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룰 게 많지 않아 느슨해질 만도 한데 리디아 고는 ‘메이저 석권’이라는 더 큰 목표를 얘기했다. 2025년 새 시즌 ‘보스골프’를 입고 출격하는 그녀와의 일문일답을 공개한다.

리디아 고는 LPGA투어 통산 22승을 거둬 ‘리빙 레전드’로 불린다. 2023년 시즌 최종전에 나갈 자격조차 얻지 못할 만큼 부진해 전성기가 끝났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2024년 시즌 3승을 거두고 파리 올림픽 금메달까지 획득하며 ‘동화 같은 한 해’를 보냈다. 그 결과 일생의 목표로 꼽을 만한 ‘LPGA 명예의 전당’ 입회를 확정했고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최고 시민 훈장(Dame Companion)을 받는 등 스포츠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리디아 고는 더 이룰 게 많지 않아 느슨해질 법도 한데 또 다시 꿈을 꾼다고 했다. 선수로 지내는 동안은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며 선수 생활 중 4개의 메이저 대회를 모두 한 번 이상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월 6일, 서울 아이엠탐 본사에서 진행된 ‘보스골프 후원 조인식’에서 리디아 고를 만나 새 시즌 보스골프 의류와 함께하는 각오와 앞으로의 목표, 아기자기한 결혼 생활과 ‘현대가 며느리’의 일상까지 담아봤다.

시즌 종료 후 어떤 시간을 보냈나. PGA, LPGA 남녀 혼성 대회인 ‘그랜드 손튼 인비테이셔널’에서 제이슨 데이와 함께 시합을 하느라 시즌이 늦게 끝났다. 그리고 2주 동안 짧은 휴식을 즐겼다. 한국에서도 1주일 정도 시간을 보냈고, 대부분 뉴질랜드에서 장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골프 선수로서 특별한 한 해를 보냈기 때문에 지치는 줄 몰랐고, 내가 대표하는 나라의 행사를 진행한다는 뿌듯함으로 연말을 채웠다.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최고 시민 훈장’을 받은 소감은. 생각지도 못한 큰 영광이다. 골프 선수로서 ‘세계 랭킹 1위를 할 거야’ 하는 목표는 있지만, 살면서 ‘훈장을 받을 거야’ 하는 목표는 갖기 쉽지 않다(웃음). 그래서 신기하다. (인터뷰 당일 기준으로) 2025년도 훈장 수여식이 이뤄지지 않아 아직 기념 사진이 없다.
뉴질랜드에서 전개하고 있는 활동이 궁금하다. 매년 뉴질랜드 골프 협회와 주관하고 있는 ‘리디아고 장학 프로그램’이 있다. 2024년에 퀸스타운 지역에서 3명의 뉴질랜드 대표 유망주들과 시간을 보냈다. 나처럼 한국 교포인 학생도 있었고 중국, 뉴질랜드 교포 선수들로 구성됐다. 장학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6년 정도 됐다. 유망주 발굴에 관심이 있어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한국, 미국에서도 활동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새해부터 보스골프와 함께한다. 난 ‘패알못(패션에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후드에 레깅스를 매치하고 다닌다. 명품으로도 유명한 보스와 함께 패션 지식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 보스는 모델들이 런웨이 하는 브랜드 아닌가. 나의 이미지와 잘 맞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또 보스골프를 선택한 이유는 신재호 회장님과의 오랜 인연 때문이다. 신 회장님이 PXG 수입사인 카네도 운영하고 있는데, 2021년까지 PXG 클럽을 사용했다. 올해도 좋은 파트너십을 이어가고 싶다.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기록을 남겼다. 매번 기록을 경신하는 기분이 어떤가. 기록을 세우면 좋지만 매번 ‘강해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게 힘들긴 하다. 그래도 그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록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돌이켜보면 2~3번의 기복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감사하게도 빨리 떨쳐버릴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기다리면 좋은 기록이 나올 테니 내 코치와 팀을 믿고 좌절하지 않으려고 한다.
‘강해지는 과정’을 버티는 원동력이 있다면. 첫째는 타고난 인복, 둘째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꼽고 싶다. 내 곁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가족이 큰 힘이 됐다. 2023년에 언니와 밥을 먹다가 ‘나는 왜 이렇게 기복이 많지?’ 하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파리 올림픽 세컨드 라운드를 하는 중간에 문득 기복이 심한 ‘그 시기’를 견딘 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지 않는 스타일인데 그 순간만큼은 포기하지 않은 내 자신이 대견했다. 그리고 승부욕이 원체 강하다. 아버지에게도 지기 싫어한다. 그런 복합적인 환경과 성격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가족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남편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이해심이 많은 남편을 만난 건 내 복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평범한 아내가 아니다. 나의 상황을 대입한 배우자와의 결혼 생활을 상상하면 이해 못 해줬을 것 같다. 지난 브리티시 오픈 때 에피소드가 있다. 후반 라운드에서 공을 다 써가는 상황에 맞닥뜨렸는데 남편이 급하게 호텔 룸에 가서 공을 가져다준 적이 있다. 외조(?)를 잘 해주는 남편이다.
남편과 플레이를 하면 어떤 분위기가 연출되나. 둘 다 엄청 집중해서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조용한 분위기다. 남편은 선수인 나만큼이나 골프에 진심이다. 어떨 때는 나보다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럴 땐 조용히 지켜본다. 남편도 레슨을 따로 받고 있기 때문에 내게 레슨 팁을 요구하진 않는다. 서로 승부욕이 넘치는 스타일이라 부부관계를 떠나 경쟁자로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더 재미있는 요소다.
시아버지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에겐 레슨을 하고 있던데. 불가리안 백을 이용해서 훈련을 하고 계시는 걸 보고 첨언해드렸다. 그 사진을 SNS에 올리신 것 같다. 불가리안 백은 축을 잡고 코어를 이용해 회전하는 훈련에 적합하다. 나도 즐겨 하는 훈련인데 부회장님도 그걸 하시더라. 감히 평가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으나 정 부회장님은 골프를 엄청 잘 치신다. 시차가 있어도 중계를 챙겨 보시고 응원 메시지를 꼭 보내주시는 편이다. 시부모님이 올림픽에 보러 오셔서 더 골프를 좋아하시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
골프 선수가 아닌 한 여자로서의 목표를 들어보고 싶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게 없었다. 늘 골프만 바라봤다. 어릴 때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도 못 놀았다. 아직도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이런 삶을 이해해주고 서포트해주는 새 가족을 맞이해서 고맙고,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남편한테 고맙다. 그런 게 나의 복이라는 걸 잘 안다. 내 일을 잘 해내면서, 내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충분히 보내려고 한다.
커리어 면에서 다른 것에 도전해보고 싶진 않나.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은 없지만, 대학생활을 끝내지 못한 게 아쉬워서 공부를 먼저 하고 싶다. 현재 심리학을 전공하다 휴학한 상태다. 내가 가진 골프 경력과 심리학 지식을 합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골프를 포함한 스포츠 업계의 발전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추후 심리학 전공 과정을 수료해 스포츠계 발전을 이끌고 싶다.
올해 선수로서의 목표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하고 싶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은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서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16살 때부터 점차적으로 에너지 레벨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선수 활동을 지속하는 것도 목표다. 정말 성적이 잘 나왔을 때는 페어웨이 안착률이 70% 이상이었다. 올해는 73% 이상으로 샷감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이며, 미국 플로리다에서 기량을 정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