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52시간 예외를 놓고 여야 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반도체 특별법이 17일 국회 관련 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클릭' 행보 중 하나로 반도체 분야 주52시간 예외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당 안팎의 반발에 직면해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각국이 막대한 지원을 앞세워 반도체 전쟁을 벌이고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 국회가 세상 변화에 눈감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이날 야당은 주52시간 예외 조항을 빼고 세제 등 정부 지원만 담아 법안을 통과시키자고 주장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대표는 "특정 산업의 연구개발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하면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나라고 하니 할 말이 없더라"며 운을 뗐다. 하지만 노동계 표를 의식한 민주당은 다른 업종에서도 주52시간 예외 요구가 커질지 모른다며 반도체 예외 카드를 접었다.

격변 중인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만 근무시간을 놓고 아웅다웅해서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중국 반도체 기술력은 무수한 인재를 바탕으로 우리를 추월하기 직전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020년 제로(0)에 가까웠던 중국 CXMT의 D램 세계 점유율은 지난해 5%나 됐고,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첨단 반도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 정부가 약속한 외국 업체에 대한 보조금 삭감과 재평가, 관세 부과를 통해 자국 반도체 육성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대만 TSMC는 트럼프 정부 요청에 따라 인텔 공장 지분 인수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대표는 '먹사니즘'에 이어 '잘사니즘'으로 실용주의를 강조했는데, 우리로서는 반도체 등 강점을 가진 산업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절실하다. 초격차 기술 확보가 생명인 반도체 분야는 경직된 근로시간 규제로는 살아남기 힘든 게 현실이다. 오는 20일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눠 결단하기 바란다. 반도체 업계가 흥이 나서 뛸 수 있도록 정치권은 힘을 모아줘야 한다.