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벌 강화 능사 아니다
작업 현장 위험 손쉽게 알려야
사고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중대재해법이 제 역할을 못하자, 노동계 일각에서는 ‘처벌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처벌 규정이 약해 법이 안 먹힌다는 의견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는 정확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단순 처벌 강화보다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시급한 대책으로는 현장 의견 청취 절차 개선이 손꼽힌다. 기업들은 대표이사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면책을 최우선 목표로 움직인다. 법에 규정된 서류상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만 중점을 둔다. 실제 위험성을 사전에 제대로 확인해 중대재해를 감소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중대재해를 줄이려면 작업 현장의 위험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근로자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통해 확인된 위험 요소에 대해 개선 조치를 하는 것이 필수다.
진현일 법무법인 세종 중대재해센터장은 “근로자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지시켜야 한다.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앱 사용 방법을 마련하고, 의견을 제시한 근로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현장 종사자 의견 청취 방법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 절차를 모르는 근로자가 허다하다.
기업이 재발방지대책 수립에 집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사고 발생 후 기업이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정부가 행정 제재 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인선 법무법인 YK 중대재해센터장은 “처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사고 재발방지를 독려하는 합리적인 제재 방안과 경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에서는 근로자가 안전수칙 준수에 동참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무리 시스템을 잘 만들어도 현장 근로자가 수칙을 어기면 사고를 막을 수 없는 탓이다.
“중대재해 사례 전파 등 체계적인 교육은 필수다. 또한 안전수칙을 위반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부과해야 한다. 현장의 위험성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근로자들의 의식 개선이 함께 동반돼야 한다.” 진현일 센터장 의견이다.
안전 중시하는 현장 문화부터 정착시켜야

이시원 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센터장은 오랜 기간 노동 관련 사건을 도맡아온 법률 전문가다. 현재 율촌에서 중대재해 관련 자문·변호 업무를 맡고 있다. 현장에서 활약 중인 법률가가 생각하는 중대재해법의 한계와 개선점은 무엇일까.
Q. 중대재해법 실시 이후에도 사고가 줄지 않았다. 당초 예상과 달리 왜 효과가 작을까.
A. 안전을 중시하는 현장 문화가 아직 정착하지 못했다. 안전 문화 확립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고위직 처벌 가능성이 안전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끌어올린 것은 맞다. 하지만 사고가 줄지 않았다는 것은 관심만으로 사고를 방지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결국 안전을 위한 비용 증가를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경영책임자 처벌이라는 수단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Q. 중대재해법이 기업인 경각심을 올린 것은 맞나. 노동계에서는 의구심이 나오는데.
A. 기존에도 어느 정도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춘 기업의 경우, CEO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음을 느낀다. 법 시행 유예 기간 중 중대재해법에 대응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노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법 시행 후 구축된 체계의 작동성과 부족 여부에 대한 점검 노력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다만, 중견, 중소기업은 관심은 있으되, 관심만큼 실제 조치가 이뤄지는 데 다소 지체되거나 부족한 점이 있다. 최근에야 중대재해법 관련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 의뢰를 해오는 중견 건설사도 적지 않다. 사고 발생 위험은 중견, 중소기업이 더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속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Q. 중대재해법 처벌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A. 법정형을 높이거나 양형 기준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사고 예방 효과가 제한적이다. 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결과 책임을 묻는 법’이라고 인식하는 이상 처벌을 통한 사고 예방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의무 사항을 구체화해, 기업의 경영책임자들이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그 위반이 발생했을 때 엄정히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Q. 현행 중대재해법 중 개선해야 할 점을 꼽자면.
A. 실제 법 집행 과정에서 수사·공판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점은 신속히 해결돼야 할 문제다. 법 시행 이후 상당 시간이 경과했고, 참고할 만한 전례도 많이 축적됐다. 이제는 포괄적인 조사보다는 핵심 사항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해 신속한 결론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어떤 부분을 시정, 보강해야 하는지 결론이 빨리 내려져야 사고 예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민·반진욱·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7호 (2025.02.19~2025.02.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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