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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거장 벨라스케스는 ‘여성 미술의 시조새’였다 [슬기로운 미술여행]

김슬기 기자
입력 : 
2025-01-29 13:00:00
수정 : 
2025-02-09 07:4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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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의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과 함께 그의 유명한 작품 <시녀들(Las Meninas)>이 중심에 있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고유한 화법을 통해 초상화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서며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엘 그레코와 피카소 등 다른 화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특히 <실 잣는 여인들, 혹은 아라크네 우화(Las Hilanderas)>는 벨라스케스의 섬세한 예술 세계를 드러내며 현대적 해석이 가능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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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미술여행 - 8] 프라도 미술관의 벨라스케스 이야기

프라도 미술관의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입니다. 프라도 미술관의 중앙부에는 <시녀들(Las Meninas)>이 벨라스케스의 궁정 초상화와 함께 걸린 가장 큰 방이 있습니다. 흩어졌던 동선이 이 방으로 이어지는 이 공간을 거닐다 보면, 미술관이 벨라스케스를 위해 지어진 신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에게는 <시녀들>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긴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그 변명을 해보려고 합니다. 길을 잃지 말고,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프라도 미술관 티켓의 비밀
엘 그레코 [가슴에 손을 얹은 귀족], 1580 ©Museo Nacional del Prado
엘 그레코 [가슴에 손을 얹은 귀족], 1580 ©Museo Nacional del Prado

스페인의 3대 화가로 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를 꼽습니다. 엘 그레코(1541~1614)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입니다. 그리스 크레타섬 출신으로 35세에 스페인에서 건너와 40년을 스페인에서 화가로 살았습니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스 아저씨’로 평생 불리는 게 실었는지 그는 자신의 그림에는 본명을 적어넣었다고 합니다.

그는 베네치아파를 대표하는 티치아노의 화법을 배워, 스페인에서 화가로서 만개한 작가입니다. 생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오히려 20세기 화가들에게 그의 표현주의적 화법이 큰 영향을 주며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로 거듭났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41점이나 되는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수태고지>와 같은 대형 종교화가 그의 전매특허였죠. 톨레도 여행을 갔을 때 만난 산토 토메 성당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의 티켓에는 가슴에 맹세하는 한 남자의 손이 그려져 있습니다.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귀족>의 손을 티켓에 새겨 넣은 겁니다. 1580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서 그린 초기작 중 하나이며, 함께 걸려있는 그의 초상화 6점 중 가장 독특한 작품입니다.

30대로 추정되는 인물의 정체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한때 이 그림은 엘 그레코의 자랑스러운 자화상일 수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소설가 세르반테스, 혹은 펠리페 2세의 장관이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가장 유력한 인물은 톨레도의 군사사령관 후안 데 실바 이 데 리베라입니다. 목을 장식한 흰색 실크 블라우스는 귀족 신분을 알려줍니다.

프라도 미술관에 초기에 전시된 덕분에 이 그림은 엘 그레코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종교적 의미를 담은 오른손의 수사적인 제스처, 반쯤 숨겨진 메달은 스페인 기사도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됐죠. 오른손의 셋째와 넷째 손가락이 붙어있는 표현은 작가의 ‘인장’입니다. 자신의 작품임을 드러내는 사인 같은 표현입니다. 엘 그레코 이후 많은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그니처 표현을 그림 곳곳에 숨겨두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몇번의 붓질만으로 무심하게 그렸지만 멀리서 보면 극도의 섬세함이 드러나는 반짝이는 검과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빛 등을 보며, 시대를 앞서간 거장의 흔적을 만납니다. 엘 그레코는 이후 스페인 화가들의 전범이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불멸의 거장, 벨라스케스입니다.

이 방(9B)에는 엘 그레코의 6점의 초상화와 함께 2021년 새로운 손님이 입주했습니다. 피카소가 그린 여인의 초상 <Bust of a Woman>입니다. 나란히 걸린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광대를 그린 초상 <The Buffoon Calabacillas>입니다. 엘 그레코의 영향을 받은 두 화가는 함께 이 방을 지키는 룸메이트가 됐습니다.

Diego Velázquez [The Buffoon Calabacillas], 1635-39 ©Museo Nacional del Prado
Diego Velázquez [The Buffoon Calabacillas], 1635-39 ©Museo Nacional del Prado
파블로 피카소 [Bust of a Woman], 1943 ©Museo Nacional del Prado
파블로 피카소 [Bust of a Woman], 1943 ©Museo Nacional del Prado
미술사 최고의 걸작,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Diego Velázquez <Las Meninas> 1656 ©Museo Nacional del Prado
Diego Velázquez <Las Meninas> 1656 ©Museo Nacional del Prado

<시녀들>은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벨라스케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프라도 미술관은 65점의 벨라스케스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궁정화가였던 이유로 이 국립 미술관 소장품의 절대 다수는 궁정 초상화입니다.

<시녀들>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10여년 전 첫 스페인 여행에서 프라도 미술관을 찾았다가 이 그림 앞에서 넋을 잃고 서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로폭이 3미터가 넘는 상상보다 거대했던 그림은 인쇄된 이미지로 숱하게 접했던 것과 달리 암부가 꽤나 어두워 숨어 있는 이미지를 보려고 눈을 비비며 한참을 응시해야했습니다.

이 걸작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테네브리즘이 극대화되어 표현된 빛이 스며드는 것처럼 그려진 주인공 공주, 개를 괴롭히는 장난기가 넘치는 시녀, 난쟁이 유모, 거울에 숨어 있는 펠리페 4세와 부인, 방을 장식한 화가 자신의 그림들, 인장처럼 자신을 드러낸 벨라스케스의 모습까지.

이 궁정 화가가 당시 의뢰받은 그림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B컷’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는 궁전에서 벌어지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합니다. 자신과 궁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황제 부부는 거울 속에 슬쩍 숨긴 그림을 자신의 마음대로 구성했습니다. 이 그림은 57세의 거장의 자아가 가장 강렬하게 표출된 작업일 겁니다.

이 그림 속 내용의 풍부함, 구성의 복잡성과 묘사된 행동의 다양성을 통해 벨라스케스는 초상화라는 장르의 공식을 벗어나 한단계 도약을 합니다. 초상화 고유의 목적을 뛰어넘어 역사화에 더 가까운 그림이 된 거죠. 1623년 궁정 화가가 된 이후 30여년 만에 그는 마침내 회화라는 장르가 가진 잠재력을 폭발시킵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걸작이 영향을 준 화가들의 목록은 적어 내려가기도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바로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는 피카소가 <시녀들>을 변주한 작품들을 빼곡히 걸어놓은 방이 있을 정도입니다.

<시녀들> 앞에는 비수기의 제법 한가한 미술관에서조차 쉬지 않고 가이드 투어를 하는 관람객들의 방문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관람이 이어졌습니다. 이 짧은 만남조차도,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지도 모릅니다.

시녀들을 그리기 위한 ‘빌드업’
Diego Velázquez [The Toilet of Venus (‘The Rokeby Venus’)], 1647–51 ©The National Gallery
Diego Velázquez [The Toilet of Venus (‘The Rokeby Venus’)], 1647–51 ©The National Gallery

잠시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습하러 들렀던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도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이 여러 점 걸려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작품은 <욕실의 비너스(로케비 비너스>(1648)입니다. 벨라스케스는 누드화를 4점만 남겼는데 유일하게 남은 1점의 누드화입니다. 프라도 미술관의 또 다른 간판 작품인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에는 전범이 된 그림이 있습니다. 티치아노와 루벤스의 비너스 누드화죠.

그런데 엄숙한 역사화, 종교화, 초상화에 매진했던 벨라스케스도 비너스의 누드를 그렸다는 걸 런던에 와서야 알게 됐습니다. 다른 화가들이 편안한 모습으로 누운 비너스를 그렸던 것과 달리 큐피드가 들고 있는 거울에 비친 비너스의 뒷모습을 그렸다는 점도 독특합니다. <시녀들>에 앞서 거울을 활용한 대표적인 그림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만년의 작품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난 젊은 로마 화가 플라미니아 트리운피(Flaminia Triunfi)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생애 두 차례(1629-30년, 1649-51년)에 걸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는데요. 두 번째 로마 여행에서 유명한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Diego Velázquez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1618 ©The National Gallery
Diego Velázquez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1618 ©The National Gallery

개인적으로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마르다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1618) 였습니다.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에서 세비야 시절의 벨라스케스가 서민들의 일상을 그린 <계란 요리를 하는 노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그림 속 노파가 성경 속 이야기에 다시 등장합니다. 그림 속 생선과 음식의 정교한 정물 표현은 네덜란드 플랑드르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이 천재 화가는 당대 유럽의 유파를 자유롭게 흡수해 자신의 작업에 접목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림이 두 개의 프레임으로 나뉘어있는 점입니다. 성경에서는 집안일을 하지 않고 예수를 맞는 마리아를 더 훌륭한 행위로 묘사했습니다. 우측 상단의 그림 속 그림에는 예수와 함께 하는 마리아가 작게 그려져 있죠. 반대로 크게 그려진 궂은일을 하며 동생을 질투하는 마르다의 표정이야말로 이 그림의 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전통적인 관점을 뒤집는 해석이자, 그림 속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숨겨두는 방식은 <시녀들>을 위한 습작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놀랍게도 벨라스케스가 19세에 그린 그림입니다.

벨라스케스는 여성 미술의 시조새?
Diego Velázquez [The Spinners, or the Fable of Arachne], 1655-60 ©Museo Nacional del Prado
Diego Velázquez [The Spinners, or the Fable of Arachne], 1655-60 ©Museo Nacional del Prado
18세기 복원 이후 좌우와 상단의 여백이 덧붙여진 형태의 그림. 현재는 이 상태로 전시되지 않고 있다. ©Museo Nacional del Prado
18세기 복원 이후 좌우와 상단의 여백이 덧붙여진 형태의 그림. 현재는 이 상태로 전시되지 않고 있다. ©Museo Nacional del Prado

멀리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벨라스케스의 정수는 <시녀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라크네 신화를 그린 <실 잣는 여인들, 혹은 아라크네 우화(Las Hilanderas)>를 오늘의 시각에서 해석한다면, 무척 풍성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다는 걸 발견했거든요.

심지어 예일대의 벨라스케스 학자 조나단 브라운은 <시녀들>과 이 작품을 벨라스케스의 “두 개의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지만 그림 속 구성이 그의 작업 중 가장 복잡한 작품인 점을 감안하면, <시녀들> 이후의 작업이라는 연구자들의 주장이 꽤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저는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에 매료됐습니다. 3세기 넘게 이 그림은 태피스트리 작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묘사한 것으로만 여겨졌습니다. 그 이유는 1734년 마드리드 알카사르 왕궁 화재로 인해 손상되었다 복구하는 과정에서 그림 속 아치가 그려진 상단과 좌우에 띠가 추가되며 태피스트리 속 그림을 더 멀리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덧붙인 부분을 가린 채 원본대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1948년 디에고 앙굴라는 이 그림이 아라크네 우화임을 밝혀냅니다. 앙굴라는 1968년부터 1970년까지 프라도 미술관장을 지낸 저명한 미술사학자입니다. 이 그림은 세 겹의 레이어를 고루 밝은 빛으로 비추고 있습니다. 마치 오손 웰즈의 영화적 기술인 ‘딥 포커스(Deep Focus)’ 같은 실험처럼 보입니다.

전면부의 여인들은 누추한 복장에 맨발로 실을 잣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그림과 달리 그림의 배경이라 할 뒷부분이 밝게 빛이 나고 있죠. 이 곳에는 우아한 귀부인들이 태피스트리를 감상하고 있습니다. 태피스트리에 수놓은 그림이 바로 3세기만에 밝혀진 그리스 신화의 장면입니다.

이 신화 속 장면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아라크네와 아테네의 이야기입니다. 백발의 노파로 변신해 나타난 아테네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라크네는 오만하게 공예의 여신과 태피스트리를 짜는 대결에 나섰죠.

아테네는 직물 속에 포세이돈과 대결에서 승리한 자신과 신과 대결하다 저주받는 인간들을 수놓았습니다. 하지만 아라크네는 유로파를 겁탈하는 제우스를 수놓았습니다. 대결에서 진 뒤, 질투심에 눈이 먼 아테네는 자신의 아버지를 능욕한 아라크네를 저주합니다. 거미로 만들어 눈이 먼 채 평생 실을 뽑아내도록 만듭니다.

미술사에서는 아라크네를 벨라스케스의 분신처럼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당대 최고의 화가는 감히 신과 대결하는 오만한 인간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한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태피스트리에 수놓아진 티치아노 [유로파의 강간], 1560-62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태피스트리에 수놓아진 티치아노 [유로파의 강간], 1560-62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태피스트리 속에는 투구를 쓴 여신 아테네와 아라크네가 흐릿하게 보입니다. 이 태피스트리 속에서 아라크네가 짠 태피스트리(그림 속 그림)는 어딘가 낯이 익습니다. 티치아노가 펠리페 2세를 위해 그린 <유로파의 강간>(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이 새겨져 있죠. 루벤스도 1628~1629년 마드리드에 머물며 이를 모방해 그린 명작입니다. 벨라스케스는 마드리드에서 만난 루벤스의 많은 그림을 모방하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고로 이 태피스트리는 루벤스의 그림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벨라스케스는 티치아노의 원본 그림을 루벤스가 베낀 그림을, 다시 태피스트리로 재현하는 3중의 모방을 한 겁니다. 대결을 하는 아라크네의 태피스트리는 귀부인들이 마치 상점에서 가구를 고르듯 전시되고 있고, 무대에서는 또 다른 아라크네와 아테네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죠.

재미있게도 이 지점에서 20세기 후반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을 품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기존의 예술을 뒤틀거나, 인용하고 재해석하는 미학인 패러디(Parody)와 패스티쉬(Pastiche)의 전형으로 보였거든요. 오늘날은 “명징하게 직조된” 이라는 수식어가 대표적인 예술을 상찬하는 표현이 된 시대가 아니던가요.

결국 이 그림은 거장이 그려낸 ‘예술론’입니다. 예술의 힘을 통해 재료(직조 과정)에서 형태(태피스트리)로 넘어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회화의 고귀함을 옹호하는 작품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신이 수놓은 예술과 공방의 태피스트리는 동등하게 고귀하고, 인간의 기술 또한 예술의 요소라는 주장을 내포한 셈이죠.

공교롭게도 태피스트리는 21세기 여성 미술의 가장 떠오르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태피스트리 공방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학대한 아버지를 증오하며, 그를 살해하는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든 여성 미술의 대모가 있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입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대표작인 청동 거미 ‘마망’은 여성 미술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죠. 거미 여인이 된 아라크네에게서 루이스 부르주아의 이야기가 포개졌습니다.

아라크네는 제우스만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여성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포세이돈, 크로노스 등을 모두 단죄합니다. 아라크네가 가부장제를 고발하는 강인하고 패기 넘치는 여성의 전형이라는 해석이 오늘날에는 얼마든지 가능한 이유입니다. 현실의 폭력에 입은 틀어 막힌 채, 실을 잣는 노동을 강요당해온 여성들은 모두 거미 여인의 후손, 즉 아라크네의 자식들입니다.

게다가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작품 중 온전히 여성만 등장하는 희귀한 작품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벨라스케스를 ‘여성 미술의 시조새’라고 해석해도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그림은 내용와 소재, 형식 모두에서 놀랍도록 동시대적입니다. 정교하고 복잡한 그림은 모호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이는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합니다. 비밀이 3세기 만에 밝혀진 그림의 사연은 또 어떻구요. 21세기의 관람객조차 보는 이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이보다 새로운 예술이 있을까요. 이 그림을 만난 것만으로, 마드리드 여행의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종교화에 남긴 벨라스케스의 흔적
Diego Velázquez [The Crucified Christ], 1631 ©Museo Nacional del Prado
Diego Velázquez [The Crucified Christ], 1631 ©Museo Nacional del Prado

프라도 미술관을 특별하게 즐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독교에 관한 예습을 하는 겁니다. 고전들을 망라한 이 공간의 작품들은 가장 많은 비중을 종교화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이는 겉핥기 수준의 관람밖에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접했던 기독교에 관한 배경지식이 40대가 되어서 이렇게 쓸모가 있을 거라곤 저도 예상을 못했습니다.

지난주에 다뤘던 <에체 호모>를 비롯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수태 고지’, ‘원죄 없는 잉태’, ‘동방박사의 경배’와 같은 성경의 주요 주제를 예습하고 유럽 미술관을 찾는다면 그림들이 달리 보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주제를 모든 화가들이 집요하게 그렸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글래스고를 대표하는 그림 살바도르 달리의 <십자가의 성 요한 그리스도>가 남다르게 보인 건, 거장들이 모두 그렸던 ‘십자가형’이라는 주제를 변주했기 때문입니다. 이 곳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린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 바르톨로메 무리요를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을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 미술사의 변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벨라스케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렸습니다. 예수는 이상적인 신체로 그려졌습니다. 신성하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불어넣으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피가 흥건한 고통받는 육체가 아닌, 눈을 감고 고요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예수의 모습이 다른 화가들과 확연한 차이점을 만듭니다.

머리 위에는 라틴어, 히브리어, 그리스어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가 적혀있습니다. 철자에는 오류가 있다고 합니다. 벨라스케스는 네 개의 못으로 십자가형을 표현했습니다. 성경의 세 개의 못과는 다른 표현이죠. 이 또한 엘 그레코의 손처럼, 벨라스케스의 작품임을 알려주는 인장입니다.

런던에 살면서 유럽 미술관 도장 깨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김슬기 기자가 유럽의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비엔날레를 찾아가 미술 이야기를 매주 배달합니다. 뉴스레터 [슬기로운 미술여행]을 ‘구독’하시면 지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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