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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이참에 KT로 갈아탔습니다 [편집장 레터]

김소연 기자
입력 : 
2025-05-04 21:00:00
수정 : 
2025-05-08 22: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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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을 포함해 SK그룹 사장단 중 그 누구도 유심을 바꾸지 않고 유심 보호 서비스에 가입했습니다. 사내에서는 이 서비스만으로 충분히 안전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 4월 30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연 ‘방송통신 분야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SK텔레콤 유영상 사장은 “이번 해킹 사고가 이동통신사 역사상 최악의 해킹 사고”라면서도 “유심 보호 서비스 가입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SK텔레콤 해킹 소식이 막 들려오자마자 T월드에 접속해 ‘유심 보호 서비스’에 가입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사태 초기라 서버 먹통 이런 건 남의 나라 얘기였습니다. 가입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약간 의아했죠. ‘유심 보호 서비스’에 가입하려면 로밍 요금제인 ‘바로 요금제’를 먼저 해지하라는 메시지가 나와서입니다. 뒤늦게 알았습니다. 유심 보호 서비스 가입 상태에서는 해외 로밍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알면 알수록 기가 막히더라고요.

해킹 사실도 늑장 신고했고, 고객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고, 유심 교체도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등 떠밀려 시작했고… 그뿐인가요. 청문회에서는 SKT의 정보보호 투자가 부족하다는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SKT 정보보호 투자액이 600억원 수준이었다죠. 1218억원을 쓴 KT보다 현저히 낮고, LG유플러스의 632억원보다도 적습니다. 지난해 SKT 영업이익이 1조8000억원으로 KT와 LG유플러스 영업이익을 합한 것보다 더 많았는데 말이죠. 게다가 SKT 가입자는 2307만명으로 KT와 LG유플러스 가입자를 합친 수와 비슷한데 말입니다. ‘예고된 재앙’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나저나 최태원 회장처럼 ‘유심 보호 서비스’만 가입하고 유심은 바꾸지 않았냐고요? 이참에 KT로 갈아탔습니다. 네~ KT로 옮겼다는 수많은 가입자 중 한 명이 바로 접니다. (사실 “최태원 회장이 유심 보호 서비스만 가입했다고 당신들도 그렇게 하면 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최 회장 폰은 법인폰이겠죠. 법인폰과 개인폰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무게감이 절대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꾸고 나니 휙~ 생각이 나더군요. SKT VIP 고객으로 누릴 수 있던 수많은 혜택이 다 사라졌다는 사실을요. CGV 무료 영화 쿠폰 3장은 하나도 사용하지 못했는데 말이죠. ‘회사의 귀책 사유로 인해 해지할 경우 위약금 납부 의무가 면제된다’는 조항이 있음에도 “위약금을 면제해줄 것이냐?”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SKT 사장이 이런 자잘한 손해를 조금이나마 복구해주겠다고 하지는 않을 테죠? 갑자기 화가 마구 밀려옵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생각나는 날입니다.

[김소연 편집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8호 (2025.05.07~2025.05.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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