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 계엄령 사태를 일으킨 이후 대학가에서도 연일 시국선언문이 발표되고 있다. 위기의 시대마다 상아탑을 벗어나 거리로 나왔던 선배들을 기리며 각 대학 총학생회가 펜을 잡은 가운데, 각 대학의 학풍과 특성은 물론 역사 의식까지 살린 글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의 계엄이 선포되면서 과거의 민주화 관련 사건들을 언급하며 유지를 이어받겠다는 목소리가 많이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대학가인 신촌에 위치해 있고 6월 항쟁 당시 이한열 열사를 배출한 대학교이기도 한 연세대는 “1987년 6월 교정과 광장에서 울려퍼진 학생들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고 밝혔고, 그 옆에 위치한 이화여대는 1987년 6월에 더해 본인들이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신호탄이 되었다는 점도 썼다.
4.19 혁명 전날 대학 최초로 시위를 벌인 역사를 가진 고려대학교는 당시 작성되었던 ‘4.18 고려대학생 궐기선언문’을 본따 이번 시국선언문을 작성했다. “친애하는 고대학생제군”을 명명하며 시작된 글은 “압제를 불살라라”는 내용으로 끝난다. 중앙대도 4.19 혁명 당시 “중앙대는 ‘의에 죽고 참에 살자’ 정신을 외치며 자유를 향한 투쟁에 앞장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밖에도 지역에 위치한 대학교들은 각 도시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아픔이 오늘날 되살아나질 않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깊은 전남대와 전북대, 조선대 등은 시국선언문에도 이 내용들을 담았다. 전남대는 이번 계엄령을 “5.18 정신과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광주에게 더없이 큰 상처”로 규정했다. 전북대도 “5.18 민주화 혁명 최초의 희생자인 이세종 선배님의 혼이 살아있다”고 밝혔고, 조선대도 “불의와 독재에 맞서 싸워온 자랑스러운 민주 투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입장을 알렸다. 과거 4.3 사건이 일어난 지역인 제주도의 제주대는 “4.3의 후예로 끝까지 목소리를 내고 맞서겠다”고 알렸다.

지역이 아닌 학교 자체의 특성을 살린 모습도 관심을 끈다. 한국외대는 한국어로 작성된 규탄문 외에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총 4개 국어로 작성하고 “세계는 대한민국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제목을 각 언어로 붙여 정체성을 드러냈다. 인하대는 시국선언문에 “자유는 우리로, 인하여”라는 제목으로 학교 이름을 사용해 학우들에 대한 호명과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함께 담아냈다. 조선 시대 성균관의 후예임을 주장하는 성균관대는 유교의 인의예지 정신과 선비들의 상소를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또한 가톨릭대학교는 민주화 운동 당시 학생들 지켰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마음을 담았다. 김 추기경의 혼이 서린 곳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후에는 시국선언문 외에도 직접적인 행동도 더해질 전망이다. 오는 7일에는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대학생 시국 대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고려대, 이화여대 등 20여개 대학 학생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