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 혁신·성장 위해선
규제 샌드박스 대상 넓히고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해야
규제 샌드박스 대상 넓히고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해야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의 44.1%가 국내 규제로 인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25.4%는 이러한 이유로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규제가 기업의 성장과 글로벌 진출에 실질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싱가포르와 유럽연합(EU), 미국은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 환경을 개선한 사례로 꼽힌다. 싱가포르는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줄이고 기업 설립과 운영 과정을 단순화하며, 디지털 행정 시스템을 통해 아시아의 비즈니스 허브로 자리 잡았다. 동남아시아 기반의 그랩(Grab)이 본사를 싱가포르에 두고 성장한 것은 이러한 환경의 이점을 잘 보여준다.
EU는 규제의 경제적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폐지해 기업들이 성장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한국 축구 데이터 분석 업체 비프로컴퍼니와 같은 기업들이 시장 규모가 크고 규제가 덜한 유럽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벤처 친화적인 환경과 풍부한 자본시장을 바탕으로 센드버드, 알로, 스윗과 같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본사를 이전해 글로벌 성장을 도모하는 발판이 되었다.
한국은 여전히 과도한 규제와 복잡한 행정절차로 기업 활동이 제약받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생산물시장규제(PMR)지수, 세계은행의 규제품질지수(RQI), 기업환경평가(DBI) 등 다양한 지표에서 한국의 규제 수준이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회복하려면 규제 완화와 함께 혁신적인 기업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정부도 규제개혁을 위해 일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신기술과 신산업이 규제의 벽에 막히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하는 제도로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적용 분야가 제한적이고, 운영 과정에서 행정적 비효율성이 지적되고 있다. 규제의 경제적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고자 도입한 규제영향평가제는 평가의 객관성과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새로운 규제가 실제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평가 결과를 정책 결정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반 규제 거버넌스 확대와 민간·정부 간 협력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한국은 행정절차를 디지털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들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규제개혁은 정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 없다. 민간 영역과 함께 규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규제개혁을 위한 당위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으로 한국 경제의 활로를 모색할 때다.
[박진용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