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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두 개의 공장, 두 개의 미래 [김선걸 칼럼]

김선걸 기자
입력 : 
2025-03-28 21:00:00
수정 : 
2025-03-29 17: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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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드물던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 31조원에 달하는 투자 발표를 했다. 계엄이니 탄핵이니 앞이 꽉 막힌 한국엔 한낮의 소나기처럼 신선했다. 전 세계에 관세 협박을 하고 있는 트럼프가 현대차 참가자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위대한 기업’이라고 치켜세웠다. 한미 외교도 기업을 통해 명맥이 유지될 것이란 작은 안도감도 줬다.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오히려 주판알을 튕겨 보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공장에서 내년부터 연간 30만대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양산하게 된다. 이는 현재 한국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차를 대체할 것이다.

25만대의 수출을 대체한다고 가정하고 차량 단가를 대당 4만달러로 치면, 한국은 연간 100억달러(한화 13조원) 수출이 줄어든다. 부품 수출까지 감안하면 충격은 더 크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한 해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 비중이 40%가 넘는다. 자동차는 수출 2위 품목이다. 자동차와 차부품 수출을 더하면 전체 수출 규모의 12%를 차지한다. 그 상당 부분 대체가 이미 시작됐다. 특히 부가가치 높은 북미 시장 축소는 치명적이다.

미국 대통령이 관세 25%를 붙이는 시대. 현지 공장 설립은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해외 투자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란 말이다.

한국에선 강성노조의 간섭과 방해로 이미 차 생산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단순히 임금 인상 요구가 과도하다는 뜻이 아니다.

신차 개발 때 노조와 사전 협의를 해야 하고, 생산라인의 신설이나 변경도 노조 동의가 필요하다. 협력업체 직원 채용 때 노조 간부의 친인척을 청탁하기도 했다. 한 전문가는 “본질적인 경영의 차원에서 장애물이 너무 많아 기업의 생존이 의문시되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일 뿐, 해외로 갈 유인이 진즉부터 똬리 틀고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 현대제철의 상황이 단적인 사례다. 현대차는 이번 발표 때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270만t 규모의 전기로 공장도 설립해 자동차용 강판 생산도 현지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불과 두 달 전 노조 파업으로 현대제철은 창사 이래 첫 직장 폐쇄를 단행했고, 이어 28일엔 공장 셧다운(가동 중단)까지 했다. 현대제철은 2023년에 영업이익이 70%가 줄었고 중국산 저가 철강제품과 경쟁에 궁지에 몰렸다. 그런데 노조는 다른 계열사만큼 돈을 달라며 파업을 한다.

십여년 전 현대차 공장을 지을 터를 찾으러 미국에 ‘수색대’로 간 핵심 관계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앨라배마 주지사는 식당 문밖에 나와 기다리다가 차도 직접 열어줄 정도로 맨발로 뛰더라”고 했다.

사실 뭐가 다르겠나. 미국도 똑같다. 현대차 공장을 남부에 세우는 이유는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약한 곳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낮추고 경영 방해를 없애고 대통령이 나서서 기업을 유치하는 경쟁이다. 그래야 경제가 산다.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 준공식엔 정 회장 뒤에 젊은 근로자 수천 명이 도열했다. 노조 파업으로 셧다운 된 현대제철 공장과 대비된다.

글로벌 기업을 키워 내고도 단 한 세대의 근로자들만 즐기고, 다음 세대 일자리는 해외로 쫓아내는 나라가 될 것인가. 기업이 사라지면 한국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진다.

최근 2030세대의 각성은 이유가 있다. 노조도 이 땅에서 살아갈 청년들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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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3호 (2025.04.02~2025.04.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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