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부터 탄핵까지 … 대한민국 뒤흔든 '결정적 8개 장면'

윤석열 대통령이 4일 파면됐다. 이날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면서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부터 이날 파면 결정까지 122일이 걸렸다. 비상계엄 선포 뒤 2시간38분 이어진 '서울의 밤' 동안 긴급 소집된 국회가 군인으로 구성된 '체포조'의 국회의사당 진입에도 비상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을 상정해 이를 통과시켰다. 이후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와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도 있었다. 비상계엄부터 윤 전 대통령 파면에 이르기까지 주요 장면을 돌아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킬 것"이라며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강조했다. 6분간 이어진 담화는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경찰은 작년 12월 3일 오후 10시 48분부터 국회 외곽 출입문을 폐쇄하고 국회의원과 보좌진, 직원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어 군은 오후 11시 48분께 국회 경내에 진입했다. 707특수임무단 대원 27명을 태운 블랙 호크 UH-60 헬기 3대가 국회의사당 본청 뒤편 운동장에 착륙했고 이후 헬기는 총 24차례에 걸쳐 다음 날 오전 1시 15분까지 병력 약 230명을 국회로 수송했다. 투입된 병력은 오후 11시 50분께 국회 본청 후문 진입을 시도했지만, 국회 방호처 직원들의 저지에 부닥쳐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다음 날 오전 0시 33분 정문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계엄군 707특임단 대원 16명이 국회 본청 북쪽,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이 위치한 사무실 창문을 깨고 국회 본청 안 진입에 성공하기도 했다.

의원들의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도 당시 긴박했던 분위기가 전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39분, 단체대화방에 '국회로'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던졌다.
출입문 통제로 인해 국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의원들은 국회 외곽의 담을 넘기 시작했다. 시민들 응원과 도움을 받아 의원들이 담을 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같은 시간 국민의힘 의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같은 날 오후 10시 49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과 함께 막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국회는 그날 자정을 넘겨 다음 날인 4일 오전 0시 49분 본회의를 열었다. 오전 1시 1분 본회의에 상정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재석 의원 190명 중 찬성 190명으로 통과됐다. 비상계엄 선포 2시간38분 만이었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국회 앞으로 모인 시민들 목소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자 탄핵 찬반 세력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앞으로 장소를 옮겨 집회를 이어나갔다. 탄핵 찬성 측은 한남초등학교 인근에서, 탄핵 반대 측은 북한남삼거리 인근에서 서로 마주 보고 각각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를 외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1차 집행 시도가 불발된 다음 날인 2025년 1월 4일 한남동에서는 맞불 집회가 열리며 긴장감이 고조됐다. 연일 집회가 열리며 한남동 인근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한남동 일대 교통이 마비됐고, 경찰 통제로 인해 도보 통행이 제한됐다. 시위에 참석한 인파로 인해 시내버스가 우회 운행하거나 한강진역에서 열차가 무정차 통과되는 일도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으로서 체포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편 대통령 내란죄 수사와 구속영장 발부, 체포를 주도한 공수처의 수사 과정에서 논란이 계속해서 불거지기도 했다. 공수처는 1월 3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지만, 경호처와 5시간 동안 대치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공수처와 경찰은 12일 만인 1월 15일 경비 인력을 보강해 2차 체포에 나섰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에는 또 하나의 균열이 생겼다. 윤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실질심사 날(1월 18일) 벌어진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사태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법원 내·외부 시설물을 파괴하고, 경찰에게도 폭력을 행사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출석한 현직 대통령이기도 하다. 매번 붉은 넥타이를 매고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1월 21일 3차 변론기일부터 최후 변론기일까지의 탄핵심판 중 총 8차례 헌재에 출석해 자리를 지켰다.
탄핵심판에서는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 △계엄 포고령의 위헌성 △국회 장악 및 국회의원 체포 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시도 △법조인 등 주요 인사 체포 시도 등 다섯 가지 쟁점이 주로 다뤄지며 청구인 국회 측과 피청구인 윤 전 대통령 측이 증인신문 등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렸다.
법정에 앉은 윤 전 대통령은 주로 눈을 감고 듣는 모습이었지만, 자신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본인 입장을 소명했다.

1월 15일 체포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구속기간 산정과 관련된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체포 52일 만인 3월 8일 석방돼 한남동 관저로 돌아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구속기한 만료, 공수처 수사 절차 등의 위법성 등을 이유로 윤 전 대통령 측에서 낸 구속취소 청구를 3월 7일 인용했다.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이 실제 시간으로 계산돼야 하며, 공수처의 수사 범위에 내란죄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3월 8일 대검찰청이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를 포기하며 그날 오후 6시께 윤 전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하자 일대는 축제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서 출발해 한남동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에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에 파면됐다. 국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헌법재판관 8인이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를 인용하면서다.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때로부터는 122일 만,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이후로는 111일 만이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탄핵심판 선고 주문을 읽었다. 주문을 읽음과 동시에 파면의 효력은 발생했고, 윤 전 대통령 신분은 현직에서 전직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이날 오후 윤 전 대통령은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수민 기자 / 박자경 기자 / 구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