비 부진과 부동산 시장 침체에 대응해 중국 정부다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중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시장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도 중국의 성장 전망을 짓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피치는 4일(현지 시간) 중국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로 낮췄다고 밝혔다. 피치는 2005년 ‘A-’에서 ‘A’로 상향한 이후 2007년 ‘A+’ 등급으로 재차 조정한 뒤 약 18년간 유지하던 등급을 이번에 처음으로 내렸다. 지난해 8월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지 약 8개월 만에 실제 등급 강등이 이뤄졌다.
이번 조정으로 중국 신용등급은 일본, 아이슬란드,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등과 같은 수준인 ‘A’ 등급이 됐다. 한국(AA-)은 여전히 중국보다 한 단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피치는 이번 강등의 주된 배경으로 재정적자와 공공부채를 꼽았다. 중국 정부는 올해 재정적자 비율을 GDP 대비 4%로 설정했지만 피치는 실제로는 8.4%에 이를 수 있다고 진단한다. A등급 국가 평균 재정적자율(2.7%)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세입 기반이 줄어든 점도 부담이다. 지방 정부의 토지 매각 수입 감소와 감세 정책이 겹치며 중국 재정수입은 2018년 GDP의 29%에서 2025년 21.3%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피치는 “구조적인 수입 감소가 계속되고 있어 근본적인 재정 개혁 없이는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제 성장 둔화도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피치는 올해 중국 성장률을 4.4%로 전망하며 중국당국이 제시한 5% 목표 달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소비 위축, 미국의 무역 압박이 겹악재로 작용해 발목을 잡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정부의 재정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의 무역 마찰도 신용등급 하락 배경으로 거론된다. 이번 발표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조치가 직접 반영되진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에 부과한 관세가 기존 20%에 이어 상호관세 34%까지 포함될 경우 총 54%에 달하는 수준이어서 중국 경제에 하방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당국은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에 즉각 반발했다.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재정부는 피치의 등급 하향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편향적이고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중국 경제는 여전히 견고한 성장 기반과 회복력을 지니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5%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았다”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도 최근 중국의 2025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4.6%, 4.5%로 상향 조정했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열린 양회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설정하고 재정적자 목표를 역대 최고치인 GDP의 4%로 잡는 등 적극적인 재정 정책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