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미술여행 - 6] 내셔널갤러리 존 컨스터블 특별전
새해 첫 미술관은 내셔널갤러리입니다. 런던에 온 이후 세번째 방문입니다. 얼마나 더 오게 될지 모르겠네요. 드물게 런던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에도, 반 고흐 전시의 마지막 주간(1월 19일까지)을 앞두고 관람객들이 놀랄 정도로 많았습니다.
매진된 티켓을 사려는 이들이 너무 많아, 수차례 추가 티켓을 판매한 미술관은 마지막 주간까지 임시로 밤 늦게까지 전시장 문을 연다고 합니다. 미술관에서 밤을 맞는 경험은 언젠가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합니다. 기획 전시를 보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이번 방문은 스페인 여행을 앞둔 예습의 목적도 있었습니다.

![Parmigianino [Madonna and Child with Angels (Madonna with the long neck)], 1534-1540 ⓒThe Uffizi](https://pimg.mk.co.kr/news/cms/202508/14/news-p.v1.20250115.12b848d13ff4402e8cad557891a3f308_P1.png)
내셔널 갤러리는 반 고흐 전시와 같은 블록버스터 기획전 외에도 크고 작은 기획전을 쉬지 않고 엽니다. 입구의 46번방과 홀 중앙의 선리의 방(The Sunley Room)을 통해 상시적으로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46번방에서는 3월 9일까지 [Parmigianino: The Vision of Saint Jerome] 전시가 열립니다. 주인공은 매너리즘의 거장 파르미지아니노(1503~1540). 그림이 뭔가 익숙하신가요. 킹스 갤러리 [르네상스 드로잉] 전시에서 제가 개를 그린 그의 스케치를 따라 그려본 적이 있습니다.
프란체스코 마졸라(Francesco Mazzola)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파르마에서 태어나 파르미지아노로 불렸습니다. 신동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로마에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작품을 공부하며 훈련을 받았죠.
1524년 21살의 젊은 나이에 완성한 볼록거울의 자화상으로 유명합니다. 미소년의 자화상은 볼록 거울 속의 왜곡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손은 실제보다 크고, 얼굴은 실제보다 작죠. 모든 것이 둥글게 왜곡된 이 그림 속 자신만만한 화가는 3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 이후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Parmigianino [볼록 거울의 자화상] ⓒThe National Gallery](https://pimg.mk.co.kr/news/cms/202508/14/news-p.v1.20250115.28d529d23fad460c97e6111010aff9a0_P1.png)
자화상에서 보듯 과학에 관심이 있었고, 관습을 지루해했습니다. 연금술에 심취했을만큼 지적이면서도 괴팍한 기질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거장들에 반감을 갖고 우아하고 반고전적인 스타일을 개발했고, 이런 도전이 매너리즘의 대표 작가로 만들었습니다.
우피치 미술관의 인기 작품으로 ‘긴 목의 성모’로 불리는 [Madonna and Child with Angels (Madonna with the long neck)]가 있습니다. 1534년 교회의 의뢰를 받고 그렸으나 5년 뒤 그가 사망할 때도 이 재단화는 완성되지 않고 서재에 있었습니다. 미완성 유작이 된 셈이죠.
그림을 보면 뭔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성모의 목은 지나치게 길고 관능적으로 묘사되어있죠. 옷의 윤곽을 그리는 드레이퍼리(drapery) 기법으로 속옷을 입지 않은 성모의 몸의 윤곽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젊은 천사의 벌거벗은 다리에도 에로티시즘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측 하단의 그림의 비례를 파괴하며 난쟁이처럼 묘사된 인물은 성 히에로니무스입니다. 그 옆에 그리다 만 발목이 보입니다. 이 그림이 미완성임을 보여주는 증거죠. 그는 엄격한 비례에 따르는 르네상스의 유산을 우아하게 해체했습니다. 그림 속에 그는 상상력과 변형을 집어 넣었습니다. 한 시대의 종언이었죠.
내셔널갤러리의 이번 전시는 ‘성 제롬의 비전’으로도 알려진 파르미지아니노의 [The Madonna and Child with Saints]의 창작 과정을 탐구합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10여점을 스케치와 연구를 함께 전시합니다.
보존 과정을 거쳐 1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된 이 작품은 ‘긴 목의 성모’와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청록색 겉옷과 성모의 미소, 머리 모양까지도 판박이입니다. 죽음을 암시하며 푸른 낯빛을 띄던 예수가 개구장이처럼 묘사된 것이 차이죠.
21세에 로마로 이주한 그는 교황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라파엘이 다시 태어났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제단화는 그의 첫 번째 주요 작품이었습니다. 1527년, 그가 그림을 완성하는 동안 그의 주변에서 로마는 침략을 당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작업실에 침입한 병사들조차 그의 그림에 놀라서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작업이 훗날 그의 대표작인 ‘목이 긴 성모’로 완성되기까지 10여년동안 그는 어떤 일을 겪은 걸까요.
![Parmigianino [The Madonna and Child with Saints], 1527 ⓒThe National Gallery](https://pimg.mk.co.kr/news/cms/202508/14/news-p.v1.20250115.5b149bbcb8e04eb9a5de57bf960fa125_P1.png)
![John Constable [The Hay Wain], 1821 ⓒThe National Gallery](https://pimg.mk.co.kr/news/cms/202508/14/news-p.v1.20250115.ab86f79bad3d419eb595d5a35c79edd9_P1.png)
영국의 국민 작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을 조명하는 소박한 전시가 내셔널 갤러리 중앙에 위치한 선리의 방에서 2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2월 2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그의 탄생 250주년으로 테이트 브리튼에서 대형 전시가 연말에 예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전시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건초 마차(The Hay Wain)]가 탄생하기까지 그가 집 주변의 곳곳을 그린 그림과 그의 대표작들, 스케치를 함께 전시합니다. 그의 손바닥만한 스케치북과 팔레트,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은 후대의 조지 모랜드, 윌리엄 멀레디의 그림까지 모았습니다.
존 컨스터블은 영국의 낭만주의 풍경화가입니다. 영국 남동부에 위치한 서퍽주의 시골에서 부유한 방앗간 주인이자 옥수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연을 깊이 사랑했고, 특히 고향의 풍경을 자주 그렸습니다. 컨스터블의 작품은 처음에는 영국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출세작은 1821년 그린 <건초 마차>입니다. 세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강을 건너는 시골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소작농인 윌리 로트의 집이 보이고 풍경은 컨스터블의 아버지 소유였던 플랫포드 밀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풍경화를 매우 급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그림은 영국 시골의 전통적인 이미지로 여겨집니다.
개미처럼 작지만, 이 그림 속에는 일하는 농부, 마차를 끄는 사람도 등장하죠. 마치 풍경의 일부처럼요. 구름의 형태도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묘사됩니다. 화폭을 지배하는 나뭇잎을 표현하기 위한 밝은 녹색은 이전의 전통적인 어두운 갈색조의 풍경화와는 달랐죠. 컨스터블이 ‘자연에 대한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혁신적 접근 방식입니다.
눈에 띄는 붓질로 물감을 느슨하게 다루는 표현, 나뭇잎에 물감을 아낌없이 바르는 표현을 시도했습니다. 반짝이는 햇빛의 반사를 표현하기 위한 흰색 물감 조각은 ‘컨스타블의 눈’이라고 불렸습니다. 당시에는 그림이 미완성이라는 오해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풍경화에서 이전에 본 적 없는 감정과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성공합니다.
심지어 수십장을 스케치를 통해 그는 완벽한 구도와 내러티브를 완성합니다. 빈 마차는 평화롭게 강을 건너고, 낚시를 하는 이와 일하는 농부들이 보입니다. 강변에는 개가 짓고 있고, 강 속에 빠진 드럼통이 등장합니다. 최근 엑스레이를 통해 그의 스케치에는 보트와 드럼통이 없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서사를 완성한 겁니다. 이 그림의 이야기를 관람객들은 사랑합니다.
![오랜 연구끝에 헤이 웨인이 탄생했음을 알려주는 작품. [Willy Lott‘s House], 1816 ⓒThe National Gallery](https://pimg.mk.co.kr/news/cms/202508/14/news-p.v1.20250115.94efc32bdec24753b7cfb940edf2c12c_P1.png)
영국에 이 그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왕립예술원에서 공부하던 시기, 영국 미술에는 계급이 있었습니다. 역사화와 초상화는 최상급, 풍경화와 정물화는 최하급에 위치했죠. 그런데 컨스터블은 풍경화를 위대한 미술로 인정받게 만듭니다.
낭만주의 작가 찰스 노디어와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왕립예술원에서 이 그림을 보고 프랑스에서 돌아가면서 반전의 계기를 맞습니다. 프랑스에서 찬사를 받고 루브르미술관에서 전시가 되면서 유럽 전역의 풍경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죠. 그의 자연주의적 접근과 감성적 표현은 현대 풍경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J.M.W. 터너와 자주 비교되는 컨스터블은, 터너와는 대조적인 화풍을 보였습니다. 터너가 빛과 색채의 효과를 강조했다면, 컨스터블은 자연의 세부적인 묘사에 집중했습니다. 둘의 극심한 경쟁은 1830년대 미술계의 핫이슈였다고 합니다.
영국은 정원 가꾸기가 국민들의 가장 큰 취미이고, 공원과 자연을 끔찍하게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우리에게는 올드 패션으로 보이는 존 컨스터블이 21세기 영국에서는 더 큰 사랑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John Constable [Study of Cirrus Clouds], 1822 ⓒThe National Gallery](https://pimg.mk.co.kr/news/cms/202508/14/news-p.v1.20250115.0b09f695f2f9485685c84f7cf84c2e18_P1.png)
![카라바조 [엠마오의 저녁식사], 1600-01 ⓒ김슬기](https://pimg.mk.co.kr/news/cms/202508/14/news-p.v1.20250115.8bef602cac39477c8f40b7e7ea107c1b_P1.png)
여행을 앞두고 예습을 위해 찾은 곳은 내셔널 갤러리의 카라바조의 32번방과 벨라스케스가 있는 30번방입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3점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그를 스승으로 여겼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이 걸려있죠.
내셔널 갤러리를 대표하는 카라바조의 작품은 대작 <엠마오의 저녁 식사>(1600-01)입니다. 보기 드문 대작이기도 하고,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대조(키아로스쿠로), 풍부한 감정 묘사, 드라마틱한 전개 등 카라바조의 특징 3가지가 모두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예수를 중심으로 제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마치 움직이는 인물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드린 듯한 생생한 표현이 돋보이죠. 카라바조는 신약 성서의 누가 복음(24장13-32절)의 예수가 부활한 날 엠마오로 가서 사도들 앞에 나타난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던 두 사도는 이날 처음으로 부활한 예수를 만나게 되죠. 오른쪽 남자의 가슴에 달린 조개껍질은 제자 야고보의 상징입니다.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은, 종교화를 가장한 정물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식탁의 음식들입니다. 썩은 사과와 색이 변하고 있는 무화과는 인류의 원죄를, 석류는 그 원죄를 이긴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열등하게 여겨지는 정물을 고귀한 종교화 속에 슬쩍 집어넣은 겁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당대의 관습에 얽메이지 않는 이들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만난 파르미지아노, 존 컨스터블, 카라바조는 모두 한 시대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들입니다.
런던에 살면서 유럽 미술관 도장 깨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김슬기 기자가 유럽의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비엔날레를 찾아가 미술 이야기를 매주 배달합니다. 뉴스레터 [슬기로운 미술여행]을 ‘구독’하시면 지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