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됐다.
윤 대통령 석방은 단순히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나왔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정국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사건이다.
우선 윤 대통령 석방은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에 ‘제한적’이나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석방이 ‘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일반 국민은 구속되면 ‘죄가 있다’, 석방되거나 구속되지 않으면 ‘무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고와 관련해 주목할 부분이 또 있다. 석방이 되지 않았다면,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대통령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석방이 되니 ‘무죄’라는 생각과 함께 대통령의 ‘실질적 복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아질 수 있다. 헌재가 부담을 느낄 만한 사안이다.
둘째, 서울중앙지법은 윤 대통령 구속 취소를 결정하면서, “공수처 수사 범위에 내란죄는 포함돼 있지 않으며, 공수처가 직권남용죄를 수사하다 그 과정에서 내란죄를 인지했다고 볼 만한 증거나 자료가 없다”고 못 박았다. 또 “변호인들이 들고 있는 위 사정에 대해 공수처법 등 관련 법령에 명확한 규정이 없고 이에 관한 대법원 해석이나 판단도 없는 상태”라고 했다. 이 부분도 헌법재판소 결정에 제한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채택한 증거 중 공수처 조서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최소한 증거 채택과 관련한 논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법원이 공수처 내란죄 수사 권한에 대해 의문을 던진 것이라고 해석하면, 공수처가 내란죄 수사를 하겠다고 적극 나섰던 당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공수처가 검찰과 경찰로부터 수사권을 가져온 이유는, 내란죄 수사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려 했기 때문이다. 공수처의 ‘의지’는 충만했지만, 영장 청구부터 논란을 빚었고, 이후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심지어 공수처장이 ‘위증과 허위 공문서 작성 논란’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결국 공수처의 ‘명예 회복에 대한 조급함’과 ‘경험 부족에서 나오는 미숙함’이 다양한 논란의 원인이 됐다. 이 또한 헌법재판소 탄핵 여부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모른다. 여태 헌법재판소가 보여준 태도는, 공수처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서두른다’기 때문이다.
이를 헌재도 인식했을까. 최소한 지금 헌재는 ‘신중’을 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갖가지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관 사이 이견이 많아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하며, 기각이나 각하 결정이 날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어느 정도 결정은 내려졌다며 그 근거로 최상목 권한대행이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집회·시위나 공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를 엄단하라고 지시했다는 점을 든다. 이런 지시는 탄핵 선고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 민주당 의원들이 별 움직임이 없다 갑자기 삭발하거나 광화문에서 단식 투쟁하는 의원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급변한 태도를 두고, 탄핵 결정을 앞두고 위기를 느껴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온다.
이럴 때일수록 민주당은 차분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아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민주당은 또다시 “탄핵! 탄핵!”을 외치고 있다. 윤 대통령 석방 이후 민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을 탄핵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검찰이 즉시 항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민주당 주장에는 논리적 부정합이 존재한다. 항고를 왜 안 하느냐를 따지기 전에, 이런 결정을 왜 내렸느냐고 법원에 따져야 논리적으로 맞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들었던 ‘민주당에 의한 잦은 탄핵과 그에 따른 국정 마비’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 주장이 그리 틀린 것만은 아니구나’라고 ‘체감’할 수도 있다. 민주당이 검찰총장 탄핵을 외칠수록, 역설적으로 윤 대통령 주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도 있다. 또한, 민주당이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대를 원한다면, 중도층이 가장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중도층이 가장 원하는 것은, ‘국정의 정상화’다. 그런데 민주당이 또 탄핵을 외치는 것은 중도층의 이런 바람을 완전히 저버리는 꼴이다.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대를 원한다면, 민주당은 탄핵이라는 단어를 아예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 석방이, 민주당에 이런 부정적인 측면만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꼽을 수 있는 민주당의 ‘본의 아닌 이익’이 있다. 이재명 대표의 ‘비명과 검찰의 내통’ 언급으로 불거진 친명과 비명 간 갈등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다는 점이다. 진짜 장점은, 윤 대통령에게 다시금 관심이 집중됨으로써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관심이 분산되는 것은,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체포되고 구속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이 생겨났고, 윤 대통령이 시야에서 사라짐으로써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이런 관심은 부정적인 여론 증가로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 윤 대통령이 석방됐으니, 이제 여론 관심은 다시금 윤 대통령에게 쏠리게 됐다. 이런 상황은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 나쁘지 않다.
계엄 선포 직후부터 12월 말까지는 국민의힘 지지율이나 윤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1월부터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윤 대통령이 체포, 구속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즉, 국민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사실과 국민의힘 지지율 회복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의미다. 이제 윤 대통령이 석방됐으니, 작년 12월처럼 여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여권의 딜레마는 이뿐 아니다. 조기 대선을 준비하던 잠룡들은 이제 제대로 된 대선 준비를 하기 어렵게 됐다. 또 당의 중심은 다시금 윤 대통령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은 중도층으로의 지지층 외연 확대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강성 이미지를 가진 윤 대통령의 당에 대한 ‘그립감’을 중도층이 반길 리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윤 대통령 석방은 여러 측면에서 정치권에 파장을 몰고 왔다.
헌법재판소 탄핵 여부 결정은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상황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버텨온 이유는 무질서 속에서 나름 질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파장과 혼란이 커지지 않기 위해, 여야 대표들은 지금이라도 만나 헌법재판소 결정에 승복하겠다고 국민 앞에서 약속해야 한다.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1호 (2025.03.19~2025.03.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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