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당학회 정치학자 3인 신년좌담회

정치학자 3인은 일반 유권자보다 현실정치에 직접 몸담고 있는 이른바 '정치 엘리트'들이 극단적인 사고에 함몰된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정당정치부터 바로 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박선경 교수는 "지금 한국 정치가 위기를 맞게 된 원인은 일단 대통령의 비민주적인 현실인식과 오판으로 봐야 한다"면서 "대통령과 정치 엘리트들이 일반 유권자보다 더욱 극단적으로 사고하고, 지지 세력의 목소리만 듣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원호 교수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상황이지만 정치적 양극화에 기반한 정당 간 대립의 에너지가 시스템에 의해 해결되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라며 "비상계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박 교수는 "대통령의 계엄선포권이 헌법에 명시돼 있다고 해서 이를 아무 때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것은 우리 공동체의 암묵적 약속"이라며 "그러나 공동체가 공유하는 컨센서스에서 벗어나 규정에 있나 없나를 따지게 되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결국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서정건 교수는 대통령제 본연의 문제점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엔 정당을 장악하다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엔 인사권과 사법권 등 국가권력 전체를 장악하게 된다"며 "이런 상황이 정치 양극화를 만나다 보니 대통령제의 부정적 측면이 완전히 증폭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좌담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의 수습 과정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 교수는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 1인이 가지는 정치적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제어하는 것은 탄핵으로 일단 실현됐다"면서도 "그 이후 과정은 한국 정치의 본질인 정당정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박선경 교수는 "비상계엄에서 일상으로 회복한 것은 암묵적 상식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힘이 컸다"며 "탄핵 이후 다시 대혼란이 벌어진 것은 정치 엘리트들의 수준 문제인데, 여전히 위기 극복보다 당파적 이익을 우선순위에 놓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개헌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진단도 내놨다. 서 교수는 "헌법재판소 결정 전에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어떻게 줄일지를 논의해서 대선 후보들이 공약화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개헌이 여의치는 않지만 대통령제에 대한 일부 조정이 필요하다는 데는 참석자 모두가 동의했다. 서 교수는 "한국은 강한 대통령제가 '주어진 나라'에 가깝다. 경제 발전을 위해 여기에 관료제를 덧붙인 것"이라며 "이것의 제어장치가 1987년 체제의 5년 단임제인데, 한 번만 선택하다 보니 정책 이슈보다 인물에 따라 대통령을 선택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원호 교수는 "5년만 하다 보니 공무원 사회가 100% 호응하지 않고 행정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니 대통령실이 비대해지는 것"이라며 "정부도 정당보다 대선 후보 시절의 선거캠프에 의해 운영된다. 책임정당제 정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단임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이런 점이 쌓여서 폭발한 것이 문제이지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포기를 논의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선경 교수는 대통령제의 본질적인 취약성을 지적했다. 그는 "정치학자들은 '투 턴 오버(Two Turn Over)', 즉 권위주의를 벗어나 민주주의 체제가 되더라도 한 번 더 정권 교체가 이뤄져야 안정적인 민주주의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의 저서 '크라이시스 오브 데모크라시'에 따르면 1918년부터 2012년까지 '투 턴 오버'를 거친 나라 중에서 헌정질서 위기를 겪은 나라가 15개국인데, 이 중 5개국은 정치시스템이 붕괴됐다. 박 교수는 "안정적 민주주의 국가도 무려 33% 확률로 무너진다는 얘기"라며 "지금 한국 역시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제를 올바르게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참석자들은 정당정치의 복원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박선경 교수는 "정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쪽을 설득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라며 "정당이 매번 외부 인재 영입이란 방식으로 정치 분야에 훈련 없는 대선 후보를 내세우고, 당 대표 자리에 옹립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후보에 대한 검증 작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이 필요하다"며 "선거기간도 늘리고, 당선 후엔 중간평가를 받기 위해 선거주기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21세기 정치의 트렌드는 스타일(보여주기) 정치"라며 "이러다 보니 선거 전과 후가 전혀 다른 리더십이 되기 쉽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도 지적되던 문제점인데 선거에서 어젠다(거대담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스타일에만 치중하는 정치를 하기보다 국가적 어젠다를 개발하는 정책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원호 교수도 "계엄 사태가 가짜뉴스인 줄 알았지만 현실이 됐고, 윤 대통령은 선거 부정을 현실로 믿고 계엄을 선포했다"며 "한국 정치가 음모론에 대항하는 항체가 굉장히 약화된 상태"라고 우려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논쟁의 중심에 서서 극단의 음모론을 배제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명환 기자 / 성승훈 기자 / 김금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