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위기’ 헤쳐갈 돌파구는 ‘테크’
2025년 새해가 밝았지만 한국인 표정은 밝지 않다. 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정치권은 전례 없이 혼란스럽다. 대통령이 직무정지된 가운데 국가 리더십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는 상태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경제다. 한국 경제는 한마디로 내우외환 국면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며 ‘관세’를 앞세운 강력한 보호무역에 직면하게 됐다. 수출길이 좁아진 가운데 내수는 꽁꽁 얼어붙었다.
한국은행은 2025년 경제성장률을 1.9%로 전망한 데 이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대 저성장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는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최근 정치적 상황 때문에 소비 심리가 위축됐다는 우려가 있고, 수출 증가율 둔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통상 불확실성이 있어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매경이코노미가 국내 경제 전문가 5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2025년 2%대 경제 성장을 예견한 이는 딱 2명뿐이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진국의 함정’을 넘어섰다는 대한민국. 2025년 이대로 멈춰 설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 것인가.

8년 전인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해 파면하기까지 3개월 동안, 청와대는 그대로 멈춰 섰다. 당시 청와대에 파견된 금융 공무원은 “정책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낭비할 뿐이었다”고 돌아봤다.
데자뷔 같은 일이 2025년에도 벌어진다. 지난 12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대통령실은 물론 세종 관가에선 “뭘 할 수 있겠냐”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정치권에서는 정부 역할을 제안하려는 발언이 이어지고, 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경제 살리기에 나서지 않는다. 당장 정부가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내놓은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에 대해 석화업계는 “정부 역할 없이 불가능한 기존 산업 패러다임을 뒤바꿀 ‘빅딜’이 필요한데 ‘핵심’이 빠진 대책”이라고 혹평을 쏟아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가 리더십이 실종된 상태다.
트럼피즘·내수 부진·고환율
‘3각 파도’ 속 해법 찾기 부심
한국은 선장 없이 배를 운행해도 좋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트럼피즘(트럼프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과 ‘고환율’이라는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데다, ‘내수’라는 배에는 구멍이 송송 뚫렸다. 이대로 항해를 이어가다 금방이라도 침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넘친다.
2024년 12월 1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경제연구소들이 내놓은 한국의 2024~2026년 잠재성장률은 2%다. 정부는 2024년 7월 2025년 경제성장률을 2.2%로 전망했는데, 조만간 1%대 후반으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한국은행이 2025년과 2026년 전망치를 각각 1.9%, 1.8%로 낮췄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마저 1%대 저성장 가능성을 인정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미국우선주의에 기반한 ‘트럼피즘’이다. 미국은 2025년 1월 20일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을 향한 통상 압박을 본격적으로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관세율 인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트럼프를 상대할 대한민국 대통령은 ‘부재중’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트럼프 1기 행정부 인수위원회 측은 “죽은 권력은 상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적 있다. 이처럼 ‘톱다운(위로부터의 협상)’ 방식을 선호하는 트럼프는 힘이 없는 권한 체제를 상대하지 않고 ‘패싱’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못하면 기업 나서야
“기술 혁신이 해법” 한목소리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우울한 통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460원마저 뚫으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심한 원화 약세를 보였다. 과거 원화 약세는 일부 수출 기업에 호재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지 생산·현지 판매 방식’이 확산하며 ‘환율 상승=수익성 확대’ 공식은 이미 깨졌다. 되레 수입하는 부품 가격 부담에 오히려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가 됐다.
자영업자도 견디기 힘든 수준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취약 자영업자 연체율은 11.55%로 집계됐다. 취약 자영업자 연체율이 사상 최고로 치솟았던 2012년 9월 말 당시 연체율(13.9%)의 턱밑까지 치솟았다. 취약 자영업자는 3곳 이상 금융회사에서 빚을 낸 다중 채무자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인 자영업자를 의미한다.
장기적으로는 고령화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2024년 12월 23일 기준 한국은 유엔 기준 초고령 사회(65살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 차지)로 진입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빠른 속도다.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저출생도 심각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저출생·고령화 심화로 생산가능인구가 1% 감소하면 국내총생산은 0.59% 줄어든다.
하지만 위기에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전문가들은 정치 리더십이 실종됐다 하더라도 기업이 앞장서 경제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들이 국가 신인도 유지와 내수 경기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기도 하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날로 커지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해외 경제단체에 서한을 보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호소했다. 한경협이 이런 내용으로 세계 각국에 서한을 보낸 것은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기술 혁신’을 강조한다. 세계 경제 석학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중진국의 함정’을 뛰어넘은 세계에서 유일한 경제 강국”이라며 “실패를 용인하는 역동적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첫째도, 둘째도 ‘기술 창업’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한국은 이스라엘처럼 기술 부문에서 경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며 “한국도 테크 기업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경이코노미가 설문조사한 경제 전문가 역시 ‘기술’을 강조했다. 경제 전문가 57인 중 38명은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기술 혁신’이 국가의 최우선 정책이 돼야 한다고 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