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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과 한 일을 트럼프가 모르게”...절묘한 ‘줄타기’ 외교 선보이는 이 나라 [신짜오 베트남]

홍장원 기자
입력 : 
2025-05-12 16:00:00
수정 : 
2025-05-17 14:07:05

뉴스 요약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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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최근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관세 인하 협상에도 나섰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은 러시아와의 전통적 관계도 유지하며 다층 외교 전략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 러시아를 방문해 양국 간 협력을 심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특히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러시아가 베트남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베트남의 외교적 입지가 더욱 강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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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또럼 베트남 국가주석. <VN익스프레스>
지난 10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또럼 베트남 국가주석. <VN익스프레스>

[신짜오 베트남 - 334] 베트남의 외교를 보고 있자면 줄타기를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로 한쪽 편만 들지는 않겠다는 각오로 기가 막히게 가운데 노선을 질주합니다.

사실 최근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매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2023년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과 함께 베트남과 미국은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습니다. 최고 외교 수준 단계까지 관계를 끌어올리며 베트남은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때도 베트남은 신속하게 대응했습니다.

당초 베트남에 매겨진 관세 세율은 46%였습니다. 세율이 공개되자 베트남 의전 서열 1위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통해서 저자세로 나갔습니다.

미국과 협정을 맺을 수 있다면 미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0%로 낮출 의향까지 있다면서 트럼프 비위를 맞추기에 들어갔습니다. 베트남 정부도 미국산 수입품 관세 인하를 약속하고, 베트남은 미국에서 더 많은 것을 수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베트남 정부 입장을 밝히며 “통화가 매우 생산적”이라며 만족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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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당시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이 일주일가량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시 주석은 베트남을 방문해 ‘미국의 고율 관세에 맞서 싸우자’는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었는데, 베트남이 트럼프와 이같은 통화를 하자 불쾌한 기색까지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뻔히 예상하는 베트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과 협상 모드로 나간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철저한 실리 외교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트럼프 집권하의 베트남은 철저히 미국 편만 드는 것일까요? 최근 행보를 보면 역시나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또럼 서기장은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8일부터 11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베트남과 러시아는 75년간의 외교 관계를 기반으로 정치, 국방, 경제, 에너지, 과학기술, 교육, 문화 등 다방면의 협력을 더욱 심화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양국 정상은 무엇보다 정례적인 고위급 대화 체계 구축과 국방·안보 분야 협력 강화에 뜻을 모았습니다.

다만, 공동성명은 “양국 간 국방·안보 협력은 결코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국제법과 유엔 헌장에 부합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미국 및 서방과의 외교 관계도 동시에 고려한 베트남 측의 균형 잡힌 입장으로 해석됩니다.

양국은 사이버 보안, 생물학적 안전, 사이버 범죄 대응 분야의 협력 확대에도 합의했습니다. 디지털 전환, AI(인공지능),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공동 연구와 인재 양성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러시아는 베트남 유학생들에게 더 많은 장학금과 연구 기회를 제공할 뜻도 밝혔습니다. 양국은 인적 교류 활성화를 위해 직항 항공편 증설과 비자 발급 절차 간소화를 추진하고, 관광 및 문화 교류 증진에도 힘쓰기로 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입니다. 러시아는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와 국제법에 기반한 평화적 분쟁 해결 원칙’을 지지하며 사실상 베트남 편을 들어줬습니다.

남중국해(베트남은 동해라고 부릅니다) 분쟁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 간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해상 영토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베트남, 필리핀을 필두로 한 동남아 국가들의 확고한 입장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러시아가 중국 편을 들지 않은 것은 그만큼 베트남이 러시아와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는 얘기입니다.

베트남은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에 대해 철저하게 ‘중립’을 외치며 의견 표출을 최소화했습니다. ‘내가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안 할 테니, 너도 남의 일에 철저히 중립을 지켜라’는 게 베트남의 속내일 것입니다.

이번 공동성명은 베트남의 전형적인 다층 외교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평가됩니다. 미국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심화하는 동시에,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전통적 우호 관계도 유지하며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노선입니다.

이번 또럼 서기장의 러시아 방문을 통해 베트남은 원전 카드를 얻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베트남은 안전성 등의 이유로 2016년 원전 건설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만성적인 전력 생산 부족에 직면해 최근 10년여 만에 사업을 재개하고, 러시아, 일본, 한국, 프랑스, 미국 등을 두루 접촉하며 원전 건설 파트너를 찾아왔습니다.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베트남 내 원자력 과학기술센터 건립과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협력 방안을 조속히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또 에너지 관련 협력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러시아는 베트남에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 러시아 원유 사용처가 제한되는 상황인데, 베트남이 이걸 싸게 들여와 경제 성장 원료로 삼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이걸 트집 잡고 베트남을 몰아붙이면 아마도 베트남은 이걸 지렛대로 삼아 뭐라도 얻어내려고 할 것입니다.

사회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지독히도 자본주의적인 베트남은 이런 식으로 협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가끔은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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