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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네” 12·3계엄 때 ‘라이브’ 켠 이재명, 이유 들어보니

배윤경 기자
입력 : 
2025-04-15 11:09:34
수정 : 
2025-04-15 16: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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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당시의 급박함을 전했다.

그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 많은 시민들에게 상황을 알리려 했고, 역사적 트라우마가 이를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본회의에서의 찬반 표결 과정과 당시 정치적 긴장은 유의미한 정치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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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 통과 후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 통과 후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대선주자로 나선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2·3 비상계엄 당시 상황을 전했다. “미쳤네”란 외마디가 절로 나왔을 정도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고 했다.

지난 14일 이재명의 인생과 정치철학을 담은 ‘결국 국민이 합니다’를 출간한 이 전 대표는 저서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를 초반 ‘가짜 뉴스’로 치부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연이어 “지금 국회로 모여야 한다”, “바상 상황이다”라고 전하면서 상황을 깨닫게 됐다는 이 전 대표는 “미쳤네”란 외마디와 함께 “국회로”란 세 글자만 급히 민주당 텔레그램 단톡방에 올렸다고 전했다.

그는 차를 타고 국회로 향하면서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야 했다”는 생각에 ‘이재명TV’ 라이브(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5·18 트라우마에 긴급 생방송

이 전 대표는 ‘어떻게 라이브 방송을 할 생각을 했나’란 질문에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역사의 트라우마’가 당시 나를 일깨워 긴급 생방송을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답했다.

그가 말한 역사의 트라우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이 전 대표는 ‘가슴에 화인처럼 새겨진’ 5·18 유가족 오열 모습과 함께 ‘광주시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당시 긴급 호소 방송을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광주에 대한 이런 기억들이 지난해 12월 3일 밤 긴급 생중계를 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을 국회의원들의 힘만으로 어떻게 막겠는가”라면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어야 내가 체포되더라도 국민들이 내가 잡혀가는 장면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12·3 계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켠 라이브 방송 일부. [영상 출처 = 사회관계망서비스]
12·3 계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켠 라이브 방송 일부. [영상 출처 = 사회관계망서비스]

국회 담을 넘을 때도 같은 생각으로 라이브 방송을 계속 켜뒀다. 이 전 대표는 “내가 불시에 잡히더라도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아, 이재명이 잡혀갔구나’라고 알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였다”며 “나중을 위해서라도 아무도 모르게 소리 소문없이 잡혀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2·3 계엄 당시 이 대표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약 107만명이었지만, 해당 방송은 지난해 12월 4일 오전 기준 240만회 조회됐다.

계엄 해제 현장서 이재명-한동훈 동상이몽

저서에 따르면 12·3 계엄 당시 이 전 대표는 본회의장에 도착한 민주당 의원 수가 151명을 넘겼다란 보고를 받고 가까스로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이 전 대표는 의결 정족수를 넘겼음에도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니 가슴이 타들어 갔다고 표현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 절차에 일체의 위반 사항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절차를 악착같이 챙겼는데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끄는 지연작전을 썼다는 게 이 전 대표의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된 뒤 4일 새벽 국회가 위치한 여의도 상공을 군 헬기가 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된 뒤 4일 새벽 국회가 위치한 여의도 상공을 군 헬기가 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 전 대표에 따르면 추 원내대표는 의결을 12월 4일 오전 1시30분까지 미뤄달라고 계속 요청했고, 결국 오전 1시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반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앞서 출간한 그의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에서 “계엄의 밤, 본회의장 안에 있던 나를 비롯한 국민의힘 사람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의 기복을 느꼈다. 무엇보다 고립감이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한 전 대표는 “우리 국민의힘은 18명에서 더 늘지 않았다. 계엄 해제에 뜻을 같이하면서도 본회의장에 오지 못한 의원들이 많은 것을 알기에 더 아쉬웠다”며 “이날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한 우리 당 의원이 40명만 됐어도 이후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 전 대표와 본회의장에서 악수한 상황도 전했다. 한 전 대표는 “이 대표가 우리 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의원들이 ‘대표님과 악수하는 그림을 만들려고 오는 것 같다. 자리를 피하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계엄을 막는 데 민주당과 합심하는 것처럼 보이면 지지자들 보기에 불편할 수 있고, 나중에 이렇게 악수하는 그림이 이간질 도구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그래도 인사를 일부러 피하는 건 졸렬해 보인다”고 하며 이 전 대표와 간단한 격려의 말을 건네며 악수했다.

그는 “계엄 밤부터 당 대표 사퇴할 때까지 이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의원들이 여러 차례 회담을 제의했지만 나는 예민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 응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추경호 의원(전 원내대표)이 지연작전을 썼다는 이 전 대표 주장에 추 전 원내대표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추 전 원내대표는 우 국회의장으로부터 두 차례 전화를 받았으며, 우 의장이 첫 번째 통화와 두 번째 통화에서 각각 오전 1시 30분과 오전 1시에 본회의를 개최하겠다고 일방 통보했다는 것이다.

또한, 추 전 원내대표측은 “당시 우 의장과의 두 번째 통화 시 ‘국민의힘 다수 의원이 국회 출입통제로 들어오지 못하고 당사 등에 있는데, 국회의장께서 국회의원들이 국회 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우 의장은 ‘여당이 경찰한테 요청하라’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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