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이 논란을 딛고 첫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전부터 논란이 일었던 ‘9호 처분’ 소년범 출연자의 사연이 공개됐음에도 여전히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첫방송된 ENA 새 예능프로그램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이하 ‘레미제라블’)은 짧지만 강렬한 서사를 담은 20인 도전자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온 인생 역전의 기회를 잡기 위해 100일간 혹독한 스파르타식 미션을 수행하며 이를 극복하는 이야기가 담긴 성장 예능. 백종원 대표를 비롯해 일식반 김민성, 고기반 데이비드 리, 중식반 임태훈, 양식반 윤남노 셰프가 20인의 참가자들을 돕는다.
이날 방송에서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참가자들이 촬영장에 모이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레미제라블’은 방송 전부터 출연자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20인의 참가자 가운데 9호 처분을 받은 소년범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다. 9호 처분이란 단기 소년원 송치 처분으로 소년보호처분 중 두번째로 높은 처분이다. 이미 처분받았음에도 재범을 저지르는 경우나 가정 보호 여부와 상관없이 중한 죄질의 비행을 저지른 경우 소년원에 단기(6개월 이내)로 수감된다.
9호 처분을 받았던 소년범은 7번 참가자 김동준이었다. 김동준은 “안 잠긴 차를 열고 내용물을 털어서 휴대 전화도 팔고, 그 안에 있는 카드도 썼다. 셀 수 없다”며 자신의 범행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 아빠가 이혼하게 되면서 작은 아빠 집으로 넘어갔다. (간지) 3개월 뒤부터 교육이 제대로 안 됐다는 이유로 계속 맞았다. 항상, 일상이 맞는거였다. 목 밑으로 해서 다 멍이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갈색 피가 섞인게 나왔다. 그렇게 맞고 나서 3일 동안 밥을 못 먹었다”며 “더럽고 냄새난다는 이유로 애들한테 왕따당하고 맞기도 하고 살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 쯤 올라갔을 때는 집을 결국 나왔다”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들려줬다.
그러면서 그는 “배고프니까 다른 사람 차에 있는 돈을 손대기 시작해서, 배고프니까 또 하고 있고. 무한 반복이었다. 소년원 갔을 때였는데, 선생님 한 분이 해줬던 말이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포기하려고 하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때부터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기도 한다. 피해자분들 대면을 못 해서, 사과를 드리고 싶다”고 늦게나마 사과했다.
‘도전자의 입장에서만 확인된 이야기’라는 자막이 달리긴 했으나 방송을 통해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미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누리꾼들의 반응도 대체로 차가웠다. 일부 누리꾼들은 “죗값을 다 치른 것 아닌가”, “한 번쯤 기회를 줘도 될 것 같다”, “어릴 때 잘못” 등 온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나 다수 누리꾼들은 “범죄자 미화로 보인다”, “가해자를 용서하고 기회를 주는 건 피해자들이지 제 3자가 아니다”, “선량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줄 기회도 부족하지 않나”, “남의 차에 있는 휴대폰 팔고, 카드 쓴게 장발장이 빵 훔친 것과 같나?”, “같은 환경이라도 이 악물고 스스로 바르게 크려는 아이들을 도와야하는 게 아닌가”, “범죄에 이유가 있는 것 처럼 포장하지 마라” 등의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27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한경훈 PD는 출연자 선정 기준을 묻는 질문에 “776명이 지원했다. 세컨드 찬스가 없는 분들을 선정했다. (우리 사회가) 한번 실패하면 나락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한다. (출연자들은) 그런 분들이 많았다”며 “1차적 검증은 다른 프로그램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했다. 흠이 있는 삶을 산 분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 분들은 걸러냈다. 결격사유가 없다곤 말 못하지만 충분히 ‘저런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백종원 역시 “현시대가 사회적 약자들, 청년들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운다. ‘청년을 믿는다’고 하면서 기성세대가 기회조차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진짜 창업을 꿈꾸는 분들에게도, 기회 없던 분들에게도, 젊은 청년들에게도 실마리와 희망 줄 수 있단 생각에 참여했다”고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짚은 바 있다.
그러나 출연자들을 한 바구니에 담기엔 열심히 살아온 다른 참가자들에 미안한 일로 보였다. 본인의 잘못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참가자도 있지만, 본인의 잘못이 전혀 없이 피해자였을뿐인 출연자도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방송 초반 공개된 참가자들의 상황을 담은 꼬리표만 봐도 가정폭력 피해자, 권리금 사기 피해자, 무수저, 자립 준비 청년, 이글스 방출 투수, 망한 아이돌 등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이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6번 참가자는 자신을 “전직 망한 아이돌, 현직 백수 28살 김국헌”이라고 소개했다. 김국헌은 “그룹 마이틴으로 데뷔했다. 데뷔하고 뭔가 연예인의 삶이 펼쳐질 줄 알았지만 놀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당시 회사에선 빨리 띄우고 싶으니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내보냈다. 저도 그 기회를 잡고싶기도 했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속도로에서 뛰어내리려고 차 문을 열었다. 죽고싶을 만큼의 기억이다. 당시 어리석은 선택을 했었다”며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김국헌은 한 때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 조작 피해 사건 피해자였다. 김국헌은 ‘프로듀스X101’에 함께 참가했지만 3차에서 투표 결과 조작으로 탈락했다. 이 사실은 2020년 안준영 PD와 김용범 CP 등에 대한 사기 등의 혐의 항소심 선고에서 피해 연습생들의 이름이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19번 김현준의 꼬리표는 ‘철없는 싱글대디’였다. 20살에 첫 아이를 가져 21살에 아빠가 된 사람이었다. 연년생 아이들을 낳은 뒤 이혼을 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김현준은 “DJ로 공연을 하고 그걸로 생계 유지를 하고 있다. 엄마가 없으면 아빠가 자주 붙어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저는 인생을 바꾸고 싶다”며 가장의 책임감을 보여줬다.
이뿐 아니라 14번 손우성은 사업 실패로 5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 40대 가장이었고 13번 하진우는 함경북도에서 탈북 브로커로 활동하다가 가족을 살리기 위해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사람이었다.
앞서 지난 2013년 비행 청소년들을 음악으로 갱생시키겠다는 콘셉트로 제작된 SBS 예능프로그램 ‘100일간의 기적 프로젝트 송포유’가 당시 범죄를 미화한다는 비판과 논란 속에서 막을 내린 선례가 있다. 당시 출연 학생이 압구정역 롤스로이스 차량 돌진 사건의 가해자로 밝혀져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물론 제작진의 의도처럼 두 번째 기회도 필요하다. 다만 무리수 출연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시청자들의 몫이다.
‘9호 처분 소년범’이라는 수식어로 일단 눈길을 끌었다면 그로 인해 불거질 수 있는 논란과 부담도 감내해야 한다. 김동준의 어린 시절에 대한 고백이 사실이라면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누가 반대할까. 앞으로 프로그램과 김동준이 보여줄 진정성이 그 기회를 가를 것이다.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