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7일 “3월 말까지 학생들의 전원 복귀를 전제로 의총협 건의에 따른 총장들의 자율적 의사를 존중한다”고 했다. 즉 정부가 선제적으로 내년도 ‘증원 0명’ 안을 내놓은 게 아니라 ‘의대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와 40개 의대 학장 협의체(의대협회)의 건의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또한 ‘증원 0명’은 이달 말 복귀라는 시한부 조건을 달아 정부가 기존 2000명 증원 계획을 포기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학생 복귀 및 의대교육 정상화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3.7 [한주형기자]](https://pimg.mk.co.kr/news/cms/202503/10/news-p.v1.20250307.e6e5a269d4ce41ab8d1bd186fe44272b_P1.jpg)
‘도로 3058명’ 안은 정부가 의사단체까지 포함해 충분히 협의한 뒤 효과를 치밀하게 검증하고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책임 지고 집행하려는 의지가 덜 읽힌다. 추후 기대했던 성과가 나지 않으면 정부가 낸 방안이 아니었다며 발뺌할 여지를 남겨뒀다. 의대생 복귀를 위해 뾰족한 대안이 없는 정부로선 외부 건의대로 해서 효과가 있으면 좋고, 안되면 사후 비난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특히 이 부총리는 “(3월 말까지) 미복귀 시엔 내년도 정원은 이미 확정된 5058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달 말까지 학생들 복귀가 없으면 3058명 안은 자동 철회된다는 얘긴데, 지금 정부가 ‘양치기 소년’처럼 된 마당에 5058명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정부가 ‘3월 말 데드라인’을 힘주어 말하는 것은 기존 2000명 증원 계획을 뒤집는 것이 아님을 강변하는 것처럼 들린다. ‘증원 0명’이 정부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돼서 체면이라도 깎일까봐 미복귀 시 불이익을 내세워 겁박한다.
학생들이 이달 말까지 안 돌아온다고 해서 정부가 올해만큼 증원을 강행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국정 동력은 떨어져 있고, 지난 1년 간 투쟁해온 학생들이 아무 소득도 없이 2년 연속 증원을 방치한 채 복귀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 의료계 일각에서는 올해 증원분만큼 내년 입학 정원을 줄이고, 정부엔 철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2026학년도에는 한 명도 뽑지 말자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했다.
정부가 선심 쓰듯 한쪽으론 3058명을 꺼내고, 다른 편에선 미복귀 시 5058명 증원을 압박해서는 의대생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증원 0명’을 정부가 진짜 해보려는 것인지 학생들은 반신반의 할 것이다. 그러니 ‘증원 0명’에도 복귀 움직임이 없다. 결국 후자(5058명) 주장은 여러 모로 허풍처럼 들리는데, 정부가 이런 헛발질을 1년 넘게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교육부는 지난해 의정 갈등 이후 겉으로는 휴학생들에게 유급과 제적 관련 학칙을 엄히 적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꿈쩍도 하지 않자 뒤늦게 정부는 그들을 살리려 백방의 노력을 했다. 집단유급을 면해주겠다며 연간 두 학기로 된 ‘학기제’를 ‘학년제’로 바꾸고, 의대 수업 연한 단축, 야간·원격·주말 수업 개설 등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반면 정부는 이로 인해 국민 신뢰를 잃었고, 이 틈에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전 대한의사협회장 발언은 기정사실이 됐다. 하지만 정부는 체면 때문인지 의사들을 회유하면서도 압박 카드를 꺼내는 등 대응이 뒤죽박죽이다. 그러니 정부 의도를 종잡을 수 없고, 의료계에 계속 끌려다니는 것이다. 차라리 국가 미래 의료체계가 망가지지 않도록 협조해달라고 하소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1년을 넘긴 의대 증원 후폭풍은 정부 정책 실패의 대표 사례다. 관련자 책임 추궁과 별개로 다른 부처들의 정책 집행에서도 유사한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백서(白書)라도 만들어 모든 공무원들이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김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