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돈 굴리려 애쓰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격변기에 ‘잔돈’ 벌어보겠다고 베팅하다 망한다고요.”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매니저가 탄핵심판 선고일(4월 4일) 일주일 전쯤 한 얘기다. 지난 12월 3일 계엄 이후 한국 경제 시계는 멈춰 있었다. 워낙 변동성이 심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야만 하는 매니저가 아예 손을 놨다. 외국인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증시가 가장 싫어한다는 ‘불확실성’이 가득 찬 나라다.
JP모건은 올해 우리나라가 0%대 성장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가운데 0%대 성장률을 내놓은 곳은 JP모건이 처음이다. 내수 침체는 길어지는데 미국發 관세 쇼크로 수출까지 부진해질 것이고 마땅한 성장동력이 안 보인다고 했다.
우리 눈으로 봐도 그렇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전자는 AI 시대 제대로 활로를 못 찾는다. 수출 주춧돌인 현대차는 미국으로 ‘본거지’를 대거 옮겨간다. 정치는 불안하고 고용을 책임져야 할 기업은 떠나가는 형국이다.
국가 경제력 상징인 환율은 어떤가. 지난해 12월 이후 1400원대 밑으로 단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 내려오긴커녕 이젠 1500원을 뚫을 기세다. 미국 상호관세 영향이라지만, 한국의 혼란한 정국이 원화 약세를 부추겼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코스피는 연초 반짝 상승세를 타다 다시 폭락세를 보이고, 치솟는 먹거리 물가에 저소득층은 더 가혹한 2025년을 보내는 중이다. 경제 어느 구석을 살펴봐도 대한민국은 위태롭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관세 전쟁을 준비할 때 한국은 무방비였다. 탄핵 정국은 111일 만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국가 위기에 대해 남탓하는 정치권 관성을 끝낼 때다. 여야(與野) 할 것 없이 바라봐야 할 곳은 경제, 단 하나뿐이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4호 (2025.04.09~2025.04.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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