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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충무로에서] "자유무역 사라진 시대 그래도 우리 갈길 간다" 싱가포르 총리의 용기

문지웅 기자
입력 : 
2025-04-07 17:30:09
수정 : 
2025-04-07 17: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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웡 싱가포르 총리는 세계화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단합과 단호함을 강조했다.

미국이 상호관세 10%를 부과하는 곤란한 상황에서도 그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시스템 폐기를 우려하며 담담하게 담화를 발표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이 미국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어, 공식 대응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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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에 기반한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단호하고 단결된 상태를 유지한다면, 싱가포르는 이 어려운 세상에서 계속 그 위치를 지켜 나갈 것입니다."

잘 아는 분이 월요일 아침 일찍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의 대국민 담화 영상을 보내줬다. 담담하고 간결하고 확고했다. 동영상에 달린 댓글 평가도 좋았다. 영상 링크를 보내준 분의 의도는 굳이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자유로운 세계 무역질서를 의심한 적 없었을 듯하다.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에 열광하던 시대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교역은 한국을 경제 대국에 올려놓은 결정적 원동력이다.

미국은 싱가포르에 상호관세 10%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영국 등과 함께 가장 낮은 관세율이다. 우리 수출품은 9일부터 미국에 들어갈 때 25%의 관세율을 적용받는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10%의 관세율을 부여받게 됐다면 어땠을까. 웡 총리는 10%의 가장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았는데 왜 저런 영상을 올렸을까. 우선 우리가 싱가포르처럼 관세율 10%에 해당됐다면 표정 관리를 하느라 바빴을 것 같다. '위기'를 얘기하기보다 '기회'를 말하는 전문가들의 발언이 쏟아졌을 것이다. 일부는 한국에 관세 폭탄을 투하하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열광했을지도 모른다. 웡 총리는 달랐다. 10% 상호관세에도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추정되는 곳에서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셔츠의 양팔을 걷어붙이고 "미국이 지금 하는 행동은 세계무역기구(WTO)를 개혁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폐기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웡 총리의 담화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우선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웡 총리처럼 솔직하고 담백한 담화를 낼 수 있었을까. 격식에 신경 쓰느라 비슷한 담화는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내용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싱가포르와 달리 미국에 안보와 경제를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잃을 게 많은 우리는 공식 대응에 수위 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두 달간 집단지성의 힘에 기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론이 불거진 건 관세 폭탄 대응엔 부정적일 수 있다.

가장 두려운 건 공직자들의 무사안일이다. 공무원들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경우 적폐 청산을 우려한다. 국민 통합을 외친 웡 총리의 연설을 대권주자들이 곱씹어 보길 바란다.

[문지웅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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