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시장 관전 포인트
1. 성장 ‘J커브’ 그릴까
SW·HW 동시다발 성장
산업계에선 엔비디아 참전으로 피지컬 AI 시장이 본격 개화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한다. 젠슨 황 CEO는 피지컬 AI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를 출시하며 “LLM과 마찬가지로 코스모스는 로봇, 자율주행차량 개발을 발전시키는 데 기본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앞으로는 자금이 부족한 일반 개발자도 ‘코스모스’로 AI 로봇을 만들 수 있다. 일각에선 피지컬 AI 개발 플랫폼 활성화로 관련 산업이 ‘J커브’ 형태의 기하급수적 성장(Exponential Growth)을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산업계에 따르면, 챗GPT 출현 후 2년 동안 치열하게 벌어진 AI 모델 개발 경쟁이 피지컬 AI로 옮겨간다. 지금까지 피지컬 AI 토대가 될 초거대 AI 모델 개발에 몰두했다면, 이제는 AI 기술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경쟁에 불이 붙는다.
전문가들은 AI 모델 개발 기업이 줄줄이 피지컬 AI 시장에 뛰어든 만큼 시장 발전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 AI 산업은 크고 작은 ‘캐즘(Chasm·대중화 전 수요 둔화)’에 빠져 정체 국면에 머물렀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AI 인프라의 획기적 도약으로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릴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온다.
학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AI 산업은 과거 수십년간 ‘캐즘’을 반복하며 ‘기술 수용 주기’를 밟아왔다. 하이테크 마케팅 분야 대가 제프리 무어 박사는 미국 사회학자 에버릿 로저스의 ‘기술 수용 주기 모형(Technology Adoption Lifecycle)’을 마케팅에 접목해 ‘캐즘 이론’을 주장했다.
기술 수용 주기에 따르면 신기술은 초창기 혁신가 수용, 얼리 어댑터 수용, 대중적인 확산과 수용 등 단계별 과정을 거친다. 새로운 기술은 초기 시장에서 주목받다 주류 시장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커다란 단절에 맞닥뜨린다. 무어 박사는 이 시기를 ‘캐즘’이라 불렀다. 캐즘을 극복해야만 광범위한 시장으로 확대되는데, 기존 기술과 단절성·불연속성이 강한 신기술일수록 캐즘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불연속적 혁신은 소비자의 기존 사용 방식이나 인프라를 뒤집는 수준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시장 다수 수용자(Majority)까지 침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AI 산업은 1950년대 이후 숱한 ‘캐즘’을 겪었다.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때는 1956년 미국 다트머스 회의에서다. 당시 이 회의를 조직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존 매카시(John McCarthy)가 AI 용어를 제안했다. 이후 AI 산업은 크게 1970년대, 1980년대, 2010년대 등 수차례에 걸쳐 ‘AI 캐즘’을 겪었단 진단이다. 1970년대엔 AI가 인간의 지능을 구현할 것이란 기대감이 컸지만, 당시 컴퓨팅 성능과 데이터 부족으로 시장 기대치를 충족하는 데 실패했다. 1980년대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 등장으로 AI 산업이 다시 ‘봄’을 맞을 것이란 기대가 무르익었다. 이는 특정 분야 전문지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문답할 수 있는 AI 시스템을 뜻한다. ‘전문가 시스템’은 비용 과다, 적용 영역 제한 등 난관에 봉착했다. 198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AI 산업은 ‘두 번째 겨울’을 맞았다. 이후 1990년대 후반 IBM ‘딥 블루’와 인터넷 발달, 2012년 딥러닝, 2016년 알파고 등 AI 산업은 부침을 겪었으나 ‘겨울’과 ‘봄’의 반복 주기는 점차 짧아졌다.
전문가들은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춘 빅테크를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동시다발적 성장이 피지컬 AI 산업을 급성장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은 기술 수용 주기 모형을 기반으로 미래혁신기술의 ‘기술확산점(초기 → 주류 시장 진입 시점)’ 도달 시기를 전망했는데, 미국 기준 완전 자율주행 비행 2031년, 완전 자율주행차 2030년, 초개인화된 AI 2029년, 자율작업 로봇 2028년 등으로 각각 예상했다. 이 시점도 더 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든다. 수많은 개발자들이 비용 부담 없이 AI 로봇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피지컬 AI 산업에도 ‘챗GPT 모멘트’가 도래하고 주류 시장 진입 시점도 당겨질 것이란 관측이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3월 로봇 개발 전용 플랫폼 ‘그루트’를 공개한 뒤 최근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빠르게 만들고 세밀한 손동작을 짤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로봇 개발 전용 컴퓨팅 시스템 ‘젯슨 토르’도 내놓는다.
2. ‘레드테크’ 파상공세
‘로봇굴기’로 시장 지배력 확대
중국 ‘레드테크’ 약진도 관전 포인트다. 이번 CES에서 앞선 로봇 기술로 주목받은 기업 대부분은 중국 업체다. 미국 첨단 기술 제재 압박에도 중국 기업 1339곳이 이번 CES에 참가해 미국(1509곳)에 이어 둘째였다. 참여 기업만 많았던 게 아니다. 젠슨 황 CEO는 CES 2025 기조연설에서 로봇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를 발표하며 로봇을 14개 선보였다. 보스턴다이내믹스(미국), 애질리티로보틱스(미국), 피규어(미국), 앱트로닉(미국), 유니트리(중국), 샤오펑(중국), 갤봇(중국), 로봇에라(중국), 애지봇(중국), 푸리에(중국), 1X(노르웨이), 멘티(이스라엘), 뉴라로보틱스(독일), 생츄어리AI(캐나다) 등이 주인공이다. 6개가 중국산이다. 젠슨 황 CEO는 “자동차 산업 변화에 영향을 준 건 테슬라보다 중국”이라며 중국을 치켜세웠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뒀음에도 엔비디아가 중국과 접점을 확대할 만큼 중국 공세가 매섭다는 의미로 산업계는 해석한다.
중국 로봇 산업은 국가 주도의 외생적 성장 전략과 민간 주도의 내생적 성장 전략 조화로 기술 발전 속도를 크게 끌어올렸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중국은 일찌감치 정부 주도로 AI 발전계획을 마련해 이를 시행 중이다. 중국 국무원은 2017년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발표하고 3단계 발전 로드맵을 내놨다. 2021년 ‘스마트제조 14차 5개년 발전계획’에서는 스마트 모바일 로봇, 반도체 로봇, 협업 로봇, 자기적응 로봇 등 신형 장비 발전 촉진 방안을 수립했다. 2023년에는 휴머노이드 육성책 ‘휴머노이드 혁신 발전 지도 의견’을 발표했다.
중국 특유의 탄탄한 기업 인프라도 강점으로 평가된다. 테스트베드로 든든한 내수 시장을 등에 업은 데다 주 52시간 근무 시간 규제 등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할 이공계 인재가 넘쳐난다. 네거티브 규제를 중심으로 한 규제 완화, 중간 기술 단계를 뛰어넘는 ‘리프프로깅(Leapfrogging)’ 전략, 유니콘 기업 육성 등도 정부 주도 외생적 성장의 주된 축을 이룬다.
이 같은 외생적 성장 전략과 민간 부문 내생적 성장 조화는 혁신을 촉진하는 마중물이 됐다. 법과 규정에 허용된 것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와 달리 네거티브 규제를 산업 전반에 폭넓게 도입함으로써 민간 기업의 신규 산업 진출과 기술 개발을 가속시켰다. 신산업 진출 물꼬를 확 트여줘 전기차 회사 샤오펑부터 베이징대(갤봇)·칭화대(로봇에라) 교내 벤처까지 치열한 경쟁을 통한 기업 진출입이 활발해졌다는 평가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4호 (2025.01.22~2025.02.04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