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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텍스트힙 이끄는 책은…‘시집’에 빠진 MZ

독서는 정말 섹시하다 ‘텍스트힙’의 세계 [스페셜리포트]
사진설명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책은 무엇일까.

교보문고가 집계한 ‘올해 상반기 20대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흐름이 보인다. 20대가 가장 많이 구입한 책은 1998년 출간된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다. 전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는 5위였지만 20대 독자층에서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마음에 없는 남자를 결혼 상대로 선택하는 25세 여성의 모순적 삶을 형상화했다. 페미니즘 문제의식과 맞아떨어진 작품으로 인기 유튜버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 밖에도 종합 순위에 들지 못했지만 유독 20대에게 인기가 많은 책이 여럿이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은 종합 10위권에 이름이 없지만 20대 인기 도서 3위에, ‘구의 증명’ 역시 5위에 올랐다. 이 밖에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8위)’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9위)’ 역시 종합 순위에서는 빠져 있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최근 20대 독서 트렌드는 인기 있는 연예인과 유튜브 채널 영향이 크다. 영상에서 짧게 접한 책을 정독하고 싶다는 수요, 또 SNS에 인증하고 싶다는 욕구가 맞물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독 두드러지는 트렌드는 ‘시(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전체 시집 판매 중 20대가 26.5%, 30대가 20.2%로 많다. 예스24는 10대 독자에게 팔린 시집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124.1% 증가했다고 밝혔다. 알라딘에서도 2030 여성이 시집에 보이는 관심이 예사롭지 않다. 8월 현재 알라딘 시 분야 베스트셀러 1위인 안희연의 ‘당근밭 걷기’는 전체 구매자의 48.1%가 2030 여성이다. 1999년생 시인 차도하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미래의 손’ 역시 2030 여성이 전체 49.5%를 구매했다. 박하나 예스24 마케팅본부장은 “굳이 따지면 시는 ‘숏폼’이다. 숏폼에 익숙한 10대에게 시의 짧고 감각적인 언어가 색다른 감성으로 와닿으면서 인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텍스트힙, 언제까지 계속될까

‘단순 과시’ 넘어 일상으로 정착

혹자는 텍스트힙 현상을 폄하하기도 한다. 책을 진짜로 읽고자 하는 수요가 아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욕’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한 전자책 플랫폼에서는 회원 수는 늘어나지만 완독률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데이터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텍스트힙 현상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한목소리다. 책과 서점이라는 기존 틀을 깨고 디지털·인테리어·패션·모임 등으로 확산을 통해 ‘일상 문화’로 정착하는 과정이라는 진단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텍스트힙 현상은 시각을 넘어 공감각적 소비로 진화하고 있다. 책을 활용한 공간이나 패션 브랜드 등이 늘어나면서 활자에 대한 관심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재근 평론가 역시 “한동안 책이 심하게 외면받았기 때문에 지금쯤 다시 책이 조명받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당분간은 MZ세대가 지속적으로 책을 찾지 않을까”라고 기대를 표했다.

비단 현 세대뿐 아니라 오랜 시간 책은 지적 과시의 수단이었으며, 이 같은 과시를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독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좋은 문화가 형성됐다”며 “설사 과시욕이라 하더라도 활발한 독서 소비 시장이 형성돼야 히트작도 나온다. 출판 시장과 작가 생태계에 텍스트힙 문화는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나건웅·조동현 기자 김나연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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