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헌정질서 오히려 훼손한 꼴
정권 이너서클의 친위 쿠데타
나라에 드리운 어둠이 두렵다

한밤 중 비상계엄 선언은 45년 전 궁정동의 총성과 같은 충격이었다. 10·26 이후 최초의 계엄령은 10·26 사태 만큼이나 즉흥적이었다. 심야에 신문사 편집국으로 복귀한 기자들도 초현실적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해외의 지인들로부터 “전쟁이 나는거냐”는 텔레그램 메시지가 연신 울려댔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계엄사령부 포고령 3항을 보고는 기함을 넘어 분노했다. 전공의가 48시간 내에 본업에 복귀하지 않으면 계엄법으로 처단하겠다는 대목에선 할 말을 잃었다.

민주당의 김민석 의원이 지난 여름 윤석열 정부가 탄핵 국면에 대비해 계엄령을 준비한다고 주장했을 때 다수가 ‘괴담’이라고 폄하했다. 심지어 이번에 계엄령을 건의했다는 김용현 국방부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나. 우리 군이 과연 따르겠는가, 저라도 안 따를 것 같다”고 눙쳤다.
정말로 이 정부의 이너서클은 계엄 발동까지 염두에 둬왔던 것일까. 아니면 3개월 사이에 판단을 바꿀 만한 사정 변경이 생긴 것일까.
우리는 입법부를 장악한 민주당의 독주를 목도해왔다. 야당은 탄핵 권한의 최대 활용에 이어 감액만 반영한 예산안의 일방 처리를 시도했다.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한 방탄 전략이라는 비난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이 계엄의 준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2시간 전 국무회의 석상에서도 격론이 오갔다. 침묵을 지키는 장관도 있었으나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반대 목소리가 컸다. 계엄의 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지적부터 국민들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충언까지. 대통령은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나 윤석열과 김건희, 단 두 사람을 위한 계엄이 통할리 없었다.

국회의원들은 의사당으로 모여 계엄 해제를 속전속결로 결의했다. 투표에 참여한 190명 중 반대는 아무도 없었다. 친윤석열계 의원들이 미적거렸으나 친한동훈계 의원을 중심으로 18명이 동참해 헌정질서를 지켜냈다. 계엄군 280여 명이 국회로 들이닥쳐 본청 진입까지 했지만 의원들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그들도 자신들이 1980년 5월 광주의 군인이 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해산하며 군중을 향해 고개를 숙여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젊은 군인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계엄 해제에 안도감을 느낀다는 백악관 대변인의 반응은 윤 대통령의 오판을 웅변한다.

결국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대통령의 말은 150여 분 만에 메아리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무거운 단어가 이렇게 가벼이 들린 적은 없었다. 이번 사태는 윤 대통령과 극소수 이너서클이 만든 친위 쿠데타(self-coup),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민 모두는 윤 대통령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다. 도대체 무슨 확신으로, 우리가 본능적으로 몸서리를 치는 군사정권의 유물, 그 계엄을 꺼내든 것이냐고.
정권의 유지든 탄핵의 완성이든 대한민국은 멀게는 45년 전, 가깝게는 8년 전의 카오스로 빠져들었다. 우리는 다시 ‘개와 늑대의 시간’을 마주하게 됐다. 황혼이 드리우면 형체 만으로 개와 늑대를 구분하기 힘든 혼란의 시간이 온다. 대체 이 나라의 어둠이 어디까지 짙어질지 두려움이 엄습한다.
쿠오바디스(Quo vad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