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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할 것인가 거래될 것인가 [김선걸 칼럼]

김선걸 기자
입력 : 
2025-02-23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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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의 작년 실적은 ‘어닝 쇼크’였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60.6%와 72.7% 감소한 3144억원, 1232억원이다. 순이익은 4분의 1 토막이 났다.

중국 저가 철강재의 공세, 건설 시장 침체가 원인이다. 단기간에 극복할 만한 요인은 아니다.

이미 포항 공장 상당 부분은 가동을 중단했다.

그런데 현대제철은 오히려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텍사스, 조지아 등의 후보 지역을 물색 중이고 10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자발적인 투자는 아닐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정부가 기업의 방벽이 돼야 할 때, 한국 정부는 대통령도 총리도 없다. 울타리 없는 기업은 바람 앞의 촛불이다.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트럼프에게 장단을 맞추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혈맹’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지난달 열렸다. 한국 정부는 기업을 데리고 가기는커녕 개별 기업들이 ‘각자도생’ 활로를 뚫어 참석했다. 미국에 사업장을 둔 한 기업인은 “트럼프 정부 인사를 소개시켜달라는 전화를 여야 정치인들로부터 받았다”며 “미국 네트워크가 얼마나 취약하면 나한테까지 연락을 하나 싶어 우울했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1기 때보다 독단적인 트럼프의 일 처리다. 지난주 미국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쏙 빼고 종전 협상을 러시아와 시작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트럼프의 행동 방식이 8년 전보다 훨씬 과격하고 독재자 같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생존을 좌우하는 협상에서 빠졌다. 이제 2기 트럼프에게 배려란 없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남의 일이 아니다. 개화기 조선의 역사가 그랬다. 강대국들의 뒷거래에 피해를 본 대표 사례다. 일본은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으로부터 조선 통치를 보장받았고,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에도 조선 지배를 인정받았다. 그들끼리 거래하는 동안 조선은 까맣게 모른 채 주권을 빼앗겼다.

조선은 배제됐고 발언권조차 없었다.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까지 꼬리를 무는 당쟁으로 국력을 소진한 결과다. 지금도 29차례의 탄핵과 계엄 선포까지, 결국 대통령에 총리조차 없는 나라다. 제국주의 시대의 데자뷔 같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간 적이 있다.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던 이준 열사. 그가 묵었던 숙소를 들렀다. 좁은 방에 왜소한 침대가 마치 사그라지던 조선의 운명을 상징하는 듯 서글펐다. 이 열사는 발언할 기회는커녕 회의장에 입장조차 못했다. 문밖에서 통곡하며 자결했다.

트럼프의 행동은 사실상 ‘경제 전쟁’의 선전 포고다. 제대로 된 정부라도 버거울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없고 ‘대행의 대행’이 이끄는 나라다.

기댈 곳은 기업들뿐이다. 한국 기업들은 외교 활동까지 대행해야 할 신세다.

개화기 조선과 다른 점은 분명하다. 한국이 10대 경제대국, 특히 글로벌 기업이 포진한 나라가 됐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도 바로 경제다.

시장 경제에서 부가가치를 늘리고 국가를 성장시키는 건 결국 기업이다. 이런 소중한 경제 엔진을 더 성장시키는 것이 바로 애국이고 정치의 역할이다.

이런 와중에 반도체 산업 ‘52시간 예외’ 하나 처리하지 못한 무능한 국회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물을 일이다.

‘거래할 것인가 거래될 것인가.’

답은 우리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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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8호 (2025.02.26~2025.03.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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