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윤석열 대통령은 결국 파면됐다. 헌법재판관 8명 전원 일치 결정으로 파면된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민간인 신분으로 내란죄에 대한 형사 재판을 받게 됐다.
헌법재판소 선고 시기가 늦어지면서 4:4 기각설, 6:2 인용설 등 여러 설이 난무했지만, 결국 8:0 전원일치로 파면이 결정됐다. 상당수 국민은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 선고가 내려진 날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례 자체 여론조사(4월 1일부터 3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탄핵 찬성 여론은 59%, 탄핵 반대는 37%였다.
그동안 여론조사 흐름을 대략적으로 평가하면, 탄핵 찬성 여론은 60% 정도로 유지되어 왔다. 이번 탄핵 찬성 비율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보다는 다소 낮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일이던 2017년 3월 10일의 1주일 전인 3월 3일 발표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에서는 탄핵 찬성 여론이 77%에 달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그만큼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총 세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리가 진행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나라 정치판은 완전히 둘로 갈라졌다. 노 전 대통령 탄핵은 기각됐지만, 인용 여부와 관계없이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권은 극단적으로 양분됐다. 정치판의 양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는, 17대 국회부터 여야 의원들 사이 개인적 접촉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17대 국회 이전에는 여야가 격렬히 싸우면서도, 일이 끝난 후에는 서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일이 적지 않았다.
과거 ‘사쿠라’라는 일본어가 한국 정치판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됐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사쿠라’는 일본어로 ‘벚꽃’을 뜻하지만, 우리 정치권에서는 상대 정당 의원과 자주 만나고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쿠라’라는 표현이 그리워질 정도로 여야 의원 간 사적 교류가 거의 사라졌다.
여야 의원들은 공식 석상에서는 대립하더라도, 사적으로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치가 극단적 대결로 치닫지 않고, 타협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17대 국회 이후 여야 의원 간 사적인 친밀도는 거의 사라졌고, 그에 따라 여야 간 타협 가능성도 매우 작아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양분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즉, ‘정치적 양분화’와 ‘사회적 양극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문제는 탄핵이 반복될수록 정치와 사회가 더 극심한 혼란 상태로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이번 윤 전 대통령 탄핵은 아마도 우리 사회를 극단적 양극화 상태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예측이 가능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윤 전 대통령 측 탄핵 심판 대응 전략에 원인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박 전 대통령 측은 국정 농단 사건을 이념 대결 구도로 몰아가지 않았다. 물론 당시 사건이 비상계엄 같은 극단적인 정치 사안이 아니라, 비선 실세와 관련된 국정농단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념화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 사건 또한 이념과 관련된 사안으로 ‘만들 수’ 있었다. 예컨대 박 전 대통령 측이 그 국정농단 사건을 국내에 암약하는 친북 세력의 조작된 음모라고 주장했다면, 사건은 충분히 정치적·이념적 사안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신의 비정상적인 비상계엄 선포 시도를 이념적 사안으로 전환시켰다. 그는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 표현하고, ‘부정 선거’ ‘친북’ ‘친중’ 등 용어를 결합하여 자신의 행위를 이념적으로 포장했다. 이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을 ‘보수의 투사’로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은 ‘심리적 내전’ 수준으로 심화되었다. 현재 상황을 ‘심리적 내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전혀 과하지 않은 이유는, 이념을 둘러싼 ‘사회적 거리’가 그만큼 멀어졌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를 측정하는 여러 방식 중 대표적인 예가 ‘당신은 당신과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과 동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자녀가 이념이 다른 집안 자녀와 결혼해도 괜찮습니까’ ‘당신은 이념이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습니까’ 등의 질문을 들 수 있다. 2025년 2월 발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의 시사점’ 보고서(2023년 6∼8월, 전국 성인 39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기반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33%는 ‘이념이 다른 사람과는 술자리도 피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가 윤 전 대통령 탄핵 이전에 실시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상황은 당시보다 훨씬 더 심각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이념 대결 구도로 몰아가지 않았더라면, 이번 탄핵으로 인한 정치·사회적 양극화는 지금보다 덜했을 수 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오히려 자신의 행위를 이념적으로 포장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탄핵 심리에 대응했고, 이로 인해 정치·사회적 양극화는 내전 수준으로 치닫게 됐다.
이러한 윤 전 대통령 언행을 보수 진영이 조금만 더 냉정하게 바라봤다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았을 터다. 윤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보수의 정통’으로 여겨진 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주역 중 한명이다. 이후 문재인정권 시기 ‘적폐 청산’ 과정에서도 윤 전 대통령은 중심적인 인물로 활동했다. 100여 명의 공무원이 기소되거나 감옥에 가게 된 ‘적폐 청산’과 윤 전 대통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물론 사람의 이념 성향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일이나,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특히 ‘적폐 청산’은 불과 3년 전까지도 이어졌다. 그런 인물이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고, 나아가 ‘보수의 투사’로 자리 잡았다는 점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탄핵 반대를 외치던 국민은 이 점을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보수 유권자들이 추구하는 이념적 지향성을 윤 전 대통령은 대표할 수도 없고, 보수를 대표할 만한 서사도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강성 친윤 세력은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선고 이후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에서 지지층을 더욱 자극할 만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긍정적인 요소는, 상당한 규모의 탄핵 찬성 집회를 주도했던 ‘세이브 코리아’ 측이 헌법재판소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점이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 저항권’을 운운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러운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한 이들도 이런 주장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보수의 진정한 가치는 ‘법치’에 있다. 보수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와 ‘법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도를 무시하거나 불신하면, 법치는 결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정치는 ‘이성적’인 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상식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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