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젤렌스키 회담 이튿날 펼친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국제법·자유무역·다자주의·가치공유에 기초한 1945년 전후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강대국들이 판을 짜고 약소국을 괴롭히는, ‘힘이 곧 정의인’ 세계가 도래하고 있다”며 “영토·기술·광물 등 모든 것이 거래 대상에 올랐다”고 썼다.
한국은 ‘트럼프 신질서’의 베타 테스터다.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인 1월 27일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한국산 알루미늄 연선·케이블에 86.23% 보복관세 부과가 시작됐다. 중국 기업의 대미 ‘우회수출 통로’ 역할을 했다는 상무부 최종 판정에 따라서다. 한국 정부가 공표하지 않아 매일경제 보도를 통해 처음 드러난 사실이다.
추가 청구서도 숨돌릴 틈 없이 날아오고 있다. 당장 오는 12일부터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알루미늄·철강에 25% 보편관세가 예고됐지만 ‘한국 면제’는 감감무소식이다. 조만간 발표될 목재 관세도 한국산 싱크대가 영향권이다. 계산서는 앞으로도 이어진다. 주한미군 주둔과 대미 무역흑자는 ‘불공정한 거래’이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 생각이다.
통상당국의 나이브한 현실 인식은 우려를 더한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매일경제 보도에 대해 “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했다”며 자기 변호에 바빴고, 파장은 애써 축소하려 했다. 프로는 아마추어와 달리 결과로 말하는 법이다. 이번이 연습게임이라고 치더라도 완패했는데, 본게임에선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한국보다 더 부유하고 더 높은 단계 우방인 캐나다마저 무역 마찰로 고초를 겪고 있다. 첩보동맹 ‘파이브 아이즈’에도 못 드는 대한민국 앞에 놓인 시련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테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당신은 카드가 없다”고 여섯 차례나 말했다. 우리 패는 어떤가. 원 페어나 투 페어인가, 혹 풀하우스라도 있나. 뭘 내주고 받을 지 면밀히 셈해야 할 때다. 아직 차례가 아닐 뿐 크게 베팅해야 할 순간이 반드시 온다. 제대로 못 할 거면 어중간한 블러핑은 금물이다. ‘거래의 기술’ 저자이자 최고의 타짜와 포커를 치고 있다. 황해 너머에 가서 “셰셰”하고, 태평양 쪽으로는 “생큐”하다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다.

서정원 벤처중기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