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사설

사법부 전방위 압박에도 법원은 ‘침묵모드’...삼권분립 위기 막을 결기 보여라 [매경포럼]

김병호 기자
입력 : 
2025-05-20 11:42:09

뉴스 요약쏙

AI 요약은 OpenAI의 최신 기술을 활용해 핵심 내용을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합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려면 기사 본문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고교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삼권분립의 이상적인 모습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국회가 법원보다 훨씬 많은 통제 수단을 가지고 있어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법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헌법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야 하지만 현재는 내부의 반발과 외부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이 법원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판사들이 외부에 대한 저항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법원 스스로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언어변경

글자크기 설정

중·고교 교과서를 보면 삼권분립에 대해 정부·국회·법원이 삼각형 3개 꼭지점에 놓여 견제를 주고받는 방식이 화살표로 표시돼있다. 권력 주체 간 힘의 균점을 이룬 이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헌법이 규정한 권한이나 정치 현실에 대입해보면 턱도 없는 소리다.

지금 가장 문제 되는 법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견제 수단은 반대 편에 비해 훨씬 많다.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권력 주체만 나뉘어선 안되고 권한 크기도 비슷해야 하는데 현실은 애초부터 국회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헌법상 국회 전횡을 막을 법원의 견제 장치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그친다. 반면 국회 다수당은 탄핵소추 발의로 판사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고, 최근 있은 대법원 청문회를 비롯해 국정조사, 특별검사도 가능하다. 예산을 갖고 법원을 주무를 수도 있다. 헌법 104조를 보면 대법원장·대법관 임명은 국회 동의를 얻도록 돼있다. 불체포·면책특권에 숨어 판사들의 사생활 의혹 폭로 같은 여론전도 국회는 법원을 능가한다. 개헌을 통해 삼권분립의 질적 개선이 절실한 이유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찾아 사법부 수호 및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5.05.15 한주형기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찾아 사법부 수호 및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5.05.15 한주형기자

법원의 가용 수단이 부족한데다 판사들에게 삼권분립 퇴행을 막으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는 점도 문제다. 오는 26일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식이 나왔을 때,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후 공세에 몰린 조희대 대법원장을 구하기 위한 ‘민주당 규탄 대회’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대선 전 빠른 판결로 정치 개입 오해를 낳았다며 ‘법원의 정치적 중립’이 안건이라는 얘길 듣곤 황당했다. 판결이 맘에 안 든다고 대법원장까지 공격하는 것은 일반인도 혀를 찰 일인데, 그 조직원들이 부당성을 반박하기는커녕 민주당 논리를 받들듯 한다니 충격적이다. 물론 법관회의에 동의한 판사들이 적은데다 이후 내부 반발로 사법부 독립 침해 건도 함께 다루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민주당이 판사에 대한 탄핵 위협과 ‘사법 남용 진상규명’ 특검법 발의와 함께 대법관 증원 등 일명 ‘5대 악법’을 밀어붙이는데도 판사들은 말이 없다. 얼마 전에는 판·검사 등이 법을 왜곡해 사법 처리를 하면 최대 10년 징역형을 규정한 법안도 나왔다. 법정 내 판사들이 앉는 법대(法臺) 높이를 다른 소송 당사자들과 같아지도록 낮추는 법안도 있다.

사법부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언론과 국민의힘 등 외부에선 삼권분립 붕괴 우려를 제기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법원은 침묵 모드다. 법원 대응은 이재명 후보 관련 5개 재판 모두를 대선 이후로 미뤄준 것 뿐이다. 힘있는 정당에 부화뇌동하는 것인지 조직의 위기를 보고도 성명서 하나 내지 않는 모습이 측은할 정도다. 법원 스스로 삼권분립 수호 의지가 없는데 외부에서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하기야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법부 평판과 신뢰를 망치는데도 오래도록 내부 자정을 못할 정도니 방관하는 습성이 고착화된 것인지 모른다.

작금의 삼권분립 위기를 놓고 아르헨티나, 헝가리 등의 과거 사례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이제라도 사법부는 결기를 갖고 헌법상 권한이라도 제대로 써야 한다. 민주당 법안이 막장이라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통제해야 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조항(103조)에 따라 개정안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면 적극 나서야 한다. 다수당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탄핵소추안을 31회나 발의했는데, 법원이 독립된 판단을 갖고 권한 행사를 못할 이유가 없다. 다만 위헌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임명부터 국회 입김이 크다는 점에서 소기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원이 뭔가 결기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삼권분립은 쉽게 죽지 않는다.

대법원, 민주당 이재명 후보 선거법 상고심 선고     (서울=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장내 정돈을 선언하고 있다. 2025.5.1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대법원, 민주당 이재명 후보 선거법 상고심 선고 (서울=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장내 정돈을 선언하고 있다. 2025.5.1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민주당 폭거에 국민이 거의 저항하지 않는 것은 법원이 자초한 일이다. 판결이 정치적 편향 없이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은 줄어든지 오래다. 국민이 사법부를 오히려 개혁 대상으로 본다면 판사들을 위해 광장에 나가줄 리 없다. 그런 점에서 판사는 인공지능(AI)처럼 외부에 휘둘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재판하는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 또 삼권분립 수호를 남에게 기대려 하지 말고 법원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해야 한다.

민주당도 사법부 겁박을 그만 멈춰야 한다. 최근엔 지귀연 판사의 술집 접대 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있는데, 자칫하다간 대선에서 판사 집단을 포함한 법조계 부메랑을 맞을지 모를 일이다. 유흥업소 접대를 받고서 얼굴이 나온 사진을 남긴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더욱이 몸조심해야 할 판사 신분이라면 더욱 그렇다. 민주당은 사진에 나온 동반자가 누구인지, 접대를 했다면 얼마의 비용으로 어떤 대가가 오고갔는지, 아무 얘기도 없이 어디서 찍었는지 모를 사진을 증거로 내세운다.

만일 허위로 밝혀질 경우 민주당을 향한 유권자들의 표심은 크게 식을 것이다. 지난해 총선 직전, 윤석열 전 대통령의 2000명 의대 신입생 증원 발표로 의사들의 집단 반발을 산 것이 총선 패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 바 있다. 이번엔 대법원장 망신주기부터 법원 힘빼기 입법, 지 판사 의혹 제기 등으로 법조계가 이 후보 보이콧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릴까 신중함을 강조하는 이 후보라면 판사들의 역습에 대비해 속도 조절도 필요하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낮아 유권자들이 판사 엄호를 위해 광장에 나가지 않는 상황이 민주당에겐 다행인지도 모른다. 김병호 논설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