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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재잘대는 이곳 우리동네 경로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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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경로당이 스크린 파크골프장으로 변신해 다양한 세대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곳은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시대에 경로당의 폐쇄성을 벗어나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다른 자치구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경로당이 각종 활동과 세대 간 소통의 장으로 자리 잡으면서 노인들의 이용률과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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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선생님이 동화 읽어줘요"
'시니어라운지' 변신한 서초
도서관 만들어 전세대에 개방
방문객 수 6배 가까이 늘어
동탄에선 어르신들이 교사로
아이들에 영어·바둑 알려줘
도곡경로당엔 스크린파크골프
강남구 어르신들 줄서서 찾아
◆ 대한민국 경로당 보고서 ◆
스크린 파크골프장으로 바뀐 강남구 도곡경로당(왼쪽 사진), 아이들이 책을 읽는 서초구 반포3동 시니어라운지.   강남구·서초구
스크린 파크골프장으로 바뀐 강남구 도곡경로당(왼쪽 사진), 아이들이 책을 읽는 서초구 반포3동 시니어라운지. 강남구·서초구
"3번 플레이어 님, 샷하세요."

최근 찾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경로당에는 60·70대 '젊은' 노인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경로당에 마련된 스크린 파크골프장의 오른쪽 방에선 70대 부부 두 쌍, 왼쪽 방에선 친구들로 보이는 60대 후반 여성 4명이 게임을 즐겼다.

인적이 많지 않은 도곡동 까치공원 안에 위치한 도곡경로당은 지난해 11월 스크린 파크골프장으로 탈바꿈했다. 지역 노인들이 갈수록 경로당을 찾지 않고 파크골프나 등산 등 적극적인 활동을 선호하자 개방형 경로당 1호로 변신을 모색한 것이다. 기존에는 도곡동에 사는 만 65세 이상 노인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강남구에 사는 만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이달까지 진행 중인 스크린 파크골프 시범 운영은 접수 첫날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경로당을 활성화하기 위한 차별성 확보가 필요했다"면서 "노후화된 경로당 6곳을 액티브 시니어들이 취미·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인 인구 1000만 시대를 맞이해 대한민국 경로당이 진화하고 있다. 스크린 파크골프장으로 변신하는가 하면, 노인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 동네 주민이 함께하는 지역 커뮤니티로도 활용되고 있다. 일부 회원만 이용하던 폐쇄성을 벗어던지고 열린 공간으로 변모하면서 경로당을 찾는 사람이 늘고 노인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

강남구 사례처럼 서울 각 자치구들은 최근 노인복지관이나 주민센터 공간에 스크린 파크골프장 등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호평받고 있다. 서울시는 지하철역 빈 상가 공간 등을 활용해 올해 스크린 파크골프장 50곳을 열 계획이다. 활동적인 60·70대를 잡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지역 주민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경로당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초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로당을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공간으로 바꾸고 이름도 '시니어라운지'로 변경했다. 반포2동과 반포3동 경로당이 지난해 7월과 11월 각각 시니어라운지로 재탄생했다.

시니어라운지에는 동화책을 비치해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방과 후 즐겨 찾을 수 있도록 꾸몄다. 또 학부모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새로 설치한 안마기는 어르신들에게 인기다. 세대 구분 없이 누구나 이용하는 일본의 '살롱'과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예전에는 경로당 이용 인원이 하루에 10명이 안 될 정도로 적었는데, 개방형 공간으로 바꾼 뒤 평균 50~60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의 동탄 행복마을 푸르지오 아파트도 간판을 경로당이 아닌 '시니어클럽'으로 내걸었다. 시니어클럽 회원들은 각자의 재능과 전문성을 살려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곳 회장을 맡고 있는 김인배 씨(72)는 직접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 다른 노인들도 바둑, 서예, 독서, 글쓰기, 영어 등 다양한 과목을 맡았다. 이들은 아이들과 함께 간식을 나눠 먹거나 식사를 하기도 한다.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인 단지 특성상 발생하는 돌봄 공백을 경로당 어르신들이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정윤아 양(10)은 "할아버지·할머니가 숙제 지도를 잘해주셔서 좋다"고 말했다. 김인배 회장은 "시니어는 미래 세대와 소통해서 좋고 아이들은 평소 어렵게 느끼던 어르신들과 친해질 수 있어 좋아한다"며 "지역 주민들 호응이 좋아지면서 20여 명이었던 회원 수가 1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문턱을 낮추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개방형 경로당이 미래 경로당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존 회원제 중심의 폐쇄적인 경로당에서 벗어나 전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시설로 탈바꿈해야 경로당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광명시 철산3동 경로당에는 노인 일자리 지원을 위한 공간이 함께 들어서 눈길을 끈다. 광명시가 지난해 신축 빌라 1개 층을 임대해 만든 공간이다. 노인들의 인생 2모작을 위한 일터이자 교육장이고 경로당 회원들의 회의실이 되기도 한다. 교육장 한편에 마련된 간편식 매장에서는 노인 18명이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지헌례 씨(69)는 "경로당에서 생활하다 교육을 받고 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경로당에서 횡령 등 돈 문제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예산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경로당도 늘고 있다. 서울 광진구 복조리 경로당은 모든 지출이 담긴 월말 결산 내역을 회원들이 알 수 있도록 경로당 벽면에 붙여놓고 있다. 대전 유성구의 열매마을 6단지 아파트 경로당도 대형 TV를 통해 매월 한 번 예산 사용 내역을 회원들에게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 경로당 운영비 사용을 둘러싸고 경로당 운영진과 회원들 사이에 의견이 충돌할 여지를 차단한 것이다.

[최재원 기자 / 김정범 기자 /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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