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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90세 운전자에 모녀 사망하자 부랴부랴...‘노인운전 천국’이 마련한 해법은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
입력 : 
2024-07-05 16:00:00
수정 : 
2024-07-07 20: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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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청역 참사 ◆
[한중일 톺아보기-136]
지난 1일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사고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국화꽃을 놓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사고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국화꽃을 놓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사고가 안긴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인도까지 폭주한 차량은 무려 9명의 귀중한 인명을 순식간에 앗아갔습니다. 차량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형적 급발진 사고와는 차이가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차량결함 때문인지 가속·브레이크 페달을 오인한 운전자 과실인지 아직 누구도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령자 운전’ 이슈도 불거졌습니다. 국내에서 고령 운전자 사고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국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만 65세 이상 운전자가 연루된 사고는 3년 연속 늘며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고령 인구 자체가 늘다보니 사고건수도 비례해 늘어나는 모습입니다.

한국은 내년이면 동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초고령사회’(고령 인구비중 20% 이상)에 진입 합니다. 하지만 고령운전 관련 대비책들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입니다. 때문에 고령화 수준을 고려해 선제적 대비책들이 사전에 좀 더 마련돼 있었더라면 이번 비극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탄식도 나옵니다.

차량에 부착해 고령자임을 알리는 일본의 고령자 마크. 1997년부터 도입됐다. [유튜브 캡처]
차량에 부착해 고령자임을 알리는 일본의 고령자 마크. 1997년부터 도입됐다. [유튜브 캡처]

인구의 약 3분의 1이 고령자인 ‘노인천국’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 답게 수십년 전 이미 고령운전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관련 제도도 등장했습니다.

예컨데, 다른 운전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고령 운전 차량에 부착하는 ‘실버마크’의 경우 1997년부터 도입중입니다. 현재 만 70세 이상 운전자는 차량에 해당 마크 부착이 ‘노력의무화’ 돼 있습니다. 2008년께 범칙금을 부과하는 등 부착을 법적으로 강제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여론의 반발로 유예된 상태 입니다. 국내에서도 5년전부터 몇몇 지자체 별로 ‘실버마크’ 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무가 아닌 것은 물론 디자인도 지자체별로 제각각이라 아무 효과 없는 구색맞추기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고령운전 관련 일본에서도 아직 획기적 해결책이 나온 건 아닙니다. 다만 한국에 앞서 오랜기간 문제를 겪어온 만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日 충격 빠뜨린 2019년 ‘이케부쿠로 사건’...제도정비 본격화 계기
아내와 딸을 잃은 남편 마츠나가 타쿠야씨가 사고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아내와 딸을 잃은 남편 마츠나가 타쿠야씨가 사고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돌연 잃고 눈물을 흘리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어 절망스럽다. 살아갈 의미가 있는지 수없이 자문자답했다.”

2019년 4월 발생한 ‘이케부쿠로 폭주 사건’은 고령운전에 대한 일본 사회의 경각심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90세에 가까웠던 운전자의 차량은 100km의 속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시민들을 덮쳤고 31세의 여성과 3살배기 여아 포함 총 9명의 사상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희생된 모녀의 남편의 애끊는 절규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특히 가해 운전자의 태도와 신분, 사건 직후 대응 수위 등으로 인해 파장이 컸습니다. 전직 고위관료였던 가해차량 운전자가 경악스런 참사를 저지르고도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듣지 않았다”며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차체 결함 때문에 발생했으니 무죄”라고 주장했기때문입니다.

여담으로 사고 이후 체포 및 구류도 없이 조사가 진행된 끝에 10개월만에 불구속 기소처분이 나면서 ‘상급(上級) 국민’ 논란까지 불거졌습니다. 상급 국민이란 한때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특별대우를 받는 높은 신분의 이들을 비꼬는 말로 쓰였던 유행어 입니다.

2019년 6월 이케부쿠로 사고 2달뒤 현장검증에 응하고 있는 사고 차량 운전자 이즈카 고조 전 통산성 공업기술원장.
2019년 6월 이케부쿠로 사고 2달뒤 현장검증에 응하고 있는 사고 차량 운전자 이즈카 고조 전 통산성 공업기술원장.

이 사건은 결국 운전자의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 오인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고령자들의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촉진했습니다. 사고 발생 당해 면허를 자진 반납한 75세 이상 운전자는 35만명이 넘어 1998년 관련 제도 도입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 사고 이듬해 부터 부랴부랴 고령운전관련 제도마련에 본격 착수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모든 신차에 충돌피해 경감 브레이크 탑재를 의무화했고 75세 이상 운전자중 일정수준 이상 교통규칙 위반기록이 있을시 실제 차량을 운전하는 기능검사를 강제했습니다.

고령자의 운전권 박탈보단 안전한 운전을 위한 대책도 내놓았습니다. 페달오인 방지 기능이 탑재된 ‘서포트카’를 도입한데 이어, 올들어 이 차량에만 한정해 운전을 허용하는 ‘한정 면허제’를 내놓았습니다. 서포트카 이용 장려를 위한 보조금과 보험료 할인 등 혜택과 함께 고령 운전자를 위한 지정 주차 구역도 마련했습니다. 덕분인지 최근 일본의 고령자 교통사고 발생 비중은 제도 정비 이전 보다 감소세를 띠고 있습니다.

日, 65세 이상 사고 비중 줄었지만 75세 이상은 늘어...최다 원인 ‘가속·브레이크 페달 오인’
일본 서포카 및 한정 면허 홍보 포스터. [일본 경찰청]
일본 서포카 및 한정 면허 홍보 포스터. [일본 경찰청]

하지만 일본의 고령자 교통사고는 여전히 전체 사고 건수의 15% 이상으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려되는 건 만 75세 이상 운전자 입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75세 이상 운전자의 사망 교통 사고 발생 건수는 총 384건이었는데 이는 면허 인구당 발생건수로 보면 75세 미만의 2배가 넘는 수치 입니다. 사고 원인으로는 브레이크와 가속페달 등을 착각하는 ‘부적절 조작’ 비중이 33%으로 현저히 많았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현재 ‘서포트카’에만 들어가 있는 가속과 브레이크 페달을 헷갈려 밟을 경우 사고를 막아주는 장치를 오토매틱 차량에 한해 내년중 의무화할 예정입니다.

이 안전 장치는 장애물을 1∼1.5m 앞에 둔 상태에선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거나 시속 8㎞ 미만 속도로 부딪히도록 가속을 억제해 준다고 합니다. 차내에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 주세요’라는 경고 문구도 표시됩니다.

2년전 일본의 제안으로 UN회의에서 합의된 이 사안은 오는 11월 정식 결정될 예정입니다. 일본 정부는 내년 6월 이후 모든 신차에 해당 장치의 탑재를 의무화 하고, 기존 차량들에게도 차후 적용한다는 방침 입니다.

트럭·택시 등 직업 운전자의 고령화도 심각
챗 GPT가 트럭 및 버스 운전기사 고령화 현상을 형상화한 그래픽. 한국은 현재 여객자동차운수사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운전적성정밀검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합격률이 99%에 달해 사실상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나온다.
챗 GPT가 트럭 및 버스 운전기사 고령화 현상을 형상화한 그래픽. 한국은 현재 여객자동차운수사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운전적성정밀검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합격률이 99%에 달해 사실상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실 일반 운전자 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트럭이나 버스, 택시 등 직업운전자들의 고령화 문제 입니다. 대형 차종의 경우 사고 발생시 피해가 더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2020년 기준 트럭 운전기사 등 도로 화물 운송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령은 40세~54세가 44%로 대부분 이었지만, 60대 이상도 16%로 그 다음 비중이었습니다. 트럭 운전기사의 경우 아직 고령자 비율이 그리 높진 않으나, 새 인력 유입이 적다보니 갈수록 연령대가 높아지리란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운전기사의 고령화는 특히 택시업계에서 심각합니다. 이미 2021년 기준 만 65세 이상이 일본 택시기사 전체의 절반에 달했고 만 70~74세가 20~2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택시를 탔더니 기사의 운전이 불안해 조마조마했다거나, 아예 승차를 포기하고 다른 택시를 잡았다는 경험담이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래픽 매경DB]
[그래픽 매경DB]

한국에서도 최근 전체 택시 운전기사 약 22만 명 중 65세 이상이 거의 절반에 달하고, 80대가 약 2000명, 심지어 90대 운전기사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나이 만큼 연륜이 붙겠지만 보통의 승객 입장에선 아무래도 70대, 80대 기사의 운전에 걱정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내 택시 기사들의 고령화는 지난 2019년 이후 개인택시 면허 취득 조건 완화가 부메랑이 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개인택시 운전에 있어 법인 택시 근무 경력 요건이라는 허들을 없애 더 많은 이들이 택시 운전을 할 수 있게 유도하려는 취지였으나 은퇴 이후 소일거리를 찾던 고령자들만 대거 유입되면서 업계의 고령화가 심화됐다는 지적입니다.

관련 기술 및 제도 보안 서둘러야...2% 불과한 면허반납률 논의도 필요
현재 한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10만~30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나 상품권을 제공하면서 고령 운전자들의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고 있지만 반납률은 매년 2% 안팎에 그치고있다. [연합뉴스]
현재 한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10만~30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나 상품권을 제공하면서 고령 운전자들의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고 있지만 반납률은 매년 2% 안팎에 그치고있다. [연합뉴스]

시청역 사고 이후 일각에서 일정 연령에 도달할 경우 일률적 면허 반납도 논의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이 역시 이미 일본에서 불거진 바 있는 사안 입니다.

일본 지자체들은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기 위해 택시 승차료 할인 등 각종 당근책을 내놓고 있으나, 반납건수는 2019년 이케부쿠로 사건이 발생했던 해 피크를 찍은 이후 계속 감소세 입니다.

일본 여론의 다수는 일정 연령에 도달할 경우 면허반납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하지만 고령자의 운전권 침해 문제 이외에 여러 현실적 조건들 때문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컨데, 2022년 일본 컨설팅 기업 ‘트렌드 리서치’가 전국 성인 2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6%면허 반납 의무화에 찬성했지만, 반대24% 나 됐습니다.

반대의견에는 주로 “지방에는 아직 고령자를 위한 대중교통 인프라가 정비되지 않은 곳이 많다” 거나 “면허를 반납하면 생계가 곤란해 진다”는 등 현실적 이유가 많았습니다. “개인별 체력 및 인지능력 차이가 있는데 특정 나이로 일괄 적용하는건 좋지 않다. 적성검사를 강화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특히, 응답자들은 반납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연령을 묻자 “만 81세 이상” 을 꼽은 비율이 41%로 가장 많았습니다. 반납 의무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여러 현실적 이유로 실제 반납시기는 80세 이상이 적절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도 면허반납 유도 이외에 여러 기술 및 제도 정비를 진행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다만, 기술적 보완책이 사고를 100% 막아주는 예방책은 될 수 없습니다. 토호쿠 가쿠인대학 자동차공학 연구실의 키도 아키히로 교수는 아사히 신문에 “안전운전을 위해 장치를 활용 하는 건 좋은 방법” 이라면서도 “장치가 작동하는 조건은 페달을 밟는 속도로 판단되기 때문에 언덕길 이나 턱을 넘을 때 오작동 할 수 있어 장치가 완전한 대비책이 될 수는 없다” 라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만 65세 이상의 운전면허 보유자수는 약 2000만명으로 전체 면허 보유자수의 4분의 1에 달합니다. 한국도 내년이면 고령 운전자수가 500만 명에 달할 예정입니다. 여러 현실적 문제들이 있지만 고령자 운전을 지금처럼 무한정 개인의 선택에만 맡기기엔 사회적 불안요소가 남습니다. 때문에 고령자 이동권 보장과 안전을 위한 기술 및 제도 장치마련을 서두르는 한편, 지금보다 면허 반납을 유도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위한 논의도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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