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심상찮다. 정부 대출 규제에 계엄, 탄핵 정국 여파로 끝을 모르고 치솟던 서울 아파트값이 결국 보합세로 돌아섰다. 서울 강북권은 물론이고 강남 일부 단지 매매가도 수억원씩 떨어지는 양상이다. 서울 아파트값은 이대로 급락하는 것일까. 머지않아 다시 반등세로 돌아설까. 서울 집값을 좌우할 5대 변수와 함께 집값 향방을 진단해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다섯째 주(3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 0.01% 상승에서 0%로 보합 전환했다. 지난해 3월 11일(-0.01%) 이후 41주 내내 올랐던 서울 아파트값이 9개월여 만에 상승세를 멈춘 것이다. 1월 첫째 주도 보합세를 이어갔다.
지역별로는 서울 비강남권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12월 다섯째 주 기준 금천(-0.05%), 구로(-0.04%), 관악구(-0.02%) 등 외곽 지역 집값이 하락폭을 키웠고, 노원(-0.03%), 도봉(-0.02%), 강북구(-0.02%) 등 이른바 ‘노도강’ 지역도 내림세를 보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관악구 봉천동 ‘관악드림타운’ 전용 84㎡는 최근 8억6000만원에 실거래됐다. 지난해 11월 매매가(9억6000만원)와 비교해 1억원 떨어졌다. 강남권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송파구 ‘리센츠’ 전용 84㎡ 매매가는 28억5000만원에서 26억원으로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급감하는 양상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3000건을 밑돌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7월 9216건으로 1만건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하지만 정부 대출 규제 여파로 9월부터 거래량이 다시 3000건대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11월 아파트 거래량은 3312건으로 7월 대비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탄핵 여파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지자 주택 수요자들의 매수 심리가 더욱 위축됐다”고 말했다.

집값 좌우할 변수 살펴보니
정치 불확실성·대출 규제·공급 감소
새해 서울 아파트값은 완연한 하락세로 돌아설까. 올해 부동산 시장 향배를 가를 5대 변수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첫째 변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시작됐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탄핵이 기각되면 윤석열정부 부동산 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탄핵이 인용될 경우 60일 내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고, 차기 정부로 공이 넘어간다.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정권 교체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이 경우 당연히 부동산 정책 기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장 세제 정책에 큰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주택자 중과세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법 개정이 난항을 겪어왔다. 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규정을 지난해 5월 9일까지 유예했고, 올 5월까지 유예 기간을 1년 더 연장한 상태다. 유예 기간이 끝나더라도 새 정부가 다주택자 중과세를 완화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과거 문재인정부에서 다주택자 양도세를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폐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정부는 공시가격과 시세 역전 현상을 바로잡고 과도한 보유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시세의 90%까지 올리기로 한 현실화율을 폐기하기로 했다. 시세 변동률로만 공시가격을 산정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가 만든 대안이 전면 폐기될 수 있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세 감면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주택 경기가 악화된 데다 새 정부가 다주택자 세금까지 강화하면 다주택자 매물이 대거 쏟아지면서 집값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방안도 국회 문턱을 넘기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여파로 윤석열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수도권 1기 신도시 재건축과 서울 도심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 역시 주춤해질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원자잿값, 공사비 인상으로 건설사 개발 사업이 주춤해진 가운데 도심 주택 공급 속도까지 늦춰지면 수급 불균형을 불러와 집값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둘째 대출 규제다. 이미 정부의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으로 대출 총량이 줄어든 데다 시중은행도 줄줄이 대출 금리를 올렸다. 스트레스 DSR은 대출 상환 능력을 심사할 때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줄이는 제도다. 여기에 정부는 오는 7월부터 금융권의 모든 대출에 가산금리를 부여하는 3단계 스트레스 DSR을 시행한다. 대출 한도가 줄어들고 전 금융권에 걸쳐 돈을 빌리기 어려워진다. 2단계의 경우 은행권과 제2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에 수도권 1.2%포인트, 비수도권 0.75%포인트의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한다. 3단계가 시행되면 은행권과 제2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에 1.5%포인트의 스트레스 금리가 적용된다. 대출 규제 강화로 침체된 주택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셋째 금리 인하다. 한국은행은 침체된 국내 경기 회복을 위해 지난해 10월, 11월 두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3%까지 인하했다. 올해도 경기 하방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금리가 인하되면 주택 수요자의 대출 상환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당장 부동산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다.
다만 미국 석학들이 인플레이션 우려가 완전히 잦아들지 않았다며 향후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할 것을 주문한 점은 변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고금리를 유지하면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 운신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한은의 금리 인하로 한미 금리 차가 다시 벌어지면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주택 공급 물량 감소도 무시 못할 변수다. 공사비 급등,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건설사들이 신규 사업을 축소하면서 아파트 공급이 급감하는 양상이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총 23만7582가구로 지난해(30만4213가구)보다 22%가량 감소한다. 그나마 서울은 3만1334가구로 지난해(2만3507가구) 대비 늘어나지만 신규 분양 물량이 급감한다는 점이 변수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분양 물량은 2만1719가구에 그쳐 전년 대비 4765가구 줄어들 전망이다. 경기도는 5만550가구로 같은 기간 무려 2만8075가구 줄어든다.
그마저도 예정대로 분양이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서울에서도 미분양, 마이너스피 물량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분양 흥행 실패 우려가 커지면 건설사들은 신규 분양 물량을 더 줄일 수밖에 없다. 아파트 공급 물량이 줄어들면 수급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
아파트 외에 연립,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시장이 회복할지도 관건이다. 정부는 비아파트 공급 활성화를 위해 신축 비아파트에 대해 주택 수 제외, 청약 무주택 간주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공사비가 발목을 잡는 데다 탄핵 정국 속에 관련 법 개정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비아파트로 수요가 분산되지 못하면 추후 아파트 매매, 전세 가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섯째 부동산 PF 사업장 부실이다. 정부가 부동산 PF 사업장 지원에 나섰음에도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제2금융권 토지담보대출 연체율은 전분기 대비 4.14%포인트 상승한 18.57%를 기록하는 등 불안한 모습이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봐도 2023년 말 5.2%였던 부동산 PF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해 11월 11.3%로 치솟았다. 만약 금리 인하 속도가 더뎌지거나 정국 불안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 부실 PF 사업장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국적으로 건설사 폐업, 부도업체 수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시공능력평가 58위 중견 건설사인 신동아건설마저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건설업계는 “과거 금융위기 때처럼 줄도산 사태가 오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미분양 물량이 넘쳐나는 점도 변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1만8307가구로 2020년 7월(1만8560가구) 이후 4년 3개월 만에 최대치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이 늘어나는 것은 위험 신호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미분양이 많은 지방과 투자 수요가 급감한 빌라·오피스텔 등 비아파트는 시장 침체로 사업이 지연될 경우 건설사는 물론 부동산 신탁회사까지 동반 부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3호 (2025.01.15~2025.01.2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