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반발에 실효성 논란
韓 핵보유 목소리 커지지만
트럼프 용납할지 예단 곤란
북핵 본격 논의전 대응채비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뜻을 같이했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북핵 문제를 우리 대통령이 먼저 트럼프와 만나 논의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미일정상회담을 통해서라도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선언적 의지를 확인한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얼마 전 “핵방패의 부단한 강화”에 이어 미일 정상회담 직후에도 “핵역량 가속”을 외치고 있어 ‘북한 비핵화’라는 오래된 레토릭이 얼마나 현실성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실제 북한은 비핵화 목표를 비웃기라도 하듯 핵탄두와 핵물질, 투발수단 등 거의 모든 관련 기술을 갖췄고, 지금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고도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은 2022년 핵무기 사용 원칙과 조건을 최고인민회의 법령에 규정해뒀고, 7차 핵실험까지 앞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100% 확신이 힘든 미국 핵우산에 의지하는 상황 그대로다. 조 바이든 정부 때 한미 핵협의그룹(NCG) 창설과 한반도에서 미국 전략 자산의 주기적 전개 등을 통한 핵우산 신뢰 구축에 힘썼지만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트럼프 시대에 기존 합의가 지켜질지 우려가 크다.
그러다 보니 트럼프가 취임 당일인 지난달 20일,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칭하자 우리는 전전긍긍하며 진위 파악에 분주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미 대선 운동 기간에 김정은이 다량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지난해 10월 일리노이주 시카고 경제인클럽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부르며 방위비 분담 인상을 압박했을 때도 머니 머신 다음 발언은 “북한은 핵무기가 매우 많다(North Korea is very nuclear)”는 것이었다.
최근 국내 정치권과 학계 일부에서 전술핵무기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 등 핵정책 전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이 쓴 책 ‘왜 우리는 핵보유국이 되어야 하는가’를 보면 그 사유는 10가지가 넘는다. 북한 비핵화 가능성이 희박하고, 우리의 비핵무기로 북핵 대응 불가능, 미국 확장억제의 신뢰성 약화 등이다. 정 센터장은 최근 강릉에서 열린 세종연구소 정책포럼에서도 “중국의 안보 위협을 미국이 견제하는데 우리가 동참하는 형태로 해서 일본과 동시 핵무장을 설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502/11/news-p.v1.20250203.88fc25b52b7f4980b10ee4b7d1b3042b_P1.jpeg)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적 특성이 한국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주장 역시 핵 보유론 부상과 궤를 같이 한다. 조선과 원전, 반도체 등 미국이 원하는 산업 협력을 핵 보유라는 안보재로 치환·획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트럼프가 2016년 4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북핵이 큰 문제인데, 한국과 일본이 핵을 갖고 스스로 방어에 나선다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발언을 근거 중 하나로 든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후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한국 핵 보유에 침묵해온 점을 감안하면 꼭 맞는 발언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라도 특정국에 핵 보유를 인정할 여지는 없다는 견해도 많다. 이는 핵확산금지조약(NPT) 같은 국제 안보체제를 흔들 수 있어 용납 대상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설사 핵 보유를 수용하더라도 의회나 정부, 각종 단체들의 반발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핵 보유 주장은 내부 분란만 키우는 공허한 일이 될 수 있다. 핵 대가를 바라고 미국에 거래를 제안했다가 부도수표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차제에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찾자는 지적도 있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다. 한미원자력협정상 20% 미만으로 돼있는 우라늄 농축 제한을 미일 협정 수준으로 높여 핵물질 보유 기반부터 갖추자는 주장은 늘 있던 얘기다. 하지만 고농축이 가능하려면 이를 핵 개발로 전용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일본 전 총리의 핵무기 제조·보유·반입 불가라는 ‘비핵 3원칙’ 같은 확고부동한 입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핵보유론이 확산되고 있고, 70% 넘는 국민이 이에 찬성하는 마당에 미국이 협정 개정에 선뜻 응하기는 힘들 것이다. 미국 전술핵무기를 한국과 호주, 필리핀, 괌 등에 비밀리에 순환 배치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하지만 미국 전술핵이 전투기 탑재용을 빼면 상당수 폐기돼 타국에 배치할 물량이 부족한데다 배치 비용 부담을 감안하면 쉽지 않다.

우리의 핵 보유 당위론이 실현되려면 시간과 전략이 필요하다. 취임 직후 관세 부과와 타국 영토 소유 등 예상을 넘는 트럼프의 정책들을 감안하면 북한 비핵화와 우리의 핵보유 향배는 예단하기 힘들다. 절대 안될 것 같은 일도 가능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낳는다. 이에 우리는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본격적으로 꺼내기에 앞서 시나리오별 대응 태세를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미국 인사들의 북핵 발언 의미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불안해하는 상황은 좀 벗어났으면 한다.

김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