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 1호선 제기동역 2번 출구를 나와 5분 정도 걷다 보면, 서울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 ‘경동시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겉에서 보이는 모습은 일반적인 재래시장과 똑같다. 낡은 건물과 길에 가득 들어찬 고령의 손님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안쪽으로 움직여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허름한 간판이 무색하게, 가게 곳곳이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다. 대학교 점퍼를 입고 돌아다니는 20대 대학생부터 데이트를 나온 30대 손님까지 저마다 시장 구경에 한창이다. 경동시장에서 찹쌀 꽈배기 판매점 ‘40년전통그시절그맛’을 운영하는 A씨는 “젊은 사람이 진짜 많아졌다. 홍석천과 유튜버들이 다녀간 뒤로 완전히 변했다”며 “광장(시장) 손님이 다 여기 왔다”고 말했다.
경동시장 골목에서 청량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또 다른 대형 시장인 ‘청량리종합시장’이 나타난다. 시장 골목은 각종 인파로 붐빈다. 인근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말 평일 가리지 않고 손님들로 붐빈다. 장을 보는 주부뿐 아니라 유튜브를 보고 몰린 젊은이까지 몰려 가게들 앞은 대기하는 인원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과일 가게 ‘태영상회’를 운영하는 B씨는 “최근 젊은이들이 성시경 유튜브를 보고 술을 마시러 왔다가 (과일을) 사러 오는 것 같다”며 “특히 최근 20대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인들의 홍대’ ‘어르신들만 가는 곳’이라 불리며 낙후된 이미지가 강하던 경동시장이 급변한다. 젊은 세대가 앞다퉈 찾는 ‘힙’한 상권으로 변모 중이다. ‘남원통닭’ ‘황해도순대’ 등 SNS상에 이름을 알린 맛집들은 대기 줄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단순히 일부 맛집만 활황을 띠는 게 아니다. 시장 전체가 사람으로 넘쳐난다. SNS 맛집을 찾으러 왔다 저렴한 시장 물가에 반해 시장 곳곳에서 물건을 사는 젊은이가 적잖다. 바가지 물가, 불친절한 응대로 비판받는 다른 전통시장과 전혀 다른 모습에 경동시장을 향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
가성비로 ‘MZ세대’ 사로잡다
경동시장은 역사가 꽤 깊다. 1960년, 전국 각지에서 청량리역으로 모인 한약재 상인들이 모이면서 생겨났다. 이름의 뜻은 서울의 동쪽에 있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경동시장은 서울 전통시장 중 면적이 가장 넓은 시장이다. 동대문구 제기동역에서 청량리역 일대까지 폭넓게 형성돼 있다. 일반적으로 제기동역 인근의 서울약령시부터 경동시장, 광성상가, 청량리종합시장, 청량리전통시장, 청과물시장까지 ‘경동시장’ 상권으로 분류한다.
서울약령시는 말 그대로 한약재 취급에 특화된 시장이다. 국내 한약재 거래량의 70%를 점유하는 국내 최대 한약재 전문시장이다. 본래는 경동시장의 일부였으나, 약령시 규모가 커지면서 별도 시장으로 분리됐다. 한약재만 취급하는 탓에 주요 고객은 고연령층이다. 다만, 최근 동대문구청에서 지은 한방진흥센터가 인기를 끌면서 젊은 고객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약령시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 경동시장과 광성상가가 등장한다. 경동시장 상권의 ‘핵심’ 지역이다. 야채, 과일, 수산물, 농산물 등을 종합 취급하는 종합재래시장이다. 40년 넘은 역사의 맛집 ‘경동함흥냉면’ ‘안동집 손칼국시’ 등이 유명하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카페 ‘스타벅스 경동1960점’과 LG전자 체험센터 ‘금성전파사’도 경동시장 안에 있다.
경동시장 동쪽으로 나가면 ‘청량리종합시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종합시장을 지나면 청량리전통시장, 농수산물시장, 먹거리 골목 등이 계속 이어진다. 이 시장을 한 번에 묶어 ‘청량리시장’으로 부른다. 지난해부터 유튜브를 중심으로 유명세를 탄 식당들은 모두 청량리시장 일대에 몰려 있다. 최근 들어 젊은 고객을 가장 많이 끌어모으는 곳이다. 압도적으로 싼 가격으로 SNS에서 ‘핫플’로 떠오른 ‘황해도순대’, ‘짱구네 야끼만두’ ‘남원통닭’이 모두 청량리시장 쪽에 위치한다. 실제로 맛집 추천 서비스를 운영하는 푸드테크 기업 식신이 최근 3개월 내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청량리종합시장 안 식당들의 검색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식신 관계자는 “최근 유튜브에 경동시장 맛집들이 소개되면서 경동시장 맛집을 찾는 검색량이 많아졌다. 황해도순대, 짱구네 야끼만두, 기태만두 등 가성비가 좋은 맛집들 인기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경동시장 일대 상권 성장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 서비스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4분기 경동시장, 광성상가, 청량리종합시장의 점포당 월평균 매출은 각각 1억1449만원, 1억9398만원, 3억5600만원에 달했다. 2022년 4분기 대비 2285만원, 3715만원, 4561만원 증가했다. 유동인구 수도 상당하다. 소상공인 상권분석시스템에 따르면, 각 시장별 일일 평균 유동인구는 서울 약령시 2만5490명, 경동시장 2만1988명, 광성상가 1176명, 청량리종합시장 1545명 수준이다.
약 5만명에 달하는 유동인구가 경동시장 상권 일대에 몰리는 셈이다. 최근 외국인 방문객의 증가로 인기를 끄는 종로 광장시장(2만8558명)의 2배에 달한다.

경동시장 어떻게 ‘핫플’로 떠올랐나
대기업 손잡고, SNS로 이미지 UP
사실, 경동시장은 서울의 대표적인 ‘낙후’ 상권 중 하나였다. 건물이 허름하고 낡은 데다, 즐길 거리가 없어 젊은 세대가 선호하지 않았다. 다 무너지던 낡은 시장이 ‘핫플’로 떠오른 이유로 현장 상인들은 3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대기업의 진출’이다. 현장에서 마주한 대다수 상인이 ‘스타벅스 경동1960점’과 ‘금성전파사’ 개점을 ‘반전의 계기’로 뽑았다. 스타벅스와 LG전자는 2022년 말 경동시장 상인회와 손잡고 시장 본관 3~4층에 ‘스타벅스 경동1960점’과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개장했다. 1962년 지어진 ‘경동극장’의 상영관·영사관, 매표소·매점을 탈바꿈한 공간이다. 버려져 있던 경동극장 리모델링 비용을 두 회사가 나눠서 부담하고, 각자 개성을 살린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은 ‘이익 공유형 매장’인 ‘커뮤니티 스토어 5호점’으로, 판매된 모든 품목당 300원을 적립해 경동시장 지역상생기금으로 쓰인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은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경동시장과 제기동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MZ세대 복고 감성을 자극해 인증사진을 찍는 ‘인스타 성지’로 떠올랐다. 오래된 영화관인 ‘경동극장’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전략이 통했다. 스타벅스는 243평 규모 공간에 레트로 느낌이 물씬 나도록 목조 설계를 유지했고, 200석 규모 좌석은 극장처럼 계단식으로 만들었다. 주문 고객의 음식과 음료가 준비됐음을 알리는 닉네임을 벽면에 영화 크레디트처럼 크게 걸어놓는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하루 평균 1000명 이상, 주말에는 2000명 이상 방문객이 찾는다. 특히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항상 사람이 붐벼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같은 건물 3층에 위치한 LG전자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는 방문 고객의 고민을 듣고, 스타일부터 마음을 ‘무엇이든 고쳐준다’는 콘셉트의 복합문화공간이자 팝업스토어다. 경동시장 옛 모습과 테마 영상을 상영하는 거대한 LG LED 사이니지로 채워놨다. 굿즈를 만들고 게임하는 등 젊은이들이 다양한 체험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6개 공간이 있다. 현장 혹은 온라인으로 회원가입을 하면 모든 체험은 무료다. 폐가전에서 추출한 재생 플라스틱으로 액세서리를 만들고 LG 슈케어를 체험하는 ‘스타일고침’ 코너, 1990년대를 풍미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분고침(금성오락실)’, 고민 가득한 방에서 힌트를 통해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탈출 게임장인 ‘고민탈출(ThinQ 방탈출)’ 등으로 구성됐다.
두 번째는 유튜브 열풍이다. 2030세대가 시청하는 유튜브에 경동시장이 소개되면서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떡볶퀸’ ‘성시경의 먹을텐데’ ‘홍석천 이원일의 천하일미’ 등 유튜버들이 다녀간 이후 젊은 고객이 급격히 늘었다는 설명이다. 떡볶이 전문 유튜브 채널 ‘떡볶퀸(구독자 53.8만명)’이 ‘황해도순대’에서 구매한 1.5㎏어치 모둠 순대 리뷰 영상은 조회 수 100만회를 훌쩍 넘었다. 순대 이외에도 떡볶퀸이 직접 구매하고 맛본 김밥, 도넛, 만두 등은 경동시장의 유명한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40년간 전통 꽈배기·찹쌀도넛을 팔아온 ‘40년전통그시절그맛’ 주인 A씨는 “떡볶퀸이 다녀간 후로 경동시장에 사람이 정말 많아졌다. 새로 일할 직원도 현재 구하고 있다”며 “주말에는 손님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라고 밝혔다. 이곳은 지난 1월 방송인 홍석천과 이원일이 방문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시장 골목 구석구석 숨겨진 맛집 골목은 ‘성시경 효과’를 보고 있다. 가수 성시경은 자신이 운영하는 맛집 유튜브 채널 ‘먹을텐데’에 경동시장 콘텐츠를 3차례나 올렸다. 통닭골목에 있는 ‘남원통닭’, 경동시장 신관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칼국숫집, 곱창·만두전골로 유명한 ‘대가전골’까지. 각 영상 조회 수는 3월 21일 기준 139만회, 163만회, 78만회에 달한다. 이미 맛집으로 알려진 곳들이지만 성시경 유튜브가 알려진 후 시장 곳곳에 숨겨진 맛집을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고.
셋째, 저렴한 가격이다. 일반적으로, 경동시장 상인들은 도매업을 같이 병행한다. 때문에 소매 판매만 진행하는 다른 가게에 비해 가격이 압도적으로 싸다. 가격 경쟁력만 따지면 유통 대기업의 슈퍼마트보다도 높다. 일례로 시장 입구에 위치한 정육점 ‘이천농장’의 3월 20일 기준 국내산 생삼겹살 가격은 한 근(600g) 1만1000원, 생목살은 한 근 8000원이다. 같은 날 기준 서울 대형마트 평균 국내산 생삼겹살 가격은 한 근 1만6740원이다. 대형마트와 비교했을 때 35%가량 저렴한 수준이다. 고물가 시대에도 워낙 저렴한 가격에 줄이 끊이지 않는다고. 다른 농산물 가격도 저렴하다. 최근 ‘금사과’로 불리는 사과는 청송 부사 큰 것 5개, 작은 것 7개에 1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형성됐다. 개당 4000~5000원에 팔리는 서울 대형마트보다 2~3배 이상 저렴한 셈이다. 경동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물가가 저렴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취급하는 물량이 많고 도매가로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이 싸다”고 답했다.

유동인구·배후인구 더 늘어나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 높아
상권 전문가들은 경동시장 상권이 더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교통이 편리해 유동인구 유입이 쉽고, 청량리 재개발로 인근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계속 들어서고 있어서다. 유동인구와 배후 단지를 모두 갖춰 잠재력이 높다는 설명이다.
가장 압도적인 강점은 교통의 편리성이다. 대중교통 접근성 자체가 다른 전통시장에 비해 매우 좋다. 인근 청량리역은 서울 지하철 1호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수인분당선 등 총 4개선이 지난다. 여기에 GTX 등을 합하면 2029년에는 총 11개 지하철과 철도 노선이 운행된다. 청량리역 광역환승센터도 완공을 앞둔 상태다.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은 “청량리 일대 유동인구가 현재의 3배 정도로 늘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배후인구는 신도시 상권 못지않게 탄탄하다. 우선 젊은 인구가 많다. 고려대,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성신여대, 한양대 등 여러 대학과 인접해 있다. 서울 동부 일대 대학 대다수가 경동시장 근처에 자리한다. 젊은 인구 유입이 쉬운 구조다.
최근 청량리 일대 재개발로 대형 아파트 단지가 연달아 들어섰다. 시장 근처 1000가구를 넘는 대단지 아파트만 한양수자인그라시엘(1152가구), 롯데캐슬SKY-L65(1425가구), 미주아파트(1089가구) 3곳에 달한다.
청량리7구역, 제기4구역, 전농9구역 등 시장 근처 단지의 재개발이 계속 진행될 예정이라 배후인구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2호 (2024.03.27~2024.04.02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