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로5가역 7번 출구 인근 광장시장 동문. 찬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시장 입구부터 남녀노소 불문, 인파로 북적인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등 총천연색 간판 색깔에서 활기가 느껴진다. 곳곳에서 중국어·일본어·영어가 들린다. 한 외국인이 닭강정 가게 사장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한 후 외투 주머니에서 5만원권을 꺼내 내미는 풍경이 이 동네 상인에겐 일상이 됐다.
왁자지껄한 시장통을 뚫고 지나가는데 길 중간에 주변 색감과는 다른 핑크색 상점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오리지널 수제 츄러스샵’이라고 적혀 있다.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에서 볼 법한 추로스 가게 앞에 외국인과 젊은 층 손님이 줄을 잇는다. 이 팝업스토어는 대구 서구 유명 추로스 맛집 ‘로비로비’가 운영한다. 지난해 12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 초대받아 열었던 팝업이 화제가 되면서 광장시장에도 초청 받았다는 후문이다.
‘오리지널 시나몬 츄러스’ 2개를 5000원에 구매하자 직원이 ‘121’이라고 적힌 번호표를 준다. 그만큼 이전에 구매한 사람이 많다는 방증. 한 뼘 길이 추로스 2개가 곧장 튀김기에 빠진다. 잠시 후 설탕 옷을 입은 추로스를 한입 베어 무니 찹쌀떡처럼 쫀득하다. 김두호 로비로비 매니저는 “하루 7시간 팝업이 열리는데 추로스 500여개가 팔렸다”며 “구매 고객의 60% 정도는 외국인이고 젊은 세대 손님 반응도 뜨거웠다”고 들려줬다.
광장시장이 ‘팝업스토어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근래 몇 년간 광장시장에서 제주맥주, 용용선생, 오리온 등 다양한 브랜드의 팝업이 성황리에 이어지며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광장시장이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이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평가다.

광장시장에 어떤 팝업이?
2025년에도 팝업은 계속~
광장시장의 팝업 역사는 수제맥주 기업 제주맥주가 열었다. 2023년 5월 광장시장에서 열린 ‘제주위트 시장-바’는 ‘재래시장과 협업 우수 사례’로 주목받았다. 제주맥주는 광장시장 대표 가게 중 하나인 ‘박가네 빈대떡’과 힘을 합쳐 ‘제주 위트 에일’과 꼬치안주를 세트로 팔았다. 당시 팝업은 금세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 줄이 건물 계단까지 이어졌다. 25일 동안 결제 건수는 1만건이 넘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다음엔 프랜차이즈 음식점 ‘용용선생’이 팝업에 도전했다. ‘마라’에 빠진 MZ세대가 ‘마라떡볶이’ ‘마라왕교자’ ‘꼬량주하이볼’을 맛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하루 최대 매출 80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결실을 거뒀다. 그러자 맛집 팝업이 줄을 이었다. 한남동 맛집 ‘방울과꼬막’의 굴아저씨 팝업은 석화와 화이트와인 메뉴가 인기를 끌면서 2시간 넘는 대기 줄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대기업도 참전했다. 오리온은 지난해 8월 ‘알맹이네 과일가게’를 열어 국내 고객은 물론 해외 고객 발길도 끌어들였다. 흥행 비결은 ‘시식 전략’. 과일가게가 시식으로 호객하듯 알맹이네 과일가게에서도 포도, 자두, 키위 등 젤리 시식이 가능했다. 100인분의 시식용 젤리가 오픈 1시간 만에 동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외국인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면서 해외에서도 유명해졌다. 이런 성과 덕에 오리온은 올해도 광장시장 팝업을 하기로 했다. 2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팝업은 기존 젤리 종류를 5개에서 8개로 늘리는 등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팝업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2월 말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진우범 셰프(신당동의 멕시코 음식점 ‘라까예’ 운영)가 타코 기반에 광장시장 특성에 맞춘 메뉴를 선보이는가 하면 3월 말에는 ‘전국김밥일주’의 저자 정다현 김밥큐레이터가 참여하는 김밥 팝업이 예정돼 있다.
‘광장 팝업’ 왜 인기?
기업 입장에선 ‘테스트 마켓’ 활용
광장시장은 왜 팝업에 공들일까.
그 배경엔 광장시장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 상인회 입장에서 광장시장이 오래가려면 새로운 고객이 지속적으로 유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팝업 사업 모델로 현실화한 이가 추상미 321플랫폼 대표다. 추귀성 광장시장상인회장의 딸이면서 광장시장 터줏대감 ‘박가네 빈대떡’의 3대 사장이기도 한 그는 본인 가게를 넘어 광장시장 문화 전반을 개선하기 위해 321플랫폼을 설립했다. 추 대표는 광장시장 내 브랜드와 상품이 다양하지 않다는 데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가 진단하기에 광장시장에서 접할 수 있는 먹거리는 빈대떡, 칼국수, 꼬마김밥 등으로 메뉴가 획일화돼 있다. 추 대표는 시장 상품을 다양화해 젊은이가 많이 찾고 있는 신당중앙시장과 망원시장을 참고해 상시 팝업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기획했고 오늘에 이른다.
이 같은 전략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외부 기업, 맛집 등이 광장시장을 테스트 마켓과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미래 주력 고객이 될 수 있는 1020세대 방문객을 늘렸다는 사실이다. 10대와 20대가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광장시장 팝업’을 검색하면 MZ세대 후기만 수백 개가 올라와 있다.
팝업 참여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 진출 가능성도 타진할 수 있다. 광장시장에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외국인 관광객은 1510만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1% 증가했다.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한국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은 바로 ‘로컬 체험’이다. 광장시장이 이 같은 로컬 체험과 딱 들어맞는다는 점에서 외국인과 광장시장 이해가 일치했다.
추상미 대표는 “소셜미디어를 검색해보면 K드라마 등 한국 관련 콘텐츠에서 봤던 김밥이나 떡볶이 등을 광장시장에서 즐길 수 있다는 포스팅이 계속 올라온다”며 “이런 식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외국인 방문객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반응도 나쁘지 않다. 일본에서 왔다는 아오키 씨(56)는 “평소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데 꼭 한번 ‘노포’ 같은 곳에서 체험해보고 싶었다”며 “특히 광장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데다 다양한 한국 길거리 음식은 물론 팝업 등 트렌디한 공간 체험도 해볼 수 있어서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방문했다”고 말했다.
오후석 321플랫폼 운영기획총괄(COO)은 “팝업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국가, 성별, 연령대가 어떤 메뉴, 상품을 좋아하는지 현장에서 비교 분석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차후 상품 기획, 해외 진출 전략을 짜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그래서인지 올해 팝업에는 농심, 파파이스 등 식품, 유명 맛집 외에도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참여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광장 팝업, ‘상생 발전’이 핵심
“합리적인 가격 설정도 중요”
광장시장 팝업은 계속 흥행 가도를 이어갈까.
전문가들은 ‘상생 발전’ 여부가 중요한 변수라고 입을 모은다. 전통시장의 매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요소를 더하는 시도가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추 대표는 협업 브랜드에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시장에 어울리는 메뉴를 새로 개발할 것’ 둘째, ‘광장시장에서 파는 메뉴와 겹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4월 광장시장에서 열린 삼각지역 쌀국수 맛집 ‘효뜨’의 팝업스토어가 대표 사례다. 일단 쌀국수는 시장에 없는 먹거리라 기존 시장 생태계를 해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효뜨는 시장이라는 특수성을 살린 ‘소고기뭇국 쌀국수’를 개발했다. 세심한 브랜드 선정과 참신한 메뉴 개발은 광장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광장시장은 성수동과 달리 살아 숨 쉬는 다채로운 장면과 전통적 매력을 가진 공간으로 이곳에서 열리는 팝업은 시장의 독특함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지나친 상업화는 오히려 광장시장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어 전통시장의 본래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변화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팝업스토어도 ‘스토어’인 만큼 시장 환경에 맞는 가격대, 차별화한 제품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8월에 열린 예능 프로 ‘나는 SOLO’ 팝업스토어는 “굿즈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오히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와인 한 병에 15만원, ‘나는 솔로’라는 로고가 박힌 신발은 12만5000원대를 책정했는데 광장시장 고객군과는 맞지 않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오 COO는 “광장시장에서 기대하는 상품 가격과 백화점에서 기대하는 상품가는 다르다”며 “시장임을 감안하고 상품이나 가격 책정을 해야 윈윈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전통시장, 문화 소비 일어나는 복합 공간 될 것”
모종린 교수는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린다. 그는 전국 곳곳을 다니며 골목길 상권 지도를 완성할 만큼 소상공인·로컬 브랜드 전문가다. 골목상권을 둘러싼 경제 현상을 설명한 책 ‘골목길 자본론’과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등을 썼다. 모 교수는 광장시장의 팝업스토어가 전통시장이 단순한 상거래 공간을 넘어 현대적 ‘문화 미디어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Q. 광장시장 팝업 운영이 전통시장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하는지.
A. 그렇다. 전통시장 혁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점진적 혁신’과 ‘상생적 발전’ 방식이다. 팝업스토어가 기존 상인들과의 협의를 통해 품목 중복을 피하고, 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메뉴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모범적이다. 또한 제주맥주, 용용선생 등 브랜드들이 전통시장 특성에 맞춰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과정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Q. 비슷한 사례가 국내외에서 있었는지 궁금하다.
A. 런던의 보로 마켓이 대표적이다. 1000년 역사의 전통시장이 현대적 팝업스토어와 이벤트를 접목해 글로벌 명소로 거듭났다. 국내에서는 통인시장 도시락 카페가 전통시장 현대화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사례는 시장 고객층을 다양화하고, 전통시장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며, 지역 상권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광장시장 사례는 전통시장이 단순한 상거래 공간을 넘어 브랜드 경험과 문화 소비가 일어나는 복합 공간으로의 진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각 시장만의 고유한 특성과 스토리를 살리면서 현대적 요소를 접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교훈도 제공한다.
Q. 광장시장 팝업이 지속 성공하려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지.
A.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시장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정하는 것. 둘째, 기존 상인들과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고 상호 보완적인 품목을 구성하는 것. 셋째,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과 콘텐츠를 설계하는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효과적인 마케팅 역시 필수다. 이를 위해선 새로운 브랜드와 콘텐츠를 지속해서 발굴하고 도입하는 혁신적 태도가 요구된다.
Q. 정책적이나 구조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보는지.
A.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관련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과 연계한 기본 시설 개선도 중요하다. 상인과 브랜드,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통합 플랫폼을 개발하고, 온라인 마케팅과 디지털 결제 시스템 도입을 지원하는 것도 필수다. 이와 함께 청년 상인 육성과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연계해 시장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지원은 단순한 재정적 지원을 넘어 전통시장의 자생적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박수호·조동현 기자, 정혜승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5호 (2025.02.05~2025.02.1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