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사전 추석편] 모시송편에 들어가는 흰 앙금 ‘그거’
![달콤한 깨송편인 줄 알고 크게 베어 물었더니 텁텁한 동부소가 튀어나오면 억울하기 마련이다. [사진 출처=자연이야기/옥션]](https://pimg.mk.co.kr/news/cms/202510/08/news-p.v1.20251008.6af586dd18af49b3a1fef75e52f952ec_P1.png)
명사. 1. (표준어) 동부소, 동부콩소 2. (널리 쓰이는 표현) 동부기피, 동부앙금, 동부콩고물【예문】“추석 특집이라고 떡국 꾸미 썼다가 댓글로 욕먹는 바람에, 이 악물고 동부소 아이템 찾았다는 게 사실인가요?” “늬, 스슬읍느드(이를 악물며).”
동부소다. 동부(학명 Vigna unguiculata)라는 이름의 콩으로 만든 소, 즉 음식 속에 채워 넣는 속재료란 뜻이다. 설탕·꿀 등을 첨가해 달게 간한 경우엔 동부 단콩소라고 부를 수도 있다. 동부소 모시송편은 전라남도 영광군의 향토 음식이자 특산물¹이기도 하다. 영광 지역에서는 삶아낸 동부를 통째로 소로 넣은 경우엔 통동부, 곱게 갈아서 넣은 경우엔 (동부)기피라고 지칭한다.
전남 영광의 향토 음식이라고 했지만, 정작 동부는 이집트 등 아프리카를 원산지로 하는 콩이다. 이집트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나일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 - 인가 싶지만, 동부콩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유입된 시기는 조선 시대로 본다. 명나라 학자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 1578년 엮은 약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동부(강두豇豆)에 대해 “꼬투리는 2척(66센티미터)까지 자라고, 채소가 되기도 하고 열매를 먹을 수도 있어서 곡물로서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안니발레 카라치, 1580-1590, 콩을 먹는 사람(The Bean Eater), 로마 콜론나 궁전 소장.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16세기 말엽 작품 속에서 농부가 퍼먹고 있는 콩이 바로 검은 반점이 있는 동부다. 빵과 파, 베이컨과 레드와인이란 구성은 좋은데, 파가 너무 생파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이븐하지 않다. [사진 출처=공공저작물]](https://pimg.mk.co.kr/news/cms/202510/08/news-p.v1.20251008.5541d42fa7f241869919889338b10f1d_P1.png)
멕시코 출신의 고추가 임진왜란 전후(16세기 말~17세기 초) 중국 혹은 일본을 통해² 조선으로 들어와, 김치를 빨갛게 물들이게 된 시점이 18세기 중반이었음을 떠올려보자. 속이 꽉 찬 배추로 만든 김장 김치의 기원은 더 짧다.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1898~1959)가 6·25 전쟁 이후 중국배추와 양배추를 육종해 만든 신품종 결구(結球)배추를 보급한 이후에나 등장했기 때문. 고추장과 김치를 향토 음식으로 쳐 준다면, 동부 역시 ‘뼛속부터 K푸드’로 인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렷다.
영미권에서 카우피(Cowpea)라고 부르는 동부는 콩과의 한해살이 덩굴 식물로, 모래 토양과 적은 강우량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억척스러운 성정 덕분에 척박한 아프리카 대륙을 먹여 살리는 작물로 자리 잡았다. 기원전 2500년 이전부터 재배한 것으로 추정되며, 인류의 가장 오래된 재배 작물 중 하나로 본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니제르 두 나라에서 전 세계 동부의 66%가 생산될 정도다. 기원전 400년 무렵에는 아프리카, 지중해, 인도, 동남아시아 등 주요 곡물 생산지 전역에 정착해 있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 상당수의 콩과 식물과 마찬가지로 뿌리혹에 사는 박테리아가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적은 비료만으로도 잘 자랄 뿐만 아니라, 토지를 비옥하게 만든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22년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작물 중 하나로 이 동부를 꼽았다.

![블랙 아이드 피s. 콩의 배꼽 부분에 검은 반점이 특징이다. [사진 출처=Toby Hudson/위키피디아]](https://pimg.mk.co.kr/news/cms/202510/08/news-p.v1.20251008.717daa043b2e4987902a41a4c6af415b_P1.png)
동부의 여러 아종 중 하나로 흰 동부가 있는데 영문명이 블랙 아이드 피(black eyed pea·검은눈콩)다. 뭔가 붐붐파우 리듬을 탈 것 같은 이름이지만, 실은 흰 콩 위에 검은 반점이 마치 눈동자처럼 보여 붙여진 것이다. 카우피라는 이름도 이 무늬가 젖소의 그것과 닮아서 그렇다는 설과 북미에 가축 사료로 유입되며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재미있게도 30년 차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The Black Eyed Peas)의 그룹명 역시 콩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미국 남부 흑인 사회의 소울 푸드인 (호핑 존의 주재료) 블랙 아이드 피를 통해 그룹이 추구하는 소울 음악의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이름을 빌려 왔다는 것. 한국에 비유하면 빌보드를 씹어 먹는 힙합 그룹 이름이 ‘the 청국장’이나 ‘the 파주 장단콩’인 셈이다.
지금은 호핑 존이 미국에서 새해의 재물 운·행운을 기원하는 대표적인 메뉴로 자리 잡았지만, 기원은 신대륙으로 팔려 온 서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이 해 먹던 음식이었다. 검보, 잠발라야, 콘브레드, 프라이드 치킨 등과 마찬가지로 블랙 아이드 피스는 미국 남부 흑인들이 곤궁한 삶 속에서 발전시킨 고유의 식문화이자, 정체성과 연대의 상징이 됐다.
![왼쪽은 블랙 아이드 피를 이용한 미국 남부 소울푸드 호핑 존(Hoppin’ John). 그리고 그 소울푸드에서 그룹명을 따온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한국 힙합 그룹의 이름이 ‘the 청국장’ 혹은 ‘the 파주 장단콩’인 셈이다. 이게 본토 힙합의 패기다. [사진 출처=블랙 아이드 피스·Ser Amantio di Nicolao/위키피디아]](https://pimg.mk.co.kr/news/cms/202510/08/news-p.v1.20251008.1c34dcc7c9794a29b9ce556a374d4efa_P1.png)
국내에서는 강두(豇豆), 강자두(豇子豆), 대각두(大角豆), 장두(長豆), 광저기, 광작 등으로 불린다. 모양이 콩팥처럼 생겼다고 신곡(腎穀)이란 별칭도 붙었다. 국내에서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따로 장려하는 품종이 있거나 하지는 않고, 제주·경남 남해안·전남 해안 지역 등에서 검정동부·흰동부를 소규모로 재배한다. 동부는 탄수화물 함량(55%)이 높은 편이라 맛이 달큰하고 고소하며, 삶으면 포슬포슬한 식감이 특징이다. 콩과 팥의 중간 정도의 식감과 단맛이라고 설명하는 편이다. 밥을 지을 때 넣어 먹거나, 떡고물, 묵 등에 주로 쓴다. 국내 재래 품종으로 갓끈동부도 있다. 40~60㎝에 달하는 긴 꼬투리가 마치 갓끈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콩 알맹이보다는 꼬투리째로 찌개나 조림 등에 넣어 먹는다.
![이게 뭐시여 - 소리가 절로 나오는 갓끈동부 꼬투리의 비주얼. 갓끈 하니 또 복근 사인만 남기고 사라진 사자 보이즈 ‘갓끈 걔’ 애비가 생각난다. 인간적으로 케데헌2에는 부활시켜줘라. [사진 출처=도시농부/위키피디아]](https://pimg.mk.co.kr/news/cms/202510/08/news-p.v1.20251008.5575f4aa1a8445b88c4c6868293d0b0e_P3.png)
국산 동부는 소규모로 생산하는 통에 콩 중에서는 비싼 몸값을 자랑하고 있다보니 미얀마 등지에서 많은 물량을 수입하고 있다. 녹두로 만든 청포묵을 대체하는 동부묵의 원재료로도 많이 쓴다. 수입산 동부의 경우, 녹두와 비슷한 점성이라 묵으로 만들면 거의 차이가 안 나는데, 가격은 녹두보다 싸기 때문이다.
동부소란 표준어보다 동부앙금, 동부콩고물이란 어휘가 더 자주 쓰이지만, 모두 틀린 표현이다. 곱게 갈거나 으깨서 만든 속(소)을 일컫는 표현으로 앙금을 쓰곤 하는데, 앙금은 아예 의미 자체가 다르다. 앙금은 녹말 따위의 부드러운 가루가 물에 채 섞이지 않고 가라앉은(=침전된) 층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개운치 않은 감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이기도 하다.
앙꼬 없는 찐빵도 부적절한 표현이다. ‘떡이나 빵의 안에 든 팥’이란 뜻의 표준어로 등재돼 있긴 하지만, 앙꼬(餡子)는 일본어 투 표현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餡子(안코 혹은 앙코로 발음)는 1. 팥소(餡·あん 앙)를 속되게 이르거나 2. 속을 채우는 물건·재료 등을 뜻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를 앙꼬의 순화어로 팥소를 권장한 바 있다. 국내에서 유행한 다디단 빵 중에 앙버터(あんバタ)라고 두꺼운 버터와 비슷한 두께의 팥소를 넣어 만든 빵이 있는데, 이름부터가 앙과 버터를 합쳐놓은 것이다.
아마도 팥소를 뜻하는 앙(혹은 앙꼬)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대충 비슷한 발음과 물·마음속에 남아있는 무언가를 뜻하는 앙금을 발견하고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결합, 떡·빵 안을 채우는 속을 의미하는 단어로 변용된 것으로 조심스레 추정해본다.
![조선일보, 1925년 4월 28일 자, 서양과자 만드는 법 16편. [사진 출처=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https://pimg.mk.co.kr/news/cms/202510/08/news-p.v1.20251008.79ef5ab585814307b463e438e0045c2b_P1.png)
![동아일보, 1925년 5월 8일 자, 과자 제조법. [사진 출처=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https://pimg.mk.co.kr/news/cms/202510/08/news-p.v1.20251008.34c2ea58f6fc407b9b31da6edbcc2ecf_P1.png)
1925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실린 서양과자 조리법에 보면 ‘앙금’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감자너흔 카스텔라와 밤가스테라(심야 가스 테러 사건 같아서 무섭다)인데, 두 기사 모두 갈아서 부드럽게 만든 재료를 뜻하는 단어로 ‘앙금’을 쓴다. 조선일보에서는 ‘감자즙에 달걀흰자를 넣어 앙금을 만들라’, 동아일보에서는 ‘삶은 밤을 껍질을 벗긴 뒤에 갈아서 앙금을 만들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맥 전후를 살펴보면, 앙금은 조리 과정에서 반죽에 섞기 위한 간 재료 혹은 침전물에 가깝지, 속재료라고 단정 짓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조선일보, 1957년 11월 21일 자, 애기 생일 차림. [사진 출처=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https://pimg.mk.co.kr/news/cms/202510/08/news-p.v1.20251008.172eb9a04f9a451d80d588f2587c3c05_P1.png)
그 이후로는 도통 등장하지 않던 앙금이 다시금 등장하는 시점은 1957년 11월 21일 자 아기 생일 차림에 관한 기사다. 뻐-스데이 케익(오타 아님) 등 뀌여운(오타 아님2) 애기들(오타 아님3)의 생일 잔칫상에 올릴 만한 음식의 조리법에 대해 설명하는 기사인데, 중국식 약식 팔보반(八寶飯)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찹쌀을 기본으로 팥, 대추, 은행, 해바라기 씨앗, 금귤 등 여덟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재료를 설탕과 만든 팔보반(八寶飯). 요즘 애들 생일상에 팔보반을 올리면 여러모로 화제가 될 터다. [사진 출처=바이두백과(百度百科)]](https://pimg.mk.co.kr/news/cms/202510/08/news-p.v1.20251008.0a95b062c222445ebb024552b00685ec_P3.png)
② 파ㅌ을 푹 삶아서 계피하여 앙금만을 받아 가지고 파ㅌ앙금과 같은 양의 설탕을 넣고 소금을 조금 넣어 달게 조려내어 파ㅌ소를 만듬. (중략)
④ 이때 도중에서 찰밥 속에 파ㅌ소를 집어넣고 보이지 않게 묻어 놓음.
이거다. 파ㅌ이란 표기법은 일단 넘어가고, 팥앙금과 팥소를 구분해서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앙금은 팥 따위를 삶거나 물에 불린 뒤 갈아서 가라앉힌 침전물, 즉 사전적인 의미로만 쓰였고, 이를 가지고 떡이나 빵의 속으로 만든 것은 팥소라는 이름으로 지칭했다.³
하지만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언론에서조차 팥소=팥앙금=앙꼬로 굳어지게 된다. 팥소와 팥앙금을 분명히 구분했던 조선일보의 1966년 11월 17일 자 기사 ‘食品毒素(식품독소)는 하나가 아니다’ 본문을 살펴보자. 같은 해 공업용 환원표백제인 롱갈리트(rongalite)를 사용한 7개 제과업체가 입건되는 롱갈리트 파동 관련한 해설 기사다. 기사는 식품 제조 과정에서 쓰이곤 하는 유독성 화학 물질들을 조명하고 있는데, 이중 메틸 바이올렛에 대해 “자색으로 착색되는 색소로, 팥앙금(앙꼬) 요깡 등에 쓰이기 쉽다”라고 기술했다. 요깡은 일본 화과자인 양갱(羊羹·ようかん 요칸)의 일본식 표현이다.
고물은 떡의 겉에 묻히거나(feat. 인절미) 켜와 켜 사이에 얹는(feat. 시루떡) 가루를 말한다. 떡의 맛과 영양을 높여주며 서로 달라붙지 않게 해줘 고루 잘 읽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팥·콩·녹두·참깨·검은깨 등을 많이 쓴다. 소와는 다르다. 특히 인절미를 고소하게 만들어주는 콩고물을 만들 때 동부도 많이 쓰는데 이때에는 콩을 삶지 않고 껍질째 볶은 다음 알맹이만 따로 분리해 갈아내면서 색이 노랗게 변한다.

![추석 전날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던 시절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추억이 됐다. 전문가의 손길로 빚어낸 송편을 사서 먹는 쪽이 더 맛있기도 하지만, 넘어가자. [사진 출처=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510/08/news-p.v1.20251008.a7c1736c0e804678ac4363893227990a_P2.png)
송편소 이야기만 늘어놓았으니, 송편에 대한 잡식도 몇 가지 나열해보자.
추석 명절에 즐기는 대표적인 음식인 송편은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해 깨, 콩, 밤, 대추, 팥 등의 소를 넣고 찐 떡이다. ① 이때 이름 그대로 켜켜이 솔잎(松)을 깔고 쪄낸다. 사전에서는 ② 가을에 추수한 햅쌀과 햇곡식으로 빚어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는 의미를 담은 명절 음식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음력 2월 1일 노비일(머슴날·일꾼날), 6월 15일 유두, 7월 7일 칠석, 7월 15일 백중과 복날 등 ③ 힘든 농사일과 일꾼에 대한 감사와 격려를 위해 대접하는 성격의 음식이었다. ④ 송편은 17세기 문헌에 최초로 등장하는데 당시엔 송푠·숑편이나 松餠(송병) 등으로 적었다. ⑤ 송편의 모양은 달을 형상화한 것이다. 지금은 반달 모양이 일반적이지만 지역에 따라 보름달 모양의 원형 송편도 빚었다. ⑥ 콩송편은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파격적인 송편소도 있었다. 조선 시대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에는 송편소로 미나리를 썼다는 기록도 남아있고, 부인필지婦人必知(1900년대 초)에는 잣, 호두, 생강, 계피 등이 언급됐다. 미나리 송편, 쉽지 않다.
동부소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신 김효정 주간조선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