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위기설’이 나돌 정도로 국내 건설 업계가 살얼음판을 걷는 중이다. 지방 중소 건설사뿐 아니라 대형 건설사까지 경영난에 허덕인다. 건설 업계가 절체절명 위기에 빠졌지만 모든 건설사가 움츠러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는 곳도 적잖다. 대표적인 곳이 김덕영 회장(70)이 이끄는 보미건설이다.
보미건설은 주거시설, 오피스, 병원, 상업시설뿐 아니라 물류센터, 시니어타운 등 신사업에도 뛰어들면서 시공능력 100위 내 건설사로 올라섰다. 최근에는 케냐, 베트남, 라오스 등 아프리카,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면서 ‘K건설’ 대표 주자로 떠오르는 중이다.
김덕영 회장은 인하대를 졸업하고 대우건설에서 7년 6개월간 근무한 뒤 1988년 회사를 설립해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30년 넘게 건설 분야 외길을 걸으며 보미건설을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지난 3월 25일 서울 성북구 보미건설 사옥에서 김덕영 회장을 만나 경영 스토리를 들어봤다.

Q. 아프리카 케냐국립과학기술원 캠퍼스를 시공해 화제입니다.
A. 케냐국립과학기술원은 저희로선 의미가 큰 현장입니다. 한국과 케냐 정부 간 협력 과정에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사업으로 진행했는데요. 개발도상국 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격이죠.
현재 케냐국립과학기술원 캠퍼스 내 첨단 연구시설과 강의동, 실험실을 조성 중입니다. 현지 기후, 지형을 고려한 친환경 설계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케냐 최초로 초고성능콘크리트(UHPC)를 도입해 악천후를 막는 차양 시스템을 시공했는데요. 인력 확보가 쉽지 않았는데 현지 건설 인력을 대거 채용한 후 기술 교육을 철저히 진행했습니다.
케냐 정부도 워낙 기대가 크다 보니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이 지난해 말 공사 현장을 찾아 기념식수를 하기도 했죠. 올 초에는 기니비사우라는 서아프리카 국가의 우마로 시로코 엠발로 대통령까지 방문할 정도로 주변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주목하는 사업입니다. 케냐국립과학기술원이 완공되면 케냐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과학 인재를 배출하는 산실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동안 대형 건설사들이 아프리카에서 발전소, 도로 같은 인프라 공사를 많이 했지만, 저희는 케냐국립과학기술원 건설로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힘을 보탠다는 점에서 차별화했죠.
Q. 케냐 외에도 해외 사업지가 꽤 많습니다.
A.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명언을 남겼죠. 대형 건설사처럼 대규모 투자 사업은 쉽지 않지만, 공적개발원조 사업을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해외 시장을 뚫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2007년 베트남 국립병원 공사를 필두로 2016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사업을 펼쳐왔습니다. 몽골에서는 국립의료원을 건설했고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에도 법인을 설립해 다양한 사업 기회를 모색했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는 5000만달러 이상을 투자해 토지를 직접 매입한 뒤 ‘보미파이낸셜센터(BFC)’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말에는 타슈켄트시와 손잡고 도시개발 협력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주거 단지·상업 공간 개발뿐 아니라 도로·교통 시스템 현대화를 위한 인프라 개선 사업도 추진 중입니다. 최근에는 라오스 국립병원 건설도 진행해 동남아시아 주요국에 보미건설 깃발을 꽂고 있습니다.
Q. 해외 시장에 뛰어드는 건 그만큼 국내에서 다양한 시공 경험을 쌓은 덕분인지요.
A. 제 전공이 건축공학인데, 건설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무작정 사업 규모만 키우기보다는 건축물 하나를 짓더라도 제대로 지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해왔습니다. 사업 종류도 가리지 않았죠. 저희는 다른 건설사처럼 아파트만 짓지 않습니다. 주거시설뿐 아니라 병원, 물류창고, 시니어타운 사업도 속도를 내는 중입니다. 지난해 쿠팡에서 발주한 울산, 충북 제천 물류센터를 연이어 수주했고요. 400여개 병상을 갖춘 경기도 안양 샘병원, 신한라이프가 추진해온 하남요양시설 사업도 따냈습니다.
Q. 소위 잘나가는 회사원이었는데 창업에 뛰어든 배경이 궁금합니다.
A. 1983년 당시 대우건설에 다니고 있었는데요. 나이지리아 와리 석유정제 플랜트 공사 책임자로 일할 때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보통 과장 이상 직급이 공구 책임자를 맡는데, 이례적으로 사원 신분이었던 제가 공구를 총괄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제가 책임진 공구가 다른 공구보다 우수한 성과를 내면서 보람이 컸습니다. 덕분에 제 스스로도 얼마든지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겠다 싶어 창업을 결심했죠.
Q. 매출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매출을 줄이자’는 경영 철학이 독특합니다.
A. 38여년간 건설업을 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건설업은 양만 늘려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매출을 줄이더라도 품질 좋은 건물을 제대로 지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스위스에 빅토리녹스라는 업체가 있습니다. 이름이 생소하지만 ‘맥가이버칼’을 만드는 회사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회사 1년 매출이 300억원도 채 안 됩니다. 맥가이버칼은 일찌감치 세계 시장을 평정했지만 빅토리녹스가 양적인 성장에만 치중했다면 결코 맥가이버칼을 세계적인 제품으로 키워내지 못했을 겁니다.
보미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1988년 창업 이후 보미건설이 추구하는 가치에 ‘양적 성장’ ‘매출 증대’는 없었습니다. 대신 경영 이념을 ‘전문가다운 집중력 있는 회사를 만들자’로 정했습니다. 속도를 내서 급하게 가는 것보다 천천히, 멀리, 그리고 오래가는 것이 중요한 거죠.
네팔 산악인인 셀파의 보폭은 일반 사람들의 절반이지만 훨씬 빨리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저희도 급하게 가기보다는 멀리 보고 천천히 가면서, 지치지 않고 나아갈 생각입니다. 보미건설을 ‘매출은 적더라도 건물은 참 잘 짓는 회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꿈입니다. 품질 1등이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해, 질적으로 성장하는 건설사를 만들 겁니다.
Q. ‘100년 기업’이라는 경영 목표도 눈길을 끄네요.
A. 최근 서울 노량진 유한양행 100주년 기념관 리노베이션 사업을 수주했습니다. 10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처럼 보미건설도 어느덧 100년 역사를 맞는 기업으로 도약시키고 싶습니다.
오래가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선 임직원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직원을 뽑을 때 ‘건설업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지부터 체크합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기업 평판이나 네임밸류만 보고 지원하는 이가 많거든요. 회사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업에 재미를 느끼면서 몰입하는 직원들이 모인다면 건설업 불황 속에서도 얼마든지 100년 가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3호 (2025.04.02~2025.04.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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