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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구 품절 행렬…어른은 ‘하츄핑’에 눈물 ‘핑’ [경영전략노트]

명순영 기자
입력 : 
2025-03-28 13:07:25
수정 : 
2025-04-04 08: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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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아기상어 이은 초통령 티니핑

‘오로라핑 캐슬하우스’가 뭔지 아시는지.

이 용어에 익숙한 이는 십중팔구 어린 자녀나 조카를 둔 어른일 가능성이 높다. ‘오로라핑 캐슬하우스’는 인기 유아·아동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 시리즈의 장난감이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 대대적인 품절 사태를 겪었다. 주문 폭주로 매장에서는 1회 최대 2개까지만 사도록 제한까지 뒀다. 정가 5만원인 제품은 중고 거래 시장에서 최고 20만원까지 뛰었다. 지역 맘카페에는 ‘재고가 있는 매장을 아느냐’는 글이 잇따랐고, 일부 소비자는 완구점마다 전화를 돌리며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티니핑 열풍은 2020년 3월 방영을 시작한 여자아이를 위한 요정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 시리즈가 출발점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외계 행성 ‘이모션 왕국’에서 온 소녀 ‘로미’가 지구에서 마음의 요정 ‘티니핑’을 찾으러 다니는 내용이다. 티니핑은 감정에 따라 여러 캐릭터가 있다. 용기 있는 ‘아자핑’ 부끄럼 많은 ‘부끄핑’, 자기애 많은 ‘나르핑’ 등이다. 이 캐릭터는 5년 동안 100여개가 넘게 등장하며 ‘무한 확산’ 중이다.

단순한 스토리지만, 이 마법의 요정은 뽀로로와 아기상어의 뒤를 이어 어린이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티니핑은 9살 이하 어린이가 뽑은 인기 순위 1위(한국콘텐츠진흥원 2024년 산업백서)로 올라서며 ‘초통령’ 지위를 얻었다.

제작사 실적도 좋아졌다. 에스에이엠지엔터테인먼트(이하 SAMG엔터)는 지난해 4분기 90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단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1164억원으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연결 기준).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61억원이었는데 전년 대비 35% 손실폭을 줄였다. 지난해 4분기 흑자가 반영된 결과다.

주가도 크게 뛰었다. SAMG엔터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1만2000원대에서 3만원까지 2배 이상 올랐다. 업계에서는 SAMG엔터의 성공 비결로 CEO의 전문성, IP(지식재산권)를 이용한 원소스 멀티유스(OSMU), 어른까지 포용하는 콘텐츠 등을 꼽는다.

김수훈 SAMG엔터 대표 (쇼박스 제공)
김수훈 SAMG엔터 대표 (쇼박스 제공)

1. K애니메이션 1세대 CEO

전기공학 때려치고 3D 캐릭터 개척

‘티니핑의 아빠’ 김수훈 SAMG엔터 대표는 K애니메이션 1세대 개척자다. 어린이 캐릭터를 감안해 아빠 이미지를 떠올리겠지만 의외로(?) 미혼의 50대 남자다. 부산의 한 대학 전기공학과에 입학한 김 대표에게 인생 정답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당시 전기공학과는 취업률 90%가 넘는 인기 학과였지만 공학이 맞지 않았던 그는 졸업장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생활 전선에 뛰어든 그에게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신이 내린 기회였다. 준비위원회에서 6개월간 온라인 홍보 ‘알바’를 맡아 인터넷 홈페이지나 영화제 소개 영상 등을 만들었다. 이때 그는 그래픽이 내 길이라고 생각했고 홀로 실력을 키웠다. 쥬라기 공원을 보면서는 저걸 만들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3D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SGI가 만든 1억~2억원 상당의 워크스테이션이 있어야 했다. 25살 김 대표는 워크스테이션이 있는 서울 강남의 학원에 다니기 위해 상경했다. 당시 한 달 학원비만 50만원이었다. 그는 용산에서 컴퓨터 조립으로 60만원을 벌었고, 그 돈으로 학원을 다녔다. 학원 강사보다 더 실력이 좋았던 그는 1997년 용산에서 일하며 알게 된 IBM 지인과 ‘아바쿠스소프트’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수동적으로 공부하기보다 현장에서 부딪혀 보자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혹독하게 겪고 사업은 망했다. 이듬해인 1998년 한국·미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 최초의 풀 3D 영화 ‘쎌마’를 기획하기도 했지만 자금 문제로 3개월 만에 실패했다. 돈을 끌어올 대학 선후배·동기동창이 없었던 그에게 투자 유치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공동 창업에서 어려움을 겪은 그는 아예 홀로서기에 나섰다. 2000년 7월 직원 6명으로 삼지애니메이션을 설립했다. 삼지(3G)는 글로벌(Global), 그래픽(Graphic), 그룹(Group)을 뜻한다. 설립 1년이 조금 지난 2001년 10월, 김 대표는 디지털콘텐츠대상 정통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김 대표는 ‘학력보다 실력’이라는 믿음 아래 캐릭터를 계속 개발해왔다. 첫 작품은 2006년 선보인 ‘오드패밀리(Odd Family)’다. 국내 최초로 프랑스 업체와 합작해 제작한 이 작품은 철저하게 해외 진출용으로 기획됐다. 제작비 80여억원에 제작 기간도 2년 반이나 되는 큰 프로젝트였다. 프랑스 언론 재벌 ‘라가드르’그룹의 티문 애니메이션과 같이 만들었고 프랑스 최대 민영 방송인 TF1에 방영됐다. 당연히 전체 포맷이나 캐릭터, 스토리도 해외 기준에 맞춰졌다. 한류 등 대부분 문화 산업은 국내 검증을 거친 다음 다른 나라로 진출하는데 ‘삼지’는 역으로 세계 시장에 먼저 도전했다. 이후 미니특공대, 메탈카드봇 등 인기 캐릭터를 개발하기도 했지만, 뜨지 못하고 실패한 프로젝트가 부지기수였다. 김 대표의 계속된 실패와 도전의 역사 속에 2020년 ‘잭팟 캐릭터’ 티니핑이 탄생했다.

티니핑 캐릭터.
티니핑 캐릭터.
사진설명

2. IP를 완구로…원소스 멀티유스

완구 자체 제작하며 수익성 높여

SAMG엔터의 최대 강점은 콘텐츠와 MD(머천다이징) 제품을 모두 만든다는 데 있다. 기존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뽀로로’나 ‘아기상어’처럼 IP가 성공하면 완구나 키즈카페 등에 IP를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는 데 그쳤다. 또는 손오공이나 영실업처럼 IP를 외부에서 조달해 사업화와 유통에 집중해왔다.

SAMG엔터는 애니메이션 기획·제작부터 자체 완구 기획팀 구성, 공연 제작, 자사몰 운영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수익 기반을 다졌다. 콘텐츠 제작과 사업화 역량을 토대로 흥행 IP를 활용한 OSMU 전략이 주효했다. 잠깐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다가 금세 잊힌 다른 아동 애니메이션 업체와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이유다.

물론 콘텐츠 경쟁력이 뛰어나다. 김 대표가 이끄는 SAMG엔터는 국내 회사 중 3D 콘텐츠 제작 경험이 가장 많고 품질은 국내 최고로 인정받는다. 또한 최대 규모의 자체 IP 라이브러리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유아·아동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콘텐츠 다수가 SAMG엔터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표작으로는 ‘캐치! 티니핑’ 이외 ‘미니특공대’ ‘메탈카드봇’ ‘레이디버그’ 등이 있다.

‘캐치! 티니핑’은 SAMG엔터를 국내 콘텐츠 최강자 자리에 올려놓은 IP다. 기존 마법소녀물 장르에 ‘수집형’이라는 요소를 담은 게 특징이다. 애니메이션 시즌이 새로 나올 때마다 새로운 ‘티니핑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고객이 새로운 캐릭터를 계속 수집하게 만들어 흥미를 유지시키는 전략이다. 아이들이 다양한 캐릭터 완구를 계속 사달라고 하는 탓에 부모들은 지갑을 거덜낸다는 뜻의 ‘파산핑’이라는 ‘웃픈’ 별명으로 부른다.

‘미니특공대’는 2014년 선보인 작품이다. 현재 국내 남아 콘텐츠 시장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기 IP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상당하고, 중국 남아 콘텐츠 시장에서는 1위 IP다.

‘메탈카드봇’은 SAMG엔터가 미니특공대 이후 약 10년 만에 선보인 액션물이다. 10년 가까이 신작이 나오지 않던 남아 콘텐츠 시장을 겨냥해 만들었다. ‘레이디버그’는 해외 회사와 합작해 만든 콘텐츠다. 프랑스 자그툰과 메소드애니메이션, 일본 토에이애니메이션과 공동 제작했다. 유럽과 중남미 지역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SAMG엔터의 이름을 글로벌 시장에 처음 각인시킨 작품이다.

3. 어른도 ‘입덕’하는 애니

타깃 연령층 확대로 성장성 ‘쑥’

‘야근핑’ ‘버럭핑’ ‘눈물핑’.

티니핑을 패러디한 단어들은 어른 사이에서 즐겨 사용된다. 야근에 찌든 직장인, 늘상 화를 내는 상사, 작은 일에도 감동받고 눈물을 흘리는 직원 등을 일컫는 말이다. ‘접미사’처럼 ‘핑’을 붙이는 게 MZ세대에게도 유행이 됐을 정도다. 이런 트렌드는 티니핑 인기가 어린이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성공하려면 어른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티니핑이 이에 맞는 사례로 꼽힌다. 어른까지 포용하는 콘텐츠로 발돋움한 기점은 지난해 3분기 선보인 영화 ‘사랑의 하츄핑’이다.

‘캐치! 티니핑’ 시리즈의 프리퀄(배경 이야기)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사랑의 하츄핑’은 123만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2위의 대흥행이다. 물론 어린이가 주요 관객이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어린이를 따라 영화를 봤던 어른들도 눈물을 훔치고 티니핑에 ‘입덕’했다는 뒷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조카 보여주러 갔다가 내가 울고 옴’ ‘하츄핑 보고 아빠 오열함’ 등의 후기 등이 쏟아졌다. “내가 울까 봐 영화를 못 보겠다”는 한 영화평론가에는 ‘비겁핑’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사랑의 하츄핑’은 어른도 공감할 만한 감정인 첫사랑, 우정,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 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영화 스토리에 녹여냈다. 서양보다는 아시아 정서에 맞는, 내 친구 같은 마법 요정 캐릭터를 만들려는 노력도 통했다. 영화 ‘사랑의 하츄핑’은 넷플릭스에서도 흥행을 거둬 한때 영화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판타지 뮤지컬 ‘사랑의 하츄핑’ 역시 서울 초연 좌석 점유율 약 80%를 기록했을 만큼 세대를 아울러 인기를 끌었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성공은 세대 확장을 거쳐 가족물로 만드는 것”이라는 김 대표의 말처럼, SAMG엔터가 어른도 즐기는 디즈니 모델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하반기 ‘사랑의 하츄핑’에 이은 후속 영화를 개봉하고 40대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거대 로봇 실사판 드라마도 준비 중이다.

사진설명

4. IP 협업 확대…해외 호평

화장품 브랜드, 연예기획사 ‘러브콜’

“4~7세 기존 타깃과 10대,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자)를 아우르는 슈퍼 IP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3월 SAMG엔터가 주총에서 스스로를 평가한 말이다. 어른까지 시장을 넓히며 라이선스 협업 기업 규모가 커졌고 숫자도 크게 늘어났다. 어린이를 자녀로 둔 부모 세대 외, 2030 싱글 여성 팬들이 ‘하츄핑 굿즈(기념품)’를 많이 구매한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지난해에도 MD 제품 판매를 유지하며 라이선스를 집중하는 방식으로 수익구조를 개편해 실적이 좋아졌다. 전년 대비 상품(9억원 → 4억원)과 콘텐츠 제작(33억원 → 16억원) 매출은 줄었지만, 라이선스 매출은 112억원에서 212억원으로, 제품 매출은 773억원에서 894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라이선스 체결 계약도 지난해 127건으로, 전년(77건)보다 65% 늘었다.

다른 업계와의 IP 협업도 강화했다. 이디야커피, 맘스터치, 메가커피, 뚜레쥬르, 삼천리자전거, 웅진식품 등의 기업과 손을 잡았다. 최근엔 타깃층 확대를 위해 화장품 브랜드 클리오의 자연주의 스킨케어 라인인 ‘구달’과 함께 한정판 에디션을 선보였다. 또한 SM엔터테인먼트 신인 걸그룹 하츠투하츠와 협업을 추진한다.

SAMG엔터는 앞으로도 타깃층 확장과 라이선스 강화로 승부를 걸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주지은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티니핑 IP 대상 연령층을 확장하고, 중장기적으로 K팝과 게임과의 협업하는 전략을 택했다”며 “티니핑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면서 수익성을 높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외 매출 성장세도 가파르다. 2024년 연간 해외 매출액은 254억원으로 전년 대비 43% 이상 올랐다. ‘캐치! 티니핑’ 시리즈의 중국 진출 이후 해외 매출액은 매년 70억원 이상 꾸준히 증가했다. 사랑의 하츄핑은 중국에서 개봉했고, 일본에서는 지난해 1200개 매장에 티니핑 완구를 선보였다. 또한 TV 시리즈인 캐치 티니핑을 일본 지상파 채널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노출시켰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3호 (2025.04.02~2025.04.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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